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고 싶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승인 2020.12.0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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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문현숙 시인
12월, 끝이며 시작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가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처럼 애틋하다.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그중 섬 여행은 도시와 섬, 섬과 섬, 그리고 마음과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기에 충분한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가두었든 타인에 의해 갇힌 것이든 상관없다. 생각과 마음, 섬과 섬 사이에는 틈이 있기 마련이다. 틈을 비집고 들이치던 한 줄 따사로운 햇살처럼 여행은 그 틈을 발견하고 메꿔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곤 한다.

네 명의 그녀들이 맞는 것이라곤 나이뿐이다. 살아온 날도 생각도 하물며 남편들의 직업조차 모두 다르다. 그런데도 3박 4일이라는 전혀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하는 일이란 모두에게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듯 보인다. 뭐라 단정 지을 수 없는 거리가 그녀들 사이엔 섬처럼 놓여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결혼 하면 생기게 되는 시어머니나 시누들처럼 남편이란 타의에 의해 맺어진 사이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을 부정할 수 없다. 남자들끼리만 모이라는 성화에도 부부동반이라야 한다며 들어주지 않았다. 서른 해가 넘도록 보아온 얼굴이야 세월이 쌓일수록 눈으로 익혔지만, 마음과 마음 사이엔 좀처럼 외나무다리 하나 놓이지 않았다.

어릴 적, 한동네에 산 친구들로 구성된 모임으로 이번 여행을 감행하도록 부추긴 건 남편들이다. 자신들이 모은 곗돈을 풀어 큰 인심 쓰듯 아내들에게 그저 한 번 툭 던져본 미끼를 그녀들이 덥석 물었던 셈이다. 선뜻 가겠다고 나서자 남편들 역시 이만저만 걱정이 아닌 기색이다. 전혀 다른 네 명의 그녀들이 어울릴 수 있을지 없을지를 내기까지 해가며 가기만 간다면 금전적 시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호언장담을 주고받는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모른 척 그녀들이 뭉칠 수 있도록 쇼 아닌 쇼를 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처음으로 집을 나와 바깥 잠을 자 본다는 미자 씨. 남편 일을 도우며 늘 가장의 힘듦을 곁에서 보고 사는 일이 가슴 아프다는 명희 씨는 가끔 바깥바람도 쐬며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며 미소 짓는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위해서라도 아직은 일을 놓을 수 없다는 순란이는 잠시 접어 둔 꿈이 생각났는지 콧잔등이 붉어지도록 속울음을 삼킨다. 그녀 역시 마음이 천근만근이긴 마찬가지다. 접었던 꿈을 뒤늦게야 펼친 이유로 세상 속으로 뛰어들지 못한 채, 남편 등 떠밀어 사지로 내몬 것 같은 자신이 죄인인 것만 같아 스스로 천형이라 여기며 글 속에 갇혀 산 지 오래다.

여행은 어쩌면 서로서로 간의 원활한 관계 맺기를 배우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여행 내내 떠나지 않았다. 그녀가 트롯을 듣고 싶어 할 때 누군가는 클래식을 들어야 가슴이 트인다고 말한다. 혼자 셀 카를 들고 바다를 찍고 싶어 할 때 또 누군가는 단체로 인증 샷을 찍어 남편들에게 보낸다며 재촉한다. 그녀가 눈 뜨자마자 커피로 허기진 속을 채워야 한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그런다, 밥부터 꼭 챙겨 먹어야 비로소 정신이 든다고. 실랑이를 벌이다가도 때론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며 오롯이 자신의 내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다가 중요한 일을 놓칠 때가 있고 소중함이 덜 한 걸 붙잡고 있다가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거나 깨뜨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이성복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그렇게 소중했던가!' 하고 죽비처럼 우릴 깨우치게 한다. 종이컵에 뜨거운 커피를 들고 떠나는 고속버스를 향해 달리느라 새로 산 양복을 다 버린, 시 속 풍경에 우리들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다. 양복보다 그 순간 커피 한 잔이 더 중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 식어버린 커피를 두고 왔더라면 하는 생각을 도돌이표처럼 하게 된다. 마음에 얼룩을 남기면서도 끝끝내 내려놓지 못한 것들은 없나 되돌아본다. 정말 소중한 것도 아니었는데 끌어안고 끝내 내려놓지 못한 것들로 인해 마음을 다치게 한 적은 없었던가.

보고 듣고 말하고 그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 여기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새삼 그녀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축복임을 깨달으며 섬을 떠나 다시 육지로 되돌아온다. 그녀들이 꾸려간 가방보다 훨씬 커다란 마음의 선물을 한 보따리 가득 채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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