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크롬 바탕에 눕힌 ‘삶의 파편’…호반갤러리, 장두일展
모노크롬 바탕에 눕힌 ‘삶의 파편’…호반갤러리, 장두일展
  • 황인옥
  • 승인 2020.11.1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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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기와서 삶과 시간성 발견
골판지 기왓장 모양으로 잘라
한지로 포장, 채색하고 드로잉
문양 보이도록 꽂지 않고 배열
전시 최초 직선 형태 파편 선봬
작은 변화로 새로운 서사 예고
장두일작-일편일각
장두일 작 ‘일편일각’
 
장두일작-일상의존엄
장두일 작 ‘일상의 존엄’

기와 파편 같은 조각들이 평면 위에 일렬로 도열해 있다. 각각의 파편에는 옹기나 전통 도자기에 새겼던 길상적인 문양에서 현대인의 일상까지 다양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옹기 파편들이 켜켜이 꽂아놓은 작품에는 옹기의 붉은 속살이 감상자의 마음에 꽃같이 꽂혀온다. 작가 장두일의 작품 ‘일편일각( 一片一覺)’이다.

깨진 파편이라기에 매끈함이 없지 않지만 기와나 옹기에 대한 의심은 갖지 않을 만큼 영락없는 옹기와 기와다. 그러나 작가의 이야기는 달랐다. “골판지나 스티로폼으로 만든 오브제”였다. “골판지와 스티로폼을 파편 모양으로 자르고 한지로 싼 후에 표면을 채색하거나 드로잉이나 문양을 그려 넣은 오브제다.”

파편을 작업의 소재로 채택한 것은 20여년 전. 옹기 파편을 작업의 소재로 채택했던 초기 몇 작품은 깨진 옹기 조각을 사용했다. 하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옹기 파편의 형태가 일정하지 않았고, 쌓았을 때 무게도 버거웠다. 옹기가 가진 개념은 유지하면서 소재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때 나온 아이디어가 골판지였다. 이후 스티로폼으로까지 재료가 확장됐다.

옹기와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옹기의 깨진 단면에서 드러난 색에서 땅의 속살을 보았고, 어머니의 속살로까지 개념의 확장을 경험했다. 시골출신인 작가가 빨간 속살이 드러난 옹기 파편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자연스러웠다. 땅의 너른 품에 안겨 성장한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땅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 각인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가 “땅에는 어린시절의 체험, 경험들이 담겨있다. 내 기억 속 땅은 모든 생명을 잉태하고 낳고 키우는 모성의 터전이었다”고 언급했다.

옹기에서 기와나 도자기 파편으로 소재가 확장됐다. 소재가 변하면서 무늬도 새겨넣고 구성방식도 변했다. 사각 틀에 꽂지 않고 평면에 파편들을 간격을 두고 하나씩 붙이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세로에서 가로로 구성 방식을 바꾼 것. “문양이나 형상을 그렸는데 세우면 그것들이 드러나지 않아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문양이 드러나도록 눕혔다.”

옹기나 기와, 도자기의 출발선은 흙이다. 작가가 흙에서 모성의 터전을 인식했다면, 흙이 빚은 옹기나 기와에서는 시간성을 발견했다. 숙성의 시간을 머금은 옹기, 삶의 시간을 머금은 기와에는 공통적으로 축적된 시간들이 스며있다. “여러 가지 삶에 녹아있는 정서가 켜켜이 묻어나오는 시간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최근 개막한 수성아트피아 개인전에 내놓은 신작에는 문양을 뺐다. 곡선과 직선의 파편 형태만으로 서사를 구성했다. 직선도 이번에 처음 시도하는 형태다. 그에게 직선은 순수 조형의 상징이다. “곡선은 인간이 만든 인공적인 선이다. 그래서 특정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반면에 직선은 보다 자연 상태의 순수한 선이다. 그 순수에 주목했다.” 드로잉이 빠지자 형태가 드러나고, 미세하게 길이나 각도가 다른 형태들이 주는 미묘한 변화에서 새로운 서사들이 자박거린다.

이번 전시에는 평면 작품 ‘일상의 존엄’ 연작도 걸었다. 기와 집 속에 단란한 가정의 일상을 표현했다. 일상에 대한 관심은 ‘일편일각’에서도 드러난다. 파편 조각에 일상을 그린 것. 그가 최근에 유독 일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일상의 숭고함을 발견하면서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으면서 일상이 무너진 환자들의 고통을 마주했고, 그들이 간절히 염원하는 것이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일상’임을 발견하고 일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우리가 부귀영화를 바라지만 사실은 일상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일상은 소중함을 넘어 숭고함이었다.”

평면에 집중하다 40대에 접어들면서 기와나 옹기 파편을 형상화한 오브제로 작업이 변했다. 오브제 작업에서도 문양이나 형태적인 면에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변화의 저변에 새로운 재료나 표현기법 형식 등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는 변화를 추구하는 자신의 태도에서 “누군가가 걸어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제시해야 하는 작가의 숙명”이라는 거창한 논리를 적용하고 싶지 않아했다. 그보다는 작가로 묵묵히 걸어가는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고자 했다. “나는 작업에서 양식이나 이념, 조형성 같은 거창한 이야기 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작가로서 묵묵히 걸어가는 내 삶에서 열심히 힘 닿는데까지 작업 농사를 짓는 것뿐이다.”

장두일 초대전은 수성아트피아 호반 갤러리에서 22일까지. 문의 053-668-156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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