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하는 마을시민
조리하는 마을시민
  • 승인 2020.11.1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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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젠더와 자치분권 연구소장
11월 11일은 무슨 날? 1996년부터 지정된 농업인의 날이다. 한자 11을 합치면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흙(土)이 된다. 지난 2006년에는 주식인 쌀소비 진작을 위하여 농림축산식품부가 가래떡데이로 지정했다.

농업을 살리는 일은 도시를 건강하게 하는 일이다. 재료를 사서 다듬고 조리하는 일보다 바로 먹을 음식을 주문하는 경우가 많기에 농사는 더더욱 일상의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이 재료가 어디서 왔는가? 어떻게 자랐는가를 생각하는 일은 거의 없다.

간이 맞고 맛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음식 좀 해 본 사람은 안다. 최상의 재료가 아니면 거의 대부분 조미료 맛이다. 이제 아이들의 입맛은 엄마가 아니라 조리사에 달려있다.

해질녘이면 생선 굽는 냄새가 자욱하던 어릴적 골목길이 그리운 것은 건강한 밥상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면역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는 결국 제대로 먹는 일에서 시작함을 알고 있음에도 먹는 일은 먹방 수준의 볼거리에 머문다.

한국의 ‘먹방’은 영국 콜린스 사전 올해에 단어에 들기도 했다.

콜린스 사전은 이를 “시청자의 즐거움을 위해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동영상이나 웹캐스트‘로 소개하고 있다. 영어의 몇 안되는 외래어 중 하나인 먹방이 올해의 단어가 되었다니 건강한 먹거리의 일상화를 위한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단지 먹는 일보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제대로 가르치지도, 전해주지도 못하고 있으니 어른들의 직무유기가 아닌가.

먹는 일은 그만들 수도, 미룰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좋은 먹을거리를 찾아 조리해서 먹는 일은 건강한 삶의 기본적인 요소다. 하지만 지금까지 먹는 일은 사소한 일, 기본적인 일로 생각해 제대로 배우지도,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시장에서는 보기좋은 떡, 마약같이 당기는 음식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건강한 삶이 어디서 오는지 기본부터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 아닐까? 특히 우리가 먹는 간편한 음식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쓰레기는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엄두가 안난다.

집집마다 밥솥은 비어가고 식당은 계속 늘어난다. 조리하는 일이 귀찮은 일, 그야말로 귀하지 않은 일이 되어간다. 물론 시장에서의 요리는 다르다. 같은 라면을 끓이는 일도 집에서 할 때와 시장에서 할때는 그 가치가 다르다. 조리는 여자의 일이지만 조리사는 남자다.

각 지자체마다 관광상품과 연계한 먹거리상품화에 관심 갖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역민의 건강한 먹거리 일상이다.

알다시피 먹거리를 만드는 일이 이 땅에서 줄어들수록 외국에서 더 많은 먹거리를 수입해야 한다. 수입식품의 안전성 문제만 아니라 먹거리가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 땅에서 농산물을 키우고, 집에서 조리해서 먹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먼저 농업정책이 제대로 자리잡아 청년들이 농사를 짓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 재료가 이웃 도시에 신선하게 공급되어 각 가정에서, 마을에서 정성껏 조리하는 일이 지속가능한 건강한 미래의 기본이다.

집집마다 부엌이 놀고 있다. 혼자 하는 요리가 재미없다면 동네부엌을 만들자. 음식시민 만나 먹거리 문제에 대해 같이 공부하고 해결하자. 우리 애는 라면도 제대로 안 끓여보고 컸다. 가 아니라, 우리 애는 동네부엌에서 조리법을 배웠다. 라는 유행어가 나오게 되는 정책을 기대한다.

먹을거리를 담당해오던 여성들의 유전자에 녹아있는 시간의 맛과 건강을 되찾는 과정은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사라져가는 마을공동체를 지키는 그야말로 ’살림‘이다.

마을에서 주민들이 함께 된장, 고추장을 담그고 아이들이 거든다면 자연스레 조리도 전수되고, 주민들도 모이고, 함께 밥도 먹을 뿐만 아니라 조리에 대한 성별고정관념도 줄어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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