시간을 포갠 무수히 많은 점…수성아트피아, 김재홍 ‘호흡-선으로부터’展
시간을 포갠 무수히 많은 점…수성아트피아, 김재홍 ‘호흡-선으로부터’展
  • 황인옥
  • 승인 2020.11.1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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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개별 아닌 공생적 존재
환원주의적 삶의 형태 집중
점에서 선, 선에서 공간으로
연작 ‘내면의 빛’ 올해 첫 선
김재홍작-존재의기억
김재홍 작 ‘존재의 기억’

김재홍은 존재(存在)의 본질을 환원주의적 태도로 다루는데 탁월한 감수성을 지닌 작가처럼 보인다. 작업초기부터 지금까지 존재를 지극하게 바라보고 해체한 후에 마침내 본질에 해당하는 하나의 형상을 추출하고, 그것을 견고한 서사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 시기는 작가로서 작업을 본격화한 시기와 맞물린다. 작가라면 당연히 해결해야 할 과제인 예술의 본질을 파고들면서 그 너머의 주제인 존재의 본질로까지 주제를 확장했다. 예술 이전에 가슴속에 품었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부터 해결하는 것이 선결과제로 주어졌던 것.

‘삶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에 변화가 찾아왔다. 본질과 직관은 이성 너머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조합이다. 작가는 세상을 보다 직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급속하게 발전을 거듭하고 그 속에서 마치 로봇과 같이 단순 반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인간을 보기 시작했다.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정작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일이 멸시되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

정신적인 사유가 작업의 근간이 된다는 점에서 작가의 작업을 ‘사유의 지도’ 또는 ‘정신의 상아탑’으로 보아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사유와 명상을 통해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면서 내적으로 조금씩 성장해왔다. 그 모든 과정마다의 성찰들은 작품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제 작품의 본질은 삶의 존재적 가치에 대한 내면탐구에 둘 수 있을 것입니다.”

10일 개막한 김재홍의 개인전 ‘호흡-선으로부터’전은 작가가 존재를 탐구하고 환원주의적 태도로 도식화한 일련의 작업 과정을 망라해 보여주는 전시로 꾸려졌다. 그의 대표작 ‘존재의 기억’과 ‘호흡의 결’ 연작과 올해 처음 선보이는 ‘내면의 빛’ 연작까지 작가 의식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 작업 세계 전반을 소개한다.

‘존재의 기억’ 연작은 2008년부터 지속되어온 ‘소울(SOUL)’, ‘공생’ 연작의 연장이다. 작품에는 가느다란 무수히 많은 점들이 끊어질 듯 이어져 있다. 미술에서 점이 형상의 시작점(근원)이듯 작품 속에서 점은 존재의 시작점(본질)으로 내면화되어 있다. 존재의 본질로서의 점은 선으로 확장되고, 선이 쌓여 역동적인 공간으로 거듭난다.

작품 속에서 끊어질 듯 이어져 있는 수많은 점들의 행렬은 관계성에 대한 언급이다. 모든 존재는 각각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강렬한 에너지로 서로를 끌어당기는 관계성으로 묶여 있다는 논리다. 세상을 ‘관계성’으로 인식하는 태도는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에서 받은 영감의 결과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갈 수 있었던 것은 각 분야의 엔지니어, 과학, 그의 가족들 등 수많은 존재들의 협력의 결과였어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각각 존재하기보다 하나로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 공생과 공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존재의 기억’이 외부세계에 대한 자각에 해당된다면 작품 ‘호흡의 결’은 사유의 대상을 바깥에서 내면으로 이동한 결과다. 작품에는 ‘존재의 기억’ 연작보다 작은 점들의 결합체로 형상화되어 있고, 움직임은 배제했다. 역동성보다 심연의 고요함을 표현하기 위한 선택이다.

사실 이 작품은 말미작 작가라는 닉네임으로부터의 벗어나기 위한 의도도 없지 않았다. 그에게는 말미잘을 닮은 ‘존재의 기억’ 연작 때문에 말미잘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호흡의 결’연작에서 역동성을 배제한 무수하게 찍어놓은 작은 점들은 작가의 호흡에 대한 형상화다. 호흡은 작가 자신의 본질을 찾으면서 발견한 상징적인 표상이다. “바깥에서 사유의 대상을 제 자신에게로 돌렸을 때 과연 저라는 존재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생각했을 때 호흡(숨)이 떠올랐어요. 무한히 반복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호흡이었죠. 그래서 시작부터 끝가지 흔들림 없는 견고한 점으로 표현했어요.”

작품 ‘내면의 빛’ 연작은 좀 더 내밀한 명상의 결과다. 코로나 19로 외부 활동에 제약을 받으면서 자신에게 더욱 몰입하게 되면서 작업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점에서 거대한 원으로 변화했다.

“명상을 하기 위해 눈을 감으면 암흑이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면으로 계속 들어가다 보면 저 멀리서 빛이 보였어요. 그때 코로나 19가 물질만능에 빠진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결과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때 느낀 감정이 둥근 원의 형상으로 드러나게 됐어요.”

전시된 세 가지의 연작들은 각기 다른 의미와 형상으로 구축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의 지점에서 공통분모가 발견된다. 바로 ‘시간성’이다. 시간성은 작품 속에서 형태의 쌓기라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점, 선, 원이라는 각기 다른 형상으로 표현했지만 수십에서 수만 개로 층층이 점이나 원을 쌓는 행위를 통해 시간을 개입시킨다.

“제가 시간을 거슬러 갈수는 없지만 제가 머무른 시간의 단면을 작품 속에 담음으로서 시간의 흐름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으로 유명세를 구가하는 작가로 사는 것을 목표로 삼기보다 작가로서 자신이 담고 싶은 것을 작품에 담아 내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깨달음을 최근에 얻었다며 환하게 웃는 김재홍의 전시는 수성아트피아 멀티홀에서 15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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