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의 힘
껍질의 힘
  • 승인 2020.11.1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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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란

끓는 물에 데친 토마토는 쉽게 껍질이 벗겨져요

껍질이 벗겨진 토마토는 순식간에 뭉크러져

모습을 잃어요

곧 토마토라고 짐작하기 어려워져요

미농지처럼 속이 비춰 보이는 얇은 막이

토마토의 내부를 보호하고,

바람과 일교차를 견디고 땡볕을 막아내요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것이 한 겹 껍질이군요

그것도 모르고 그까짓 껍질, 하면서

잘도 껍질을 쓰레기통으로 벗어던졌군요

내가 입은 많은 상처는 껍질을 잘못 간수한 탓

껍질을 홀대한 탓이군요

토마토의 형체를 유지하고

토마토의 자세를 갖추고

토마토를 토마토이게 만드는 힘은

얇은 막, 한 겹 껍질에서 나오는군요

나를 나이게 한 것도 한 겹 껍질이었는데

껍질을 무시하고 혹사한 나는

껍질 아니고는 아무것도 아닌 나를 잘도

함부로 다루었군요

-시집 <장미키스>-

◇최정란= 경북 상주 출생.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계명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여우장갑』 『입술거울』 『사슴목발애인』 『장미키스』,<요산창작기금> <부산문화재단창작기금> 2016년 제7회 <시산맥작품상> 2017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해설> 껍질의 중요성을 리드미컬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실 모든 보호 방어막은 껍질에 있었다. 한데 지금까지 그걸 간과한 아쉬움이 화자에게 채찍으로 돌아온다는 자괴감이 진솔하게 다루어짐으로써 시의 아름다움이 빛난다. 신선한 시어들의 정결미가 돋보인다. 의미심장한 시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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