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다독거려요…당신과 나, 전 인류를 위해”
“세상을 다독거려요…당신과 나, 전 인류를 위해”
  • 김종현
  • 승인 2020.12.0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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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노벨상을 품자 - (41) 창세기(創世記) 평화 프로젝트
태초에 카오스가 있었나니
어둠과 밤만 존재하던 지구에
낮을 만들고 의미·역할 부여
결실 맺고 질서 잡아 ‘평화 태동’
평화란 통치자의 ‘양두구육’
손자병법 “전쟁은 질서수호의 방법”
사마천 “통일 바란다면 전쟁 준비를”
영원한 제국의 꿈 위해 인류만 희생

 

노벨상-창세기평화
창세기부터 지구촌 평화의 개념이 나왔다. 그림 이대영

먼 우주 어디선가 날아왔던 먼지 한 톨이 팽창해 지구별이 되었다. 가능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생명체조차 없었을 때, 모세 5경을 구전으로 전했던 모세(Moses, BC 1393~1273)는 창세기(創世記, Geneses)라는 ‘최초 지구촌 평화 프로젝트(The 1st Global Peace Project)’를 언급했다. i) 땅과 하늘을 구분하고, 모양새를 잡고, 깊은 곳에 물을 채웠다. ii) 빛을 만들어 밤과 낮으로 구분하고, 지구촌 첫날을 맞았다. iii) 하늘, 땅, 바다를 분명하게 구분해 각자의 역할을 달리하게 했고 6일간 일했으니 7번째 날은 달콤한 평화를 만끽하면서 푹∼ 쉬게 하였다.

대략 600년 뒤 그리스 보이오티아의 농민시인이었던 헤시오도스(Hesiodos, BC 759~650)는 자신의 저서 ‘신통기(神統記)에서 창세기라는 최초의 평화프로젝트를 ‘태초에 카오스가 있었나니 이에 질서를 부여하여 인류에게 코스모스가 되었다’고 요약했다. 좀 더 말하면 ‘첫째 무질서는 지구였고, 지구엔 어둠과 밤(night)만이 있어 (빛을 만들어) 낮(day)을 만들었다’라고 시작해서 하나하나 목적에 맞게 의미와 역할을 부여했고, 결실을 맺게해 질서를 잡았다.

또한 이와 같은 지구촌 평화를 중국의 노자(老子, BC 604~550)는 도덕(道德)이라고 칭하면서 도덕경(道德經)을 저술했다. “가장 평화로운 최선은 마치 물처럼 만물을 이롭게 할 뿐 서로 갈등을 갖지 않고, 누구나 싫어하는 가장 낮은 곳에까지 흡족하게 해야 한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訴惡, 故幾於道).”고 갈파했다.

한편, 그리스제국이 지구촌의 최강국으로 등장하면서, 플라톤((Plato, BC 427~347)은 자신의 ‘국가론 1권(The Republic Book 1)’에서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Justice is the interest of the strong).’고 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질서를 잡는 전쟁이 유일한 방법론이라고 당연시했다. 이전에 중국에서는 손자병법(孫子兵法, BC 544~496)에 의해 ‘전쟁이란 국가가 생사존망의 길에 놓이는 가장 중대한 처지(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라고 평화수호의 방법론으로 인식되었다.

사마천(司馬遷, BC 145~91)의 ‘사기(史記)’에서도 ‘통일을 원한다면 필연적으로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준비를 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로마후반기 300년대 푸블리우스 레나투스(Publius Flavius Vegetius Renatus, AD 300년대 생몰미상)는 자신의 ‘군사론(Epitoma rei militaris, 1473)’에서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십시오(Si vis pacem, para bellum).’라고 적었다.

이와 같은 아이디어는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법률론(Nomoi)’과 중국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얻었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도 중국의 언론에서는 ‘화평을 바란다면 전쟁에서 이길 기획을 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이미 서양에서 ‘Si vis pacem, para bellum’는 MSSG-31 챌린지 동전의 문양을 비롯해 영국왕립해군, 노르웨이 군사아카데미, 남아 LABS(Lohatla Army Battle School) 등 수 많은 군사학교, 군부대 및 학회 등에서 모토(motto)로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계룡대(鷄龍臺) 군사박물관에도 유사한 슬로건이 게시되어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좁은 의미로 ‘평화란 전쟁을 하지 않는 상태’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평화학(paxology)에서는 ‘분쟁과 다툼이 없이 서로 이해하고, 우호적이며, 조화를 이루는 상태’라고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이런 목표를 향해 올리브나무 가지와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물로 사용해 왔다.

어떤 의미에서 지구촌의 현실에서는 평화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분쟁과 제1차, 제2차 세계대전까지 했는데도 여전히 전쟁을 준비해야 하니, 강대국에서는 살상전쟁을 애들 장난(baby’s play)혹은 배틀게임(battle game)으로 생각하고 있다.

네덜란드 성직자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의 말과 같이 “겪어보지 못한 자에겐 전쟁이란 달콤한 것이다((Dulce bellum inexpertis).” 군대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코스타리카(Costa Rica) 헌법 제12조는 ‘전시엔 군대를 가진다’라고 명시돼 있다. 즉 평시에는 경찰과 민방위 성격의 준군사적 조직만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 대가로 얻은 헌법9조(日本憲法第9條)에도 ‘육해공군 그 외 전력은 보유하지 아니한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군은 태평양사령부를 보호하도록 자위대(自衛隊)를 인정했고 명칭만 군대가 아니지 실제 군사적 행동을 다 하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Heal the world’

 

진정한 평화는
“좋은 전쟁·나쁜 평화란 세상에 없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
가슴에 손 얹고 양심에 귀기울여야

‘평화태동’은 ‘전쟁을 통한 평화정착’보다 이전에 있었다. 기원전 600년경에 살았던 이스라엘의 선지자 이사야((Isaiah, BC 7세기)는 자신의 편지글에서 “(당시 통치자) 그분들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으로 낫을 만드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라는 바람을 실토했다.

또한 로마제국을 위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세금징수를 한 마태오(Levi Matthew, AD ?~74)는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라는 예언을 했지만 지구에서는 전쟁만이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1776년 미국독립선언을 기획했던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은 “좋은 전쟁, 나쁜 평화란 이 세상에 있었던 적이 없다.”고 단언했으며, 성직자 아브람 무스트(Abraham Johannes Muste, 1885~1967)는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라고 평화정착을 핑계로 말장난치지 말고 네 마음부터 평화로운 걸 선택하라고 했다.

과연 지구촌에서 ‘전쟁으로 악의 무리를 무찌르고 선의 올곧은 세상 만들기’가 가능할까? 역사를 통해 볼 때 평화란 통치자의 양두구육(羊頭狗肉)에 지나지 않았고, 영원한 제국의 꿈을 위해서 인류만 희생되었다.

겸허한 마음으로 뒤돌아보고 가슴에 조용히 손을 얹고 양심의 소리를 들어보면 단 하나 들리는 소리는 이것이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당신의 마음 한 구석에 사랑이 있다는 걸 알아요. 그곳은 내일보다 더 밝게 빛날 거요. 진정으로 노력한다면, 울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에요. 그곳에선 상처나 슬픔을 느낄 수 없어요. 그런 세상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죠. 살아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긴다면 조금 더 여유를 가져 보아요. 세상을 다독거려요.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봐요. 당신과 나, 그리고 전 인류를 위해서요...’

경남 밀양에 이런 이야기가 내려온다. 1500년경 명관이 밀양 현감으로 부임했다는 소문에 장난꾸러기 장돌뱅이가 현감의 민정밀탐(民情密探) 길목에서 다른 사내와 “내 돈 3냥을 네 놈이 주었다.” 아니 “네 놈이 3냥을 갖고 갔다.”고 대판싸움질을 하였다. 현감이 듣다가 “나 이곳 현감인데, 여기서 당장 해결을 못하겠으니, 내가 이돈 3냥을 갖고 가 내일 이맘때 해결하세.”라고 집무실 동헌(東軒)으로 논란의 돈을 갖고 갔다. 다음날 동헌에 식식거리면서 나타난 젊은 두 사내. 다시 싸움을 시작할 기세였다. 현감은 4냥을 그들 앞에 내놓고, “자! 우리 모두 1냥씩 손해 보세(三方各損一兩)! 자네 2냥, 자네 2냥, 그리고 나도 1냥을 보탰으니 1냥 손해 봤네.”라고 손바닥을 털면서 일어났다.

똑같은 이야기가 에도시대 또는 도쿠가와 시대에도 기록으로 남아있다. 전쟁에서도 이와 같은 방안이 이용되기 시작했다. 칼을 잡고 싸우다가도 i) 칼을 내려놓고(put the knife down), ii) 상대방의 손을 맞잡으면서(hold the other person’s hand), iii) 미안하다며 상대방의 어깨를 도닥거리거나(sorry, hit the other person’s shoulder), iv) 손가락을 걸며 다시는 싸우지 말라고 약속도 한다(put your finger on them and promise not to fight again). 이것이 전쟁현장에서는 휴전협정(cease-fire agreement)이고, 군사적 강화조약(treaty of peace), UN의 평화유지(peace keeping service), 핵무기폐기운동(campaign for abolishing nuclear weapons) 혹은 내전의 종식(end of the civil war) 등도 여기에 해당한다.

글·그림 = 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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