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은 지극정성입니다
장갑은 지극정성입니다
  • 여인호
  • 승인 2020.11.1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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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하나 주세요.”, “일하다 말고 갑자기 밴드는 왜 찾아요.”

“무를 썰다가 왼손 중지 끝을 살짝 베었어.”, “좀 조심하지 그래요.”

“조심한다고 안 다치나. 누가 다치고 싶어서 다치나.”, “일을 하면 꼭 티를 내요.”

아내가 안쓰러운 마음은 감춘 채 핀잔을 합니다. 영호가 깍두기를 만들기 위해 무를 썰다가 다쳤습니다. 칼질을 잘 하는 영호가 방심하다가 칼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생긴 일입니다. 밴드를 겹겹이 붙이고 남은 무를 썰었습니다. 크기가 제각각인 무와 쪽파, 시금치 등을 양념에 버무리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썬 무를 버무릴 때와 같이 고무장갑을 꼈으면 다칠 일은 없었습니다. 2020년 10월 25일 일요일의 일입니다.

영호의 왼손에는 상처가 많습니다. 어릴 때는 낫으로 풀을 베거나 나무를 하다가 난 상처이고, 성인이 되어서는 칼을 사용하다가 많이 다쳤습니다. 대부분 장갑을 끼지 않았을 때에 생긴 상처입니다. 가장 큰 상처는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참깨를 베다가 다친 중지입니다. 관절의 가운데 부분에 생긴 2센티미터가 넘는 상처는 오십 여년이 다 된 지금도 선명합니다. 당시에는 밭에서 지혈을 하고 집에 와서 된장을 바르고 천으로 감싸는 게 치료의 전부였습니다. 가운뎃손가락 검지 쪽의 인대가 끊어져서 지금도 힘을 세게 주지 않으면 똑바로 펴지질 않습니다. 영호의 왼손은 초동목아의 흔적이자 고단한 행복의 이력입니다.

영호는 장갑이 많습니다. 교문에서 등굣길 아이맞이를 할 때는 사시사철 장갑을 낍니다. 주로 흰색 장갑입니다. 손바닥과 손등에는 색색의 ♡ 모양을 붙였습니다. 손을 좌우나 전후로 흔들면서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하는 데 안성맞춤입니다. 시골에서 일을 할 때는 농기구를 사용하거나 흙을 만질 일이 많기 때문에 장갑을 낍니다. 상대적으로 모자는 쓰지 않을 때가 많아서 여름철에는 손보다 얼굴색이 더 까맣습니다. 겨울철에는 주머니에 손을 넣기 보다는 장갑을 끼고 다닙니다. 가죽장갑, 털장갑 등 다양합니다. 김장을 하거나 메주를 만들 때는 고무장갑을 낍니다. 그렇지만 손빨래를 하거나 설거지를 할 때는 장갑을 거의 끼질 않습니다.

“사랑합니다. 주머니에서 손 빼세요. 고개 들고.” 마지못해 주머니에서 손을 뺍니다. 맨손입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묻습니다.

“내일부터 장갑을 끼고 다니세요.”, “장갑이 없는데요.”, “오늘 집에 가서 어머니께 장갑 사 주실 수 있어요 하고 여쭤봐.”, “안 사 주면요.”,

“그러면 교장 선생님이 어머니께, 장갑 사주라고 전화할게.”, “…….”

2019년 12월 5일 겨울 아침에 대구교동초등학교 교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이들이 손을 주머니에 넣었을 때와 장갑을 끼고 손을 주머니에 넣지 않았을 때, 넘어지는 상황이 발생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부모님이나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들의 눈에 보이는 보온, 보호의 기능을 하는 실제 장갑 상황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손을 주머니에 넣으면 몸이 움츠려 듭니다. 몸을 움츠리면 마음도 같이 움츠려 듭니다. 우리 아이들 모두가 장갑을 끼고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고 팔을 흔들면서 당당하게 걷는 등굣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기초와 기본이 되는 자신만의 장갑도 하나씩 가지도록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이 장갑은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머리나 가슴에 있고, 그 앎이 행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 장갑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 공감하고 소통하는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공부에 도움이 되는 읽기와 쓰기, 셈하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기초와 기본이 되는 튼실한 장갑을 가지는 데는 우리 대구교육가족 모두의 지극정성이 필요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장갑은 우리 대구교육가족의 지극정성입니다.



김영호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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