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술관, 이인성미술상 수상자 조덕현 ‘그대에게’展
대구미술관, 이인성미술상 수상자 조덕현 ‘그대에게’展
  • 황인옥
  • 승인 2020.12.07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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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역사·한국전쟁…시공 초월한 묵직한 서사의 울림
가장 중요한 현재 직시하기 위해
시대 무관하게 역사적 사건 나열
음악·문학 협업으로 균형 강조
윤이상 곡으로 ‘음의 정원’ 제작
사진·회화·설치 등 50여점 선봬
전시장 하나의 설치작처럼 구현
플래쉬포워드flashforward-2020
조덕현 작 ‘플래쉬포워드’
 
조덕현작가
 

사려깊고 겸손한 성향의 작가 조덕현에게서 반항아적 기질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작업에 임하는 태도적 측면에서 그를 관찰하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난해하고 심오할수록 권위를 인정받는 현대미술의 통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려는 의도가 그의 작품에서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는 작가로 30여년을 활동하면서 미술을 최대한 겸손하고 쉬운 시각언어로 구사하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이런 까닭에 감상자의 지적 능력이나 감성 코드에 따라 작품 속 깊이를 읽어내는 수준은 천차만별일지라도, 적어도 누구든 그의 작품 앞에서 이해할 수 없는 조형언어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질 이유는 없다. 이러한 태도는 그를 2019년 이인성 미술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구미술관은 2019년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인 조덕현 개인전 ‘그대에게 to thee’전을 대구미술관 2,3 전시실에서 열고 있다. 전시에는 신작을 포함한 사진과 회화, 대형 설치작품 등 50여점을 모아 작가의 작업세계를 총체적으로 되짚고 있다.

그의 미술 철학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점철된다. 그에게 ‘재미적’ 요소는 “감상자로 하여금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하는 첫 번째 장치”에 해당된다. 통상 감상자를 단숨에 사로잡을 ‘재미적’ 요소에는 시각적 발랄함이나 흡입력 있는 서사가 꼽히는데, 그는 후자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그에게 작품 속 서사는 감상자의 정서를 고조시키는 장치에 해당된다. 말하자면 영화나 소설 한 편이 그의 작품 하나에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는 것과 같다.

서사를 기반으로 하는 작업에서 음악이나 문학과의 협업은 서사의 밀도를 높이는데 큰 힘을 발휘한다. 조덕현은 음악이나 문학과의 협업에 적극적이다. 이번 대구미술관 전시에도 음악가 윤이상의 음악과 윤이상의 고향인 통영에서 발굴한 소품들을 ‘음의 정원’이라는 하나의 작품으로 묶어냈다. 한 소절의 음악을 통해 단숨에 눈물을 뽑아내는 음악이 가지는 정서적 고조 능력을 미술에서 적극 활용하려는 태도의 결과다. 이런 협업은 6~7년부터 시작됐다.

그가 “청각예술 장르와 시각 미술 장르간의 협업에서 오는 이상적인 균형”을 언급했다. “음악과 미술이 만나 균형 잡힌 공간에 들어서면 그 즉시 말이 필요 없이 순간적으로 감동이 고조된다. 여운도 길고 지적인 만족감도 높아진다.”

평면작업의 출발선은 사진이다. 직접 촬영했거나 각종 매체에서 찾은 사진들에 작가의 행위를 더하거나, 사진을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회화로 그려낸다. 이는 그의 평면이 “사진 같은 회화이거나 회화 같은 사진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다.

주로 연필과 콩테(흑연, 목탄 등의 원료 광물을 미세한 가루로 만든 안료분(顔料粉)과 점토를 섞어 물로 반죽해 다져 구운 것)를 사용해 그린 사실적인 회화는 감상자의 이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기술적인 부분이 가미된 사진에는 회화적 요소가 어른거린다. 사진을 모태로 하는 작업 방식 또한 “쉬운 그림”을 위한 방법론 중 하나로 선택됐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기술적인 표현을 보고 사람들은 신기해한다. 그때부터 감상자는 작품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마음을 내게 된다. 감상자의 마음을 단숨에 잡아끄는데 이 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작품마다 서사를 중심으로 풀어가지만 서사를 엮는 방식은 단순명료와는 거리를 둔다. 그는 시간과 공간을 서사 속에서 구축함에 있어 일정한 흐름이나 규칙의 틀을 고집하지 않는다. 수많은 시공간을 한 화면에 무질서하게 병치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전개하며 다차원적인 여러 갈래의 세계를 하나로 엮는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10m에 달하는 초대형 신작 회화 ‘플래시포워드’ (Flashforward)에 그러한 태도가 잘 스며난다. 작품에는 시리아 팔미라 유적, 아프가니스탄 쿤드즈의 현대 국경없는 의사회 병원의 폭격 잔해, 카인과 아벨, 품페이 화산폭발, 중세 시대의 최후의 만찬, 17세기 루벤스 그림, 1950/60년대 한국 영화계 스타들의 서사들이 층층이 얽혀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역사와 이미지들이 영화촬영이나 연극을 시연하듯 하나의 시공간에 병치되며 서사의 깊이를 더한다. 디지털 시대에 흔한 합성과 비견할 수 없는 묵직한 서사들이다.

작업의 한 축에 서사가 존재한다면, 또 다른 축에는 각기 다른 시공간을 미스터리하게 병치하는 작가 특유의 서술 방식이 있다. 그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과 서로 다른 공간들을 한 화면에 무질서하게 병치한다.

시간의 흐름과 무관한 전개들이 다반사로 진행되지만, 분명한 관점 하나는 견지하고 있다. 그의 의식이 직시하는 곳은 오직 현재에 머문다는 사실. “과거나 미래의 사건이나 역사를 활용하지만 그것은 오직 현재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선택적 차용에 불과하다.”

전시작품인 ‘에픽 상하이(epic Shanghai)’는 다양한 시공간이 얽혀있는 결정체다. 작품은 가상의 올드 상하이라는 낯선 시공간을 누비는 주인공 ‘조덕현’과 또 다른 여주인공 홍(紅)이 이른바 아웃사이더와 인사이더로서 교직하며 이루어내는 서사로 꾸려졌다.

이 서사는 작가 조덕현과 상하이 출신 소설가 미엔미엔(棉棉)의 협업에 의한 결과물인데, 작가 조덕현은 가상의 인물 ‘조덕현’을, 미엔미엔은 그의 모든 소설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홍(紅)을 각각 대리인으로 삼았다. “작품 속 대리인을 온갖 상징으로 가득한 낯선 시공간인 올드 상하이로의 여행을 이끌며 나를 투영해내고 싶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대구경북의 역사를 작가의 시선으로 해석한 점이다. 그 중 작품 ‘1952, 대구’는 한국 전쟁에 군목으로 참여한 미군 장교(Edgar Tainton, Jr)가 1952년 대구 능금시장에서 찍은 사진(Douglas Price 소장)을 회화로 그렸다. 전쟁 중임에도 에너지 넘치는 군중의 모습과 넘실대는 희망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제작됐다.

작가는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인성과 박수근 등 선배 화가 작품들이 떠올랐고, 당시 화가들의 작품이 깊이 이해가 되었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대구경북의 젓줄인 낙동강 상류인 내성천을 촬영하고 6.25 참전 군인을 합성한 사진 작품 ‘강’과 내성천의 모래로 구축한 거대한 기둥 모양의 설치 작품 ‘모래성’에는 대구경북의 역사와 문화를 되짚는 의미와 함께 코로나 19의 대재앙에 휩싸인 현생 인류의 자기 반성적 태도가 동시에 담겼다.

“선비문화가 내성천을 따라 고고하게 이어져오는 대구경북의 역사를 현재의 시점에서 조망하고, 코로나 19라는 재앙이 서구문명에 기반한 물질만능으로부터 왔음을 들춰내고 질문을 던지는 의미를 중첩했다.”

작품 하나 하나가 서사의 집이듯 거대한 전시장은 또 다른 서사의 장이다. 이번 대구미술관 전시에서도 제2전시실에서 선큰가든, 그리고 제3전시실로 이어지는 공간마다 별개의 서사들을 유기적으로 엮어 전시장이 마치 초대형 설치작업처럼 구현했다.

특히 이번 전시 주제를 ‘그대에게’(To Thee)로 정해, 작가가 그동안 다뤄왔던 기억의 문제 연장선에서 현재와 미래에 기억하고 재고해야 할 가치를 포괄하고 있다. 작가에게 ‘그대’는 도달점이기도 하면서 절실함을 발현하게 만드는 시작점에 해당된다.

코로나 19가 사실상 21세기의 시작이라고 평가하는 의견들이 많아지고 있다. 코로나 19가 비대면 사회로 이동과 제4차 산업혁명 가속화의 분수령이 되고 있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말하자면 패러다임의 변화를 코로나 19가 가속화했다는 의미다.

조덕현 역시 이러한 사회적인 변화와 작가로서의 자신을 분리해서 인식하지 않는다. 사회의 변화와 함께 작가의 작품 세계에도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기존에 천착했던 흑백 위주에 변화를 시도했다. 밝은 톤의 색들이 화면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를 거듭하고 있다. 그의 변화에 대한 갈망은 시각적인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적인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전환기 작가가 가지는 태도적인 측면에도 균열이 가고 있다. “전환의 시대에 미술은 어떤 새로운 역할로 재탄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대표적이다.

그는 “코로나 19로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있는데 그 중에 미술도 목록에 추가되어야 한다”는 시각을 견지했다. 특히 그는 미술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는 일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그의 이번 전시작품들은 이 과제에 대한 충실한 답변처럼 다가온다.

그가 “코로나 19가 문명의 향방에 갈팡질팡 하면서 이런 참극이 발생했다면 미술도 거기서 자유롭지 않다고 본다. 미술도 이제는 성찰적으로 태도들이 조금씩 재고되어야 한다”며 코로나 19로 달라진 미술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언급했다.

“누구든지 자기 교양이나 이해정도, 자기 삶의 이력을 가지고 충분히 이해하고 의미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데 미술이 충분히 몸을 낮춰가야 한다. 그 안에서 탑재하는 의미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으면서도 난이도가 중첩된 결과물들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시는 내년 1월 17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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