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별신(別神)
[문화칼럼] 별신(別神)
  • 승인 2020.11.11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아무튼 그들은 달렸다. 춤췄다. 아름다웠다." 최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시립국악단 한국무용단 공연 '별신'을 보고난 소감이다. 평소 한국무용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는 시간이었다. 대단히 정적이며, 동작의 반경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의 안목을 탓할 수밖에 없는 공연이었다. 간결하고 혁신적인 무대와 효과적인 조명만으로도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미니멀리즘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증명한 무대 구성이었다. 많지 않은 숫자의 무용수지만 그들은 팔공홀 큰 무대를 가득 채웠다. 그 에너지는 객석까지 뜨겁게 전달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있어 이제 많은 공연이 무대에 올라간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식어버린 열기를, 그 불을 지피기가 쉽지 않다. 물론 공연의 현장에 있기를 원하는 관객이 많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것이 더 절실하다. 그런데 이미 서먹해진 거리감을 좁히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이번 한국 무용 '별신'은 연습과정에서 입소문이 난 덕분인지 이날은 공연 전부터 들뜬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막이 내려올 즈음 관객들의 표정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함을 볼 수 있었다.

'별신'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동해안 별신굿'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시립국악단 한국무용단에서 객원 안무가로 장유경 교수를 모시고 긴 시간동안 무용수들의 몸 만들기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한 단계씩 끌어올려 나갔다. 안무자 장유경의 말을 잠시 빌려본다. "이 버겁고 힘겨운 시대를 버티는 우리를 위해---, 잘 견뎠고 또 잘 이겨내자. 감사와 격려를 담아 달구벌 별신굿을 올린다. 동해안 별신굿이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 공동의 제를 지냈던 것처럼 힘겨운 시대를 견디느라 지친 우리를 다독이고 끌어안고자 했다." 가슴 뭉클한 말이다. 그 마음이 오롯이 전해져 온 춤판 이었다.

무용수들은 이번 작업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다. 자신을 돌아보며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마음들이 돌고 돌아 서로가 서로를 쓰다듬고 기운을 북돋아 준다. 그러면서 좋은 에너지가 다시금 생성되고 확장된다. 이것은 악사들과 무용수 사이에서도 일어났다. 처음 서먹한 거리감이 시간이 지날수록 간극이 좁혀지고 하나로 융합되고 화학적 결합의 결들이 만들어 진다. 마음을 나누고, 서로에 대한 믿음에 하나 되는 작은 기적이 만들어 진다. 이러한 좋은 기운에 작품의 완성도는 높아지고 그들이 춤으로 말하고자 했던 언어들이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야말로 선순환 구조다. 이것이 창조의 본질이다. 이것이 이번에 이루어 졌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무용수들의 표정이었다.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솟아오르는 원초적 감정에 뒤섞여 있는 거품을 뺀, 가장 순수한 감정의 원형이 그들의 얼굴에 나타났다. 감히 말하지만 정말 쉽지 않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것에 집중하는 순간을 가졌다는 것은 무대에 서는 사람으로서 행복한 일이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작업의 강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런 것이다. 작품에 헌신하는 일. 그 순수한 몰입의 순간을, 예술가는 언제나 그러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의 호흡에 집중하고자 하지만 찰나에도 수많은 상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이러한 것을 극복해낸 아름다운 표정을 볼 수 있었음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나는 이번 춤이 현대무용에 가깝지 않은가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우리 춤, 우리 무용이 가진 선의 확장이다. 한국전통 춤은 뿌리 깊은 나무와 같다. 대지 깊숙이 뿌리박고 서있는 나무의 가지가 하늘거리는 움직임 같은 것이다. 그것의 확장이라는 안무가의 말은 무릎을 탁 칠만큼 명쾌한 정의다. 다르게 보이나 다르지 않다. 창작 춤과 전통 춤도 하나다. 창작 춤은 단지 조금 더 확장 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러고 보니 무대를 역동적으로 뛰어 다니는 몸짓, 애절한 아쟁의 선율을 타며 멈춘 듯 선을 그려가는 동작이 하나의 결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제작극장으로서 좋은 레퍼토리를 축적해가야 한다. '별신'은 우리가 레퍼토리로 만들어 갈 충분한 가능성과 자격을 갖추었다. 더 다듬고 가꾸어 우리 전통 춤의 가치를 만들고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별신'이 역경에 맞서 함께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내고, 사람을 보듬고 다독이는 위로가 되고자 한 가치를 더 널리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