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대구 답사] “다양한 문학적 배경을 지닌 대구가 자랑스러워”
[내 고장 대구 답사] “다양한 문학적 배경을 지닌 대구가 자랑스러워”
  • 남승현
  • 승인 2020.12.1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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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중학교 학생들이 대구문학관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김선국 사진작가

 

<내고장 대구 답사> 교동중 ‘한 발 디딤’ 팀

◇청라언덕

청라언덕은 20세기 초 기독교 선교사들이 거주하면서 담쟁이를 많이 심은 데서 유래되었으며, 달성토성이 대구의 중심이었을 때 동쪽에 있다하여 동산으로도 불리운다. 아름다운 정원인 이곳은 챔니스주택, 스윗즈주택, 블레어주택 등 옛 선교사들이 생활하였던 주택과 90계단, 대구 3.1만세운동길, 대구 최초의 서양사과나무,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인 동무생각 노래비, 선교사와 그 가족들의 묘지인 은혜정원 등이 있다.

◇마당 깊은 집 문학관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은 소설 ‘마당 깊은 집’의 스토리와 등장인물, 대구 피난민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문학 체험 전시공간이다. ‘마당 깊은 집’은 소설가 김원일의 자전적 소설로 1988년 발표되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8부작 TV드라마(MBC)가 1990년 방영되어 화제를 모으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이 작품은 6.25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부터 1년동안 대구의 중심부였던 종로, 장관동, 약전골목, 중앙로 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상화 고택
 

민족저항시인 이상화의 옛집
1943년까지 말년을 보낸 장소

이상화 고택은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6-1(계산동2가 84번지)에 있는 민족저항시인 이상화 시인이 살던 옛집이다. 1939년부터 작고하던 1943년까지 말년을 보낸 역사적인 장소이며, 대구근대문화골목에 위치하고 있다.

이상화는 대구에서 태어나 한국 근대사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암흑의 시대, 조국의 아픈 현실을 통감하며 저항정신을 시에 담아 표현한 시인이자 나라와 겨레의 고통을 해방시키고자 고뇌하고 행동한 독립 애국지사이다. 이상화는 험난한 근대사 속에서 준열한 자기비판과 불같은 저항정신으로 나라를 상실한 국민들이 해야 할 책무가 무엇이며, 지조와 애국이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이 땅에도 저항문학이 존재했음을 실증한 인물이다. 그가 살다간 시대는 일제 치하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담한 현실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굴종을 숙명으로 알며 변절한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슬픔을 삼켜야만 했다.

◇계산성당 감나무

스테인드글라스로 지은 계산성당
대구 유일 1900년대 초 건축물

대구 계산성당은 1886년 대구 지역 선교 활동의 책임을 맡고 부임한 로베르 신부가 지금의 계산동 성당 부지를 매입하면서 건립되기 시작했다. 1899년 한국식의 목조 십자형 건물로 지어졌으나 1년 만에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그 후 재건축에 착수하여 로베르 신부가 설계하고,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함석이나 스테인드글라스 등의 재료들은 프랑스 및 홍콩에서 들여와 사용했다. 이 건물은 대구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1900년대 초기의 건축물이다. 건물 전체적으로는 둔중한 로마네스크 양식을 띠고 있지만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 등의 고딕적 요소들이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계산성당의 감나무는 수령이 100년 정도된 것으로 1930년대에 그린 계산동 성당의 배경이 된 나무 중 한그루로 ‘이인성 나무’라고 이름이 지어졌다.

이인성은 대구 출신의 천재 화가로 수창초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28년 ‘촌락의 풍경’이라는 수채화를 세계 아동미술전람회에 출품해 특선을 차지했다. 그 후 1929년부터 1944년까지 16년 동안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했고, 14회 선전에서는 ‘경주의 산곡에서’로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또한 1998년 모 미술전문잡지사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평론가 13명을 대상으로 한국근대유화 베스트10을 조사한 결과 1위로 선정되었으며, 작가 인기도 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대구시는 대구를 빛낸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이인성 미술상’을 제정해 해마다 그 해의 가장 우수한 화가를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대구문학관

대구문학관은 근대문학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향촌동에 1912년 대구 최초로 건립된 일반은행인 성남상업은행 건물을 리모델링해 조성한 문화시설이다. 1920년대 대구문학의 태동기부터 대구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1960년대까지 대구근대문학의 역사와 문학작품을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근대문학 공간이자 교육의 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달성공원 상화시비

달성공원에 자리한 이상화 시비
한국 문단 최초 시비로 큰 의미

이상화는 호를 상화라 하며 1901년 4월 5일 이시우 선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943년 3월 21일 43세로 세상을 떠난 대구가 낳은 애국 시인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의 침실로’ 등이 있다.

이상화 시비는 대구 달성공원에 있다. 1948년 당시 대구에서 발간되던 시 전문지 ‘죽순’을 중심으로 한 문인들이 주축이 되어 세운 이 비는 우리나라 문단 최초로 세워진 시비라는 점에서 한국문학상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남승현기자 namsh2c@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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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중학교 학생들이 대구문학관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김선국 사진작가

1950년대 피난민 삶 들여다보며 당시 고달픈 삶 상상

◇대구의 문화유산-교동중학교 ‘한 발 디딤’ 팀

김원일 ‘마당 깊은 집’ 문학관
작가 소장품·작품 원고도 전시

“청라언덕의 백합 같은 짝사랑 대상이 우리한테도 생길까?”, “마당 깊은 집 길남이 식구는 이 좁은 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우리가 전후세대라면 어떤 모습으로 대구를 살아갔을까?”…….

대구 문학 예술인들이 지핀 정신적 불씨가 지역 곳곳에서 움튼다. 기라성 같은 걸출한 지역 예술인들이 남긴 작품들은 세대를 거듭한다고 해서 퇴색되지 않는다. 가까운 거리마다 생생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독자를 작품 속 세계로, 또 그 너머의 넓은 세상으로 마음껏 오가게 만든다.

9월 26일 대구 교동중학교 학생들은 지역 곳곳에 남아있는 문학예술의 흔적을 곱씹었다. 대구출생 박태준 작곡가의 가곡을 들으며 노래 배경이 된 곳을 찾아가거나 지역문인들의 생애와 정신이 녹아있는 고택, 문학관을 방문하는 등이다.

학생들은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문학관에 들어서 작품 속 주인공 길남이 식구들이 살았던 좁은 방안을 육안으로 살폈다.

마당 깊은 집은 김원일 소설가의 자전적 소설로 주인공 길남이를 통해 선명하게 기억된 1950년대 대구를 세밀하게 재생한다.

대구 피난민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문학 체험 전시 공간인 마당 깊은 집 문학관에는 작가의 소장품을 비롯한 작품 원고와 전후 생활을 유추하도록 소설 배경을 재구성한 전시 공간, 소설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온라인 프로그램 등이 마련돼 있다.

학생들은 “작가가 당대 지역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수차례 고친 원고를 보니 문학인으로서의 고통이 전해진다”며 “전쟁 이후 고달픈 생활들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문학관을 통해 소설 배경과 역사적 흐름을 다시 눈으로 확인하니 새롭다”고 말했다.

이어 발길을 옮긴 곳은 이상화 고택과 국내 문단 최초의 시비로 알려져 있는 ‘상화비’가 자리한 달성공원, 박태준 작곡가의 동무생각 가사를 담은 ‘동무생각비’가 있는 청라언덕이다.

김은숙 문화해설사가 재생한 ‘동무생각’ 가곡을 듣던 학생들은 동무생각비 앞에 서서 저마다의 짝사랑 이야기를 풀어냈다. 박태준 작곡가를 비롯해 멀지 않은 과거의 학생들과 같은 감정을 공유하면서다. 이상화 고택과 상화비 앞에서는 작가의 생애를 되짚거나 ‘나의 침실로’라는 작품을 낭독하기도 했다.

“지역의 문학 예술인들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남아있다는 것이 참 감사한 것 같아요. 이 분들의 흔적이 있는 곳에서 음악을 듣고 글을 읽다보니 집 안에서만 문학 예술을 즐기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대구문학관에 들러서는 지역문학의 정수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의지에 감탄하기도 했다. 교동중 학생들은 대구문학의 역사와 위상을 증명할 희귀자료를 생소한 눈길로 바라보는 한편, 결코 멀지 않은 곳에서 대구문학사에 족적을 남겼던 문인들의 삶을 직시했다.

“지역의 문학을 지켜나가는 일에 관심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어요. 이렇게 가까운 곳에 문인들을 잊지 않고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담겨져 있는 줄 미처 몰랐어요. 앞으로 더 대구문학 알아가고 싶어요”

이밖에도 학생들은 문화해설사와 함께 근대예술인들의 당시 생활공간과 활동상을 고스란히 담아둔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 지역의 천재 화가 이인성의 이름이 붙은 계산성당 감나무 등을 찾았다.

한지연기자 jiyeon6@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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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중학교 학생들이 대구달성공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선국 사진작가

"지역 역사 들으며 진정한 대구 사람 된 것 같아요"

◇현장답사 소감

청라언덕서 들은 '동무생각'

이상화 고택 등 인상깊게 봐 

학교 친구들과 ‘내 고장 대구’ 답사를 다녀왔다. 청라언덕을 갔는데 많은 담쟁이들이 있었고 올라갈 때 약간의 힘듦이 있었지만 주변 환경과 고택이 아름다웠고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감상한 ‘동무 생각’이라는 노래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또한 대구에서는 3.1 운동이 다른 날에 시작되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내가 그동안 역사에 무관심 했구나 싶어서 약간 반성하게 되었다. 특히 청라언덕은 지상철에서만 들었던 이름이었는데, 진짜 그 장소에 오니까 특이하다고 생각했고, 그 중 이인성 화가의 그림이 색채가 강렬하여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만약 그림을 먼저 보았다면 그림을 보고 이 곳에 꼭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상화 고택을 갔는데, 그 곳은 확실히 옛날 집이라 신기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도 상상이 되었다. 그리고 또 인상 깊었던 것은 ‘마당 깊은 집’ 문학관에 있는 원고가 수정이 엄청 되어 있는 것이었다. 작가라는 직업은 매우 힘들다는 것을 느꼈고, 그 드라마에 나오는 방을 보았을 때 그 좁은 공간에서 주인공 가족 5명이 어떻게 생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대구 문학관에 갔다.

3층에서 대구를 대표하는 ‘죽순’이라는 책의 원본을 볼 수 있어서 신기했고, 현진건이라는 작가님이 대구 출신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작가분들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중에 따로 그 작품들을 자세히 읽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4층에는 작가분들의 사진이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 담긴 이야기가 재미있고 신기했다. 뒤에는 조금 지쳐서 제대로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못들은 부분도 있었지만 대구에 살면서 대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된 것 같았고, 그 전에는 대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면 이번에는 여기에서 지식을 쌓아 나중에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설명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상화시비는 ‘나의 침실로’라는 시가 적혀있었는데, 이상화의 시비의 글자가 이상화 아들이 11살 때 쓴 것이라고 해설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을 들었을 때 놀라웠고, 좀 더 그분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오늘을 통해서 나는 드디어 진정한 대구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이제는 아는 것도 많아졌으니 3학년 역사 수업도 문제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해설사 선생님께서 설명을 잘해주셔서 이해가 쉬웠고, 오늘 답사는 참 유익하고 좋았다.

교동중 ‘한 발 디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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