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망치소리
12월의 망치소리
  • 승인 2020.12.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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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SQ힉스아카데미 대표, 경영학박사
연말에는 아쉬움과 착잡함을 항상 느끼게 마련이지만 올 12월은 유난히 마음이 아프다. 우리 지역의 유일한 소극장인 아뉴스데이가 철거되고 있기 때문이다. 7년 전 내가 설립한 소극장 아뉴스데이는 코로나 19의 여파로 문을 닫게 된 것이다.

결국 이번 달로 그동안 내가 시도했던 소극장 문화실험은 끝나게 된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소극장, 그 공간에 대한 철거의 부담과 아픔을 안고 이제 나는 수신자 없는 소극장 문화실험 보고서를 쓰고 있다. 왜 나는 이곳에 소극장을 설립했으며 그 소극장은 내게 무엇을 남겼을까? 인근 대학생들과 주민들이 공연 문화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하나가 되고자 설립했던 소극장은 그 공사비용과 임대료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 애쓰고 수고한 극단 단원들과 관객들을 생각하노라면 그것은 그리 아깝지 않다. 오히려 설 곳을 잃어버린 젊은 배우들의 현실에 더 마음이 저려온다.

소극장의 옆에 위치하고 있는 내 사무실에서는 소극장 설비를 뜯어내는 망치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내게 그 망치소리는 귀를 때리는 소음이 아니라 마음을 때리는 폭음이다. 그 폭음이 내 마음의 숨겨진 감정을 건드린다. 12월의 망치소리에 애써 누르고 있었던 설움이 터져 나온 다. 그 설움은 기대했던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인한 것이다. 그 사람들 가운데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 있고 문화·예술계 친구들, 그리고 종교계와 정치계 지인들도 있다. 소극장 공사를 처음 시작할 때, 나는 이런 분들이 표를 몇 장 사 주거나 가끔 들러 관심을 가져 주리라 은근히 기대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무료 초대권을 매번 보내 주어도 한 번도 방문해 주지 않았다. 12월의 망치소리에 하필이면 그 사람들에 대한 섭섭함이 새삼 밀려온 것은 아무래도 내가 속이 좁은 탓이리라.

그러나 이런 설움을 극복하는 큰 힘은 소극장에서 본 젊은이들의 웃음이었다. 우리 극단은 연극을 전혀 모르는 시민들을 모집하여 훈련한 후에 작품을 무대에 올렸는데 매번 공연은 성공리에 끝이 났다. 시민배우들은 전문배우에 비해 연기가 부족하긴 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연기로 관객들의 큰 환호를 받았다. 그들이 짓는 함박웃음, 관객들이 보낸 박수와 환호는 아직 내 마음에 깊게 남아 위로를 준다. 그들 중에는 가족 모두가 아마추어 연극배우가 된 경우도 있었다. 그 집의 한 자녀는 서울로 진학을 하여 지금 유망한 전문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작년 여름에는 소극장이 주관하여 동네 연극 축제를 열었다. 인근 동네의 초등학생과 중학생 20여 명을 모집하여 8주간 훈련을 한 후에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고 연극의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20분으로 기획된 연극은 학생들의 열의로 50분으로 연장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어린 학생 배우들은 50분의 공연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어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아이들이 그렇게 변할 줄을 미처 몰랐다. 우리 극단의 연출자와 배우들에게 그 정도의 능력이 있을 줄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공연을 본 학생들의 부모들은 이런 공연을 매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코로나로 인한 소극장의 패쇄로 그 부탁을 더 이상 들어 드릴 수 없게 되었다.

지난주에 경북대 교수 한 분과 식사를 하던 중에 그 분이 자기가 처음 부임해 왔을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처음 학교에 부임하여 부근의 거리를 지나 가다가 우연히 소극장을 발견하고 무척 놀랐다고 했다. 그때 주위 사람들에게 소극장과 내게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수소문하여 나를 찾게 되었노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지난 7년 간 좋은 동료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다. 그는 지역에 소극장을 설립한 나를 과분하게 인정해 주며 격려해 주었다. 그런 분들 덕분으로 소극장을 뜯는 12월의 망치소리는 이제 폭음이 아니라 내 어깨를 치는 죽비 소리, 내 심장을 울리는 종소리 같게 들린다. 내 이력에 ‘소극장 아뉴스데이 설립하여 7년간 운영함’이라고 넣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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