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 탓은 그만…
이제 남 탓은 그만…
  • 승인 2020.12.0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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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경제학박사
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경제학박사
고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 1995년 베이징 특파원과 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한 발언이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당시 정치권 실세들로부터 곤욕을 치뤘다는 말도 있지만, 김영삼 정부가 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이 회장을 사면한 것과는 별개의 의미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 상황에서 그때 고인이 한 발언의 신비성을 검증해 보면 삼성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고, 개인적으로는 신뢰하지만 행정조직 내에는 아직도 영혼 없는 인물들이 있으며, 정치권은 여야만 바뀌었을 뿐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진행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현실을 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다를 수도 있다. 정부여당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누적된 적폐 때문이라고 주창하면서 조자룡 헌칼처럼 휘둘렀고, 소액주주운동과 재벌을 비판했던 강단 학자들이 계몽주의 군주처럼 등장해 일장 훈시를 하였지만 백약이 무효하다는 말처럼 누더기가 된지 오래됐고, 문재인 대통령의 한마디에 탈원전정책으로 급선회하면서 1978년 설립된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를 2017년에 가동 중지했다. 그래도 방점은 공수처법인 것 같다. 이들은 공수처법이 검찰 개혁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통과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입장에서 보면 공수처법은 개혁의 아이콘이 될 수도 없고, 오히려 권력 집중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할까?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사회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참여한 자들이 하나의 공동 결의를 통해 기본적인 원리와 의무를 할당하고 사회적 이익의 분배를 정해줄 원칙들을 채택하게 된다. 이들 상호간에 상충되는 요구를 조정할 방식과 그들 사회의 기본 헌장이 무엇인가를 정하게 되고, 이를 위해서는 합리적인 인간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가상적 상황에서 행할 때 비로소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있게 된다. 이런 가상적 상황이 '무지의 배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이런 저런 연(緣)으로 연결되어 있어 무지의 베일에서 선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선거나 정책결정에서 고질적인 편 가르기가 나타나고, 나아가 한 개인이나 한 집단의 근거 없는 신념이 정책으로 결정되면서 결국 관료는 3류, 정치인은 4류로 만들게 된다. 이러한 행동이 가능한 것은 그들을 선택한 국민들 자신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일부 국민들은 '내 탓이오'라고 하지만 어쩌면 그 밑바닥에는 '내가 왜?' 라는 인식도 있다. 왜냐하면 정치권에 대한 비판을 곰곰이 되살펴보면 우리 편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있지만 상대방에 대한 태도나 반응은 거의 원색적인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추미애와 윤석열 사태를 보면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대한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야당 입장일 때와 여당 입장일 때 보는 윤석열로 인해 치킨게임처럼 보이는 것도 전형적인 남 탓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제는 정치권에 비판 보다는 그들을 뽑아준 우리 스스로를 한번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목소리 높여 비판하는 정치인들을 뽑아준 사람들도 바로 국민들인 우리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저들을 뽑아준 우리들 스스로가 진심으로 '내 탓이오'라는 생각을 해야 하며, 내가 잘못 선택해서 지금 이런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또 다시 남 탓만 한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잘못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아울러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자유 대한민국의 내일은 어두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행위는 결국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된다고 주장한 반면 존 내쉬는 '게임이론'을 통해 개인의 이익이 극대화되면 서로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오히려 양보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을 가져준다고 한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의 이타심을 강조한 점을 유추해 본다면 이기심의 이면에는 이타심은 기본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으므로 남 탓 보다는 내 탓이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3류, 4류라고 비판하면 평소 내가 비판하는 사람으로 한정해 감정이입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을 비판하는 국민들은 1류일까? 국민이 1류인데 4류 정치인을 뽑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지금 입장에서 선일지라도 바뀐 입장에서는 악이 될 수 있으므로 만들고 비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이제는 남 탓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보다는 내 탓하면서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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