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한 장의 사진과 두 편의 영화
[문화칼럼] 한 장의 사진과 두 편의 영화
  • 승인 2020.11.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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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조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 당선을 목전에 둔 시점, 젊은 시절의 그가 기차 창가에 앉은 모습을 담은 사진이 신문에 게제 되었다. 그는 델라웨어 윌밍턴에서 워싱턴DC 의사당까지 왕복 4시간씩 기차로 매일 출퇴근했다 한다.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표정으로 차창 밖을 바라보는 바이든의 흑백 사진을 보는 순간 매우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지니어스’의 한 장면이 오버 랩 되었다.

영화 지니어스는 제목처럼 두 천재에 대한 이야기다. 짧은 생을 살다간 작가 ‘토마스 울프’와 뉴욕의 유력 출판사 편집자 ‘맥스 퍼킨스’ 두 사람의 일과 우정에 대한 영화다. 천재 이었지만 독특한 분위기와 긴 문장으로 인해 모든 출판사로부터 책 출판을 거절당한 울프. 하지만 맥스는 그의 천재성과 상품성을 한 눈에 알아본다. 첫 만남에 책 출판에 대한 제의(?), 승낙(?)을 받고 감격해 하는 울프의 표정은 신념과 용기로 한계와 고난을 극복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이처럼 배우들의 섬세한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울프가 쓴 방대한 초고를 단숨에 파악한 맥스. 그로부터 두 사람간의 치열한 작업, 논쟁이 시작된다. 편집자는 단순히 오탈자나 체크하는 게 아니라 문장의 표현, 나아가 전체적 흐름까지도 작가에게 새로운 시각을 요구한다. 그래서 맥스는 때로는 원작을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움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시간을 통해서 작품은 더 큰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런 성공의 이면에는 두 사람 모두에게 남는 상처가 있다. 울프는 맥스 없이는 안 되는가! 반면 맥스는 언제나 뒤쪽에 서있을 수밖에 없음에 상실감을 가지게 된다. 이 역시 섬세한 표정으로 말하는 영화다.

이런 섬세한 감정연기 만큼이나 나에게 인상적인 장면은 맥스가 퇴근 기차간에서 울프의 원고를 읽는 장면이다. 출판사 동료의 부탁이긴 하지만 이런 통근 기차 안이 아니었으면 맥스는 울프의 원고를 읽을 시간을 갖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돌, 하나의 잎, 하나의 문에 관하여 그리고 잊힌 모든 얼굴에 관하여---”라고 읽으며 서서히 울프의 문장에 젖어드는 맥스. 역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 그리고 다음 날 출근길에서도 그의 글을 읽는다. 그리고 마침내 걸작의 탄생을 예감한다. 불편한 출퇴근길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작년 말 모 방송국에서 3부작으로 ‘세상 끝의 집-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을 방송했다. 당시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일부만 보았지만 기억에 남는 방송이었다. 이번에는 영화버전으로 나왔다. 2005년 알프스 깊은 산속의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의 모습을 담은 영화 ‘위대한 침묵’을 통해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그 후 교황 바오로 2세의 뜻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경북 상주에 자리하게 되었다. 이곳에는 다국적으로 이루어진 11명의 수도자들이 있다. 육류를 제외한 하루 한 번의 식사(약간의 푸성귀를 밑에 깐 맨밥 덩어리), 개인 텃밭에서의 노동과 낮 미사와 자정미사. 나머지 시간에는 기도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4시간씩 산책 할 때를 제외하곤 묵언 수행이다.

카르투시오 헌장 중 “우리의 주된 노력과 목표는 독방의 침묵과 고독에 투신하는 것” 절대 침묵과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제대로 응시하고 이것을 평생 지켜나가는 사람들에게서 깨달음이 있다고 믿는다. 토마스 울프를 알아보고 그의 작품을 세상에 내 놓을 수 있는 계기와 밑거름이 맥스의 단조롭지만 홀로 있는 시간(통근)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조 바이든은 29살에 거물을 꺾고 상원의원이 되었지만 얼마 뒤 아내와 막내딸을 교통사고로 잃는 비극을 겪었다. 그럼에도 그는 정치 생활을 포기 않고 매일 4시간씩 기차로 통근을 했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하루에 4시간씩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사진 속 그의 표정이 말해준다.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그 모습은, 그 시간이 그에게는 대단히 소중하고 생산적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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