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툰드라 사슴 발굽쇠 두드리는 소리로
쩌엉쩡 산정을 때리던 뜨거운 그대 눈물
밤새도록 고독을 저며 써 내려간 족적
희디흰 말씀의 감옥에 절로 갇혀서야
밀서의 끝자락을 푼다는 미련도 모르던 늪
다시, 시베리아 횡단길 백야를 건너는지
내밀어도 잡을 수 없는 기척 아득하다
홀로 젖어서
힘줄 꺾는 마른 소나무
미안하다
정말
◇곽홍란= 2001년 조선일보(시조), 1997년 매일신문(동시) 당선, 동시집 <글쎄, 그게 뭘까>, 시집 <직선을 버린다>, 소리시집 <행복한 동행> 등
<해설> 눈과 얼음으로 덮인 황무지. 그 황량한 곳에는 내일이 없다. 인간의 가슴은 언제나 따뜻해야 한다. 그 가슴이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다면, 그를 데워줄 수 없다면 그를 바라봐야 할 사람은 미안할 뿐이다. 그냥 미안할 뿐이다.
-정광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