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빛과 황금빛이 만든 내면의 길…토마갤러리, 21일까지 정익현展
푸른빛과 황금빛이 만든 내면의 길…토마갤러리, 21일까지 정익현展
  • 황인옥
  • 승인 2020.11.18 2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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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시작한 ‘심연’ 연작 한자리
靑은 희망, 金은 종교적 감수성
물감에 먹 섞어 신비로움 ‘넘실’
정익현작-심연
정익현 작 ‘심연’

짙은 청색이 캔버스 위에서 춤을 춘다. 짙푸른 청색에서 시작된 변주가 마지막 숨을 토해내는 자리에 연푸름이 수줍게 고개를 내민다. 그것도 잠시, 황금빛 머금은 붓의 춤사위는 더욱 강렬하다. 청색 면 위에서 황금빛이 처연한 몸짓을 그려낸다. 작가 정익현의 작품 ‘심연(深淵)’이다.

형상에 관념을 투사해 표현하는 것이 그림이다. 그런데 추상은 정형화된 형상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구체적인 정보를 단순화해 핵심만을 표현한다. 구상이 소설이라면 추상은 시다. 정익현은 전업 작가를 선언하고 지금까지 외골수라고 할 만큼 추상만 팠다. 화가로 명함을 내밀기도 전인 대학 재학 시절에 추상을 그려 지도교수로부터 쓴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추상에 대한 선호는 빨랐다.

그녀가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가 시인이셨는데 시를 쓰면 항상 저한테 읽어보라 하셨다. 그런 감성을 어린시절부터 접하고 자라서 나 역시 시적인 감성이 있다”고 고백했다. 작가의 어머니는 시를 짓고 서예를 했다. 대구문학아카데미 회장, 대구경북색동회장 등을 역임하고 있으니 그 내공이 간단치가 않았다. 어머니의 그 내공들이 그녀의 작업에 영향을 미쳤고, 어머니로부터 이어진 감수성들이 추상작업의 동력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

정 작가 추상의 근간은 주제에 있다. 3~4년 주기로 특정한 주제를 정해놓고 그 주제에 대한 서사를 추상으로 표현한다. 작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다시 피는 날’, ‘메모리(Memory)‘, ’흐름’ 등 다양한 주제들을 섭렵했다. 올해는 시작한 주제는 ‘심연(深淵)’이다. 최근에 개막한 토마갤러리 전시에 ‘심연’ 연작들을 모았다.

주제 ‘심연’은 서방교회의 지도자이자 고대 그리스도교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였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시 ‘자신의 존재’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됐다. 아우쿠스티누스는 시에는 “높은 산과 바다의 거대한 파도와 굽이치는 광활한 태양과 무수히 반짝이는 별을 보고 경탄하면서 정작 가장 경탄해야 할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경탄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작가는 시 ‘자신의 존재’에서 “이제는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갈 시간”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코로나 19로 인한 언택트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주어진 과제는 ‘내적 성찰’이며 이를 위해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며 “우리를 새롭게 재점검할 때 이 불확실한 상황들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며 심연에 주목했다.

주제 ‘심연’은 형상보다 색으로 구체화된다. 청색과 황금빛이 중심을 잡고 한 두가지 색채를 추가해 스토리를 엮어간다. 청색은 그녀 작업의 중심 색채다. 청색을 접했을 때 알 수 없는 기운에 휩싸이면서 청색이 작업으로 연결됐다. 작가는 “청색을 처음 접했을 강렬한 희망의 기운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황금빛은 종교적 감수성과 연결된다. “황금빛에서 성모 마리아의 품같은 편안함”을 느끼고 그녀의 시그널이 됐다. ‘심연’ 연작에서는 청색은 깊이감을 더하고, 황금빛은 금박으로 확장됐다.

작품 속 청색과 황금색에 경험하지 못했던 깊이감이 넘실댄다. 무슨 사연일까? 작가가 “먹의 효과”라고 했다. “모든 색에 먹을 혼용해 사용한다. 동서양의 재료가 섞였을 때 묘한 깊이감과 신비로움이 새롭게 생겨났다. 내가 사유하는 주제들과 잘 맞았다.”

먹의 혼용은 그녀의 정체성과 맞물린다. 작가는 한국화 전공자다. 먹 뿐만 아니라 밑작업에 유난히 공을 들이는 것도 종이를 배접하고 그 위를 아교로 칠하는 한국화의 작업 기법의 영향이다.

언젠가는 한국화 기법들을 좀 더 극적으로 끌어들일 계획을 세워두고 있지만 아직은 서양화에 충실하고 있다. 색을 거침없이 사용하고, 한지의 우연성보다 선명도와 작가의 자유의지를 허용하는 캔버스에 매료되고 있다. “아직은 지금 작업을 충분히 탐닉하고 싶다.”

추상을 지극하게 끌고가려면 정신적인 에너지를 계속해서 충전해야 한다. 내적 성찰을 계속하고 성찰의 내용을 축약해서 표현하는 것에 적잖은 내공이 드는 법이다. 작가는 영화나 독서, 명상 등 인문학적인 활동들을 틈틈이 하며 내공을 쌓아간다. 하지만 그 모든 장르 중에서 가장 영향을 받는 것은 종교다.

“종교 활동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종교가 주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 전시는 토마갤러리에서 21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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