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을 생각하는 시간
나이듦을 생각하는 시간
  • 승인 2020.11.2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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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젠더와 자치분권 연구소장
찬바람이 분다. 곧 마지막 달인 12월이 다가온다.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팬데믹(pandemic)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잃어버린 1년’이라고들 하지만 새로운 일상을 만드는 기회이기도 했다.

해외여행은 못갔지만 동네 공원길을 걸었고, 집콕과 방콕 등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신과 가족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20대 시절 여성차별에 대해, 사회의 가부장성에 대해 성토할 때 들었던 말이다.

여성차별보다 연령차별이 더 심하다고. 심지어 방송에서 신년특집으로 한 해의 계획을 인터뷰하는 자리에도 노인은 없다며, 나이 들면 자신도 모르게 기죽게 된다고.

나이듦은 감출수록 미덕이라고 여기는 사회에서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것이 나이듦이다. 예상대로라면 6년 후 초고령 사회를 맞이하게 되는데 언제까지 무엇을 감추어야 하는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돌봄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을 마주치게 된다.

신문에 연재된 ‘대한민국요양보고서’를 읽지 않았더라도 요양원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는 노인들은 이 곳이 무섭다. 자신이 아플 때 돌볼 가족이 마땅히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노인은 멀리 있지 않다. 작년과 다른 몸, 말을 안 듣는 몸을 의식하는 것, 그 자체가 나이듦이고 노년의 세계로 걸어가는 과정이다. 그 걸음을 개인이 방안에서 고개 숙이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모임에서 같이 걸으며 나눈다면 노화가 좀 덜 외로울 것이다.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이라는 책은 제목만으로도 재밌다. 문해학교에 다니면서 한글 공부에 푹 빠진 할머니들이 글자를 배워 그동안 읽지 못했던 동네 간판들을 읽고, 설레는 마음으로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자식들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은 재미를 넘어서 뭉클하다. 이런 노년은 영화에서만 가능할까?

나이듦이 행복과 멀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미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 다트머스대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생의 행복곡선은 U자형으로 행복곡선의 양쪽 끝에는 스무살 언저리와 60대 중반부터 70대 초반을 아우르는 10여년이 있다고 한다.

노인의학 전문의 루이즈 애런슨은 저서 ‘나이듦에 관하여’에서 시인 메리 루플을 인용한다. “(늙었다고 남들이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투명인간이 되는 순간 눈앞에는 무한한 자유의 세상이 펼쳐진다. 내게 이래라저래라 할 만한 인물들은 다 사라진 지 오래다. 부모님도 이미 돌아가셨다. 부모의 죽음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해방의 결정적 계기이기도 하다.”

노년은 신체적인 자유가 제한되면서 동시에 자유로울 수 있는,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한 살 더 먹을 준비를 기꺼이 하자. 이웃이 있고 친구가 있고, 이들과 함께 나이들 수 있으니 생각해보면 그리 외롭지 않다. 나이듦은 죽음으로 다가간다는 원초적인 두려움이 있지만 이 또한 준비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공동주거로 부엌, 세탁실, 응접실, 서재 등은 공동사용하며 각자의 방을 가지고 따로 또 같이 사는 일은 외국에서나 있는 일일까? 가족중심의 주거를 넘어서서 공동주택을 마련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누군가는 시도해볼 일이다. 그 과정은 개인경험을 넘어서는 공유로 새로운 정책을 추동하는 시민의 힘이 되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스스로 돌봄의 방식을 개발하자.

특히 여성들은 노년으로 살아야 하는 기간이 길기에 스스로 만드는 돌봄조직망이 더 필요하다.

“책을 덮어. 공부할 만큼 했잖아. 그까짓 이치 하나, 지식 하나, 시 한 줄, 더 알아서 뭐 하겠어. 이제 써먹을 곳도 알아 줄 사람도 없어. 돈도 안 되잖아. 어느 날 치매가 오면 말짱 도루묵이야. 바깥으로 나가, 나가서 마음껏 놀아.”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도 달콤하게 느껴지는 초겨울이다.

프리사이즈 옷이 누구에게나 맞는 것은 아니듯 모든 이에게 맞는 단 하나의 모델은 없다.

나이듦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며 스스로 자신의 모델을 만들 수 있는, 보다 노년친화적인 도시생활을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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