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무인도에서
다시 무인도에서
  • 승인 2020.12.01 21: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향아

나는 그 땅이 무인도인 줄도 몰랐다

애초부터 길들여온 적막인 줄 알았다

부싯돌 문질러 꽃불을 켜면

푸르게 화답하는 도깨비불들

나는 나의 왕이며 신하이며 종

나는 내 법이고 내가 내린 벌

고즈넉함이 부풀어 허공 가득 만발했다

돌아오던 날 사람들은 십 년 만의 귀환을 환호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번쩍거리는 현기증이

몇 조금이나 가기를 바라겠는가

어느 푸른 어스름에 다시 땅속 깊이 가라앉아

나 하나 없어지건 말건 탈 없이 돌아갈 세상

바로 여기가 무인도라고

잊었던 낱말들을 주워 진주처럼 꿴다

주문을 외우듯 생각을 엮는다

내 살아갈 오직 하나 열쇠요, 암호니까

다시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향아= 『현대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오른 후,『별들은 강으로 갔다』등 시집 23권.『불씨』등 16권의 수필집,『창작의 아름다움』등 8권의 문학이론서를 펴냄. 시문학상, 윤동주문학상, 한국문학상, 아시아기독교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등을 수상함. 현재, 국제P.E.N한국본부 고문, 한국문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자문위원. <문학의 집· 서울> 이사. 호남대학교 명예교수

<해설> 사람이 살지 않는 땅 무인도. 어쩌다 그곳에 발을 들였다면 그곳은 ‘나’만 존재하는 곳이다.
나는 있는데 네가 없다면 그게 어디 살만한 곳이라 말하겠는가? 나만 있고 네가 없을 때 들을 수 있는 것이 가슴에서 나와 참으로 나를 위로하는 ‘말言’일 것이다. ‘시詩’일 것이다. -정광일(시인)-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