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수 경제칼럼] 꼼수 증세가 내수시장을 죽이고, 국민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이효수 경제칼럼] 꼼수 증세가 내수시장을 죽이고, 국민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 승인 2020.11.1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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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경제학 박사
정부는 주택 등 부동산 공시가격을 시세의 9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다주택 고가주택 소유자는 물론 중저가 1주택자의 재산세 부담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것을 두고 주호영 국민의 힘 대표는 “참으로 교묘한 증세 방법이다”고 비판하고,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 장관은 증세가 아니라고 하고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결과적으로 증세”라고 인정했다. 증세가 아니라고 하면서 실제적으로 교묘한 방법으로 증세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꼼수 증세’이다.

정부가 공시가격을 단기적으로 급격하게 인상하는 것은 분명히 증세로 보아야 한다. 증세는 납세의무자의 납세액을 정책적으로 인상하는 것을 말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납세액은 세원에 세율을 곱하여 산출된다. 부동산 관련 세는 공시지가에 세율을 곱하여 산출한다. 정부는 세율을 올리지 않았으니 증세가 아니라고 하지만, 세원인 공시지가를 정책적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실제적으로 납세액이 증가하는 증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공시지가는 합리적으로 서서히 단계적으로 올려야 한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실패하여 서울 아파트값이 집권 4년 사이에 무려 58%나 올랐다. 정책 실패로 부동산 거품을 만들어 놓고, 공시지가 현실화, 형평성을 내세워 갑자기 공시가격을 시세의 90%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은 3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째 이런 급격한 공시가격의 인상은 세원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므로 조세법정주의에 위배될 수 있다. 둘째 이것은 ‘보편 증세’의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부자 증세’ 운운하면서 국민을 분열시키고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갈등을 고조시켜 국력을 크게 약화시킨다. 셋째 중산층의 불안감을 증폭시켜 내수시장을 만성적으로 침체시켜 경제의 회생 능력을 약화시킨다.

우리나라 헌법 제59조는 “조세의 종류와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라고 조세법정주의를 규정하고, ① 납세의무자, 과세물건, 과세표준, 세율 등의 과세 요건과 ② 조세 행정청의 조세 부과와 징수 등의 조세 행정절차를 법률로 엄격하게 규정하도록 하고 있다. 공시가격을 정책적으로 급격하게 인상한다는 것은 사실상 과세표준을 바꾸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주택 공시가격은 토지와 건물 가격이 모두 합쳐진 가격으로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과표로 사용되며, 보상가격이나 담보가격으로 활용되지 않는다. 공시가격은 이처럼 원래 부동산의 시세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무당국이 과세 기준으로 삼는 가격이므로 명백히 과세표준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 공시가격이 과세표준의 기능을 한다면 공시가격은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안정적으로 조정하여 납세자가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나랏 빚은 사상 최대 규모인 800조에 달하고, 올해 9월까지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08조 4000억에 달한다. 나랏빚이 이처럼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부와 국회는 내년에 무려 555조 8000억 원 규모의 ‘슈퍼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세금을 아껴 쓰야 할 정부는 적자 재정을 편성하여 포퓰리즘적 소모성 재정지출을 일삼고, 세금을 아껴 쓰도록 감시 감독해야 할 국회는 지역구 선심성 사업, 복지 예산, 재보궐 선거를 위한 예산 확보에만 정신이 없다.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재정운용으로 혈세를 낭비하면서 ‘부자 증세’라는 포퓰리즘 접근으로 국가 운영의 재원인 납세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국세청에 의하면, 2018년 기준 근로소득세 대상자 1857만 7885명의 38.9%에 해당하는 721만 9101명이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 면세자들이다.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중을 국별로 보면, 미국 30.7%, 캐나다 17.8%, 호주 15.8%, 일본 15.5%, 영국 2.1%이다.

국민의 4대 의무 가운데 하나가 납세의 의무이고, 조세정책의 기본은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다. 그런데도 ‘부자 증세’를 내세워 마치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부과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것처럼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 ‘부자 증세’는 조세저항을 피하면서 면세자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방식으로는 늘어나는 재정적자에 대응할 수 없다. 납세의무와 조세정책 기본 원칙에 맞게 조세정의 차원에서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형평에 맞게 부과하는 ‘보편적 증세’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징세나 재정지출에 대한 국민들의 감시 의식이 높아지고, 정부와 국회가 혈세를 함부로 낭비하지 못할 것이다.

공시가격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증세 부담을 안게 되는 사람은 단순히 고소득층이나 큰 부자가 아니라, 중산층이다. 공시가격 인상 조정으로 내년부터 공시가격 6억 원 이상 공동주택의 재산세 등 보유세가 큰 폭으로 오를 것으로 추산된다. 국토교통부에 의하면 서울 지역에서 올해 초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6억 원 이상 12억 원 미만 가구 비중은 36.6%에 해당한다. 이 비중은 내년부터 공시가격이 인상되면 더 크게 늘어날 것이다. 이들은 주택으로만 보면 부자가 아니라 중산층이다. 한 언론에 의하면,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강북의 마포구 래미안 푸르지오 전용면적 84㎡를 보유한 1주택자의 보유세는 올해 325만 원에서 5년 뒤엔 1314만 원으로 약 4배 인상된다. 매월 100만 원 이상을 세금으로 내는 셈이다.

이처럼 실현되지 않은 자산 소득에 대한 재산세 부담이 과중하면 미래에 대한 불안 심리로 인해 소비를 하지 못하게 된다. 중산층이 소비를 하지 않으면 내수시장은 죽게 되어 있다. 그리고 과중한 보유세 부담은 자연스럽게 전월세에 전가되어 세입자들의 주거비 부담도 크게 증가된다. 이것은 국민 대다수의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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