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문불출(杜門不出)에 대한 단상
두문불출(杜門不出)에 대한 단상
  • 승인 2020.11.1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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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무논에서 모를 심던 상태의 어머니가 허겁지겁 뛰쳐나와 빠르게 집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 상태의 담임선생님은 삽짝을 지나 집 마당에 들어서고 있었다. 집안이 조용하여 선생님은 “상태야!”하고 소리쳤다.

동시에 집 밖에서 상태의 어머니가 “상태야! 선생님 오셨다.”하고 외쳤다. 상태의 어머니는 다급하게 달려온 탓에 얼굴엔 땀방울이 맺혀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모내기를 하느라고 머리를 감쌌던 수건도 벗지 않은 채였다.

돌쩌귀가 있는 여닫이 큰방 문이 열리면서 상태가 방안에서 나왔다. 상태는 부리나케 댓돌에 놓인 검정 고무신을 신고 마당에 내려서면서 두 손을 마주잡고 공손하게 “선생님, 안녕하세요?”하였다.

상태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오늘은 학교에서 새 학년이면 선생님들이 가정방문을 하는 날이다. 담임선생님은 학급의 아이들에게 “오늘은 가정방문을 한다. 어디에 가지 말고 꼼짝 말고 방안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 알았지?”하고 단단히 타일렀던 터였다. 산골 아이들은 너무나 순진했다. 상태는 하교를 하자말자 부처마냥 큰방 한가운데에 양반다리를 하고 꼼짝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상태의 어머니는 담임선생님께 “선생님 오셨습니까?”하면서 부엌에 들어가서 삶은 계란 두 개를 담은 놋그릇과 미리 사 두었던 과자봉지를 들고 나왔다. 상태의 어머니는 과자봉지를 입으로 가져가서 이로 봉지를 뜯고는 과자를 놋그릇 옆에 놓았다. 선생님을 극진히 대접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이 엿보였다.

“상태가 학교에서 오자말자 ‘선생님이 꼼짝 말고 방안에 있어라.’말씀하셨다고 두문불출하고 있었습니다.”라고 상태의 어머니는 말하였다. 필자가 47년 전 영덕의 산골학교에 근무하면서 가정방문 할 때의 이야기이다. 그 땐 그랬다. 모두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던 산골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과 아이들의 착한 행동은 그러했다.

코로나19로 아이들이 두문불출하고 있다. 요즘의 아이들은 불행하다. 더러는 가택연금 상태에서 이웃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해리 할로우는 ‘가짜 원숭이 실험’을 통해 사람은 ‘접촉 위안’을 필요로 함을 역설했다. 사랑의 본질은 마음의 안정에서 오는 것이다. 마음의 안정은 접촉 위안이다. 빨리 아이들이 만나서 뒹굴고 웃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을 사전에서는 ‘집에만 있고 바깥출입을 .아니한다. 집에서 은거하면서 벼슬에 나가지 아니하거나 사회의 일을 하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두문불출’은 문장에선 아름다운 말이기도 하다. 중국 송나라 사람 도연명은 ‘어언간 불혹의 나이가 되었는데도/지난 모습으로 머물러 있고 전혀 성취한 게 없다./비록 가난하지만 굳게 사는 절개로/굶주림과 추위는 질리도록 겪었다/문을 닫고 다시는 나가지 않았고(杜門復不出)/죽을 때까지 세상과 끊어버렸다.’고 읊었다. 굶주림과 추위에 질리도록 살았지만 ‘두문부불출(杜門復不出)’했다. 굳게 사는 절개로 문을 닫고 다시는 나가지 않았다.

조선 세조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이던 이맹전은,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쫓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눈멀고 귀먹었다.’는 핑계로 고향 선산(구미)에서 두문불출하였다. 30여년을 그렇게 살았다고 한다. 대단한 결기이다.

신라의 38대 원성대왕이 각간으로 있을 때 ‘머리에 쓰는 관을 벗고, 흰 갓을 쓰고 열 두 줄 가야금을 들고, 천관사 우물 속으로 들어간’ 꿈을 꾸었다. 점쟁이가 ‘관은 관직이요. 가야금은 칼이요. 우물 속은 감옥입니다.’하였다. 각간 김경신은 이 말을 듣고 몹시 근심하여 두문불출하였다.

아찬 여삼이 어렵게 각간 김경신을 만나 ‘관을 벗은 것은 위에 앉을 이가 없다는 뜻이요. 흰 갓은 면류관을 쓸 징조요. 열두 줄 가야금은 12대 손이 왕위를 이어 받을 징조요. 우물에 들어간 것은 궁궐로 들어갈 상서로운 징조입니다.’하였다. 말의 뉘앙스에 따라 김경신은 일희일비하였다.

김정은 두문불출, 이설주 두문불출이 언론에 오르내린다. 남한에도 두문불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두문불출은 고려 말기의 유신들이 조선의 건국에 반대하여 벼슬살이를 거부하고 은거하여 학문하던 모습은 아니다.

도연명의 시에 ‘젊은 시절은 두 번 거듭 오지 아니하고, 하루에 새벽도 두 번 있지 않나니, 젊었을 때에 마땅히 학문에 힘쓰라. 사람은 세월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했다. 글쎄? 학문에 힘쓰는 두문불출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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