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땅이 무인도인 줄도 몰랐다
애초부터 길들여온 적막인 줄 알았다
부싯돌 문질러 꽃불을 켜면
푸르게 화답하는 도깨비불들
나는 나의 왕이며 신하이며 종
나는 내 법이고 내가 내린 벌
고즈넉함이 부풀어 허공 가득 만발했다
돌아오던 날 사람들은 십 년 만의 귀환을 환호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번쩍거리는 현기증이
몇 조금이나 가기를 바라겠는가
어느 푸른 어스름에 다시 땅속 깊이 가라앉아
나 하나 없어지건 말건 탈 없이 돌아갈 세상
바로 여기가 무인도라고
잊었던 낱말들을 주워 진주처럼 꿴다
주문을 외우듯 생각을 엮는다
내 살아갈 오직 하나 열쇠요, 암호니까
다시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향아= 『현대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오른 후,『별들은 강으로 갔다』등 시집 23권.『불씨』등 16권의 수필집,『창작의 아름다움』등 8권의 문학이론서를 펴냄. 시문학상, 윤동주문학상, 한국문학상, 아시아기독교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등을 수상함. 현재, 국제P.E.N한국본부 고문, 한국문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자문위원. <문학의 집· 서울> 이사. 호남대학교 명예교수
<해설> 사람이 살지 않는 땅 무인도. 어쩌다 그곳에 발을 들였다면 그곳은 ‘나’만 존재하는 곳이다.
나는 있는데 네가 없다면 그게 어디 살만한 곳이라 말하겠는가? 나만 있고 네가 없을 때 들을 수 있는 것이 가슴에서 나와 참으로 나를 위로하는 ‘말言’일 것이다. ‘시詩’일 것이다. -정광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