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바뀌는 물결, 나를 보는 듯 했다” DCU갤러리, 우재오 사진전
“끊임없이 바뀌는 물결, 나를 보는 듯 했다” DCU갤러리, 우재오 사진전
  • 황인옥
  • 승인 2020.12.1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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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고민 안고
지난해 연말 유럽 3개월 여행
물결 이미지와 풍경 사진 선봬
획일성 경계하는 태도 엿보여
우재우-작
우재우 작.

지난해 겨울, 무비자 체류 일정을 채우고 오겠다며 유럽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그는 비장했다.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와 먹고 사는 일에 매달리느라 작업을 중단해야 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을 견디기에 임계점을 지난 때였다.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숨 쉬는 것조차 버겁겠다 싶을 시점에 쫓기듯 여행길에 올랐다. 당시 그는 지쳐 있었고, 그의 내면은 땅에 떨어진 겨울 나뭇잎처럼 건조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출국 이틀 전에야 첫 숙소를 예약할 정도였을까?

작가 우재오가 “내 스타일상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여기를 떠나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을 했다”며 지난 겨울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첫 직업은 안정된 직장인이었다. 안정된 대기업에 입사해 여느 직장인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한 서울 생활에 지쳐갔다. 직장을 나오고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대구로 내려온 것은 2008년 1월 1일이었다. 대구에서 조금은 가볍게 일을 하며 지내고 있을 때, 우연히 손에 들어온 카메라에 홀려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했다. 작가 우재오의 첫 시작이었다.

사진으로 시작한 그의 작업은 일곱 번의 개인전과 여러 초대전 그리고 단체전에 참여하며 적지 않은 활동력을 보여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술에 대한 애착은 더 진지해지고 깊어져 갔지만, 그럴수록 현실의 무게 또한 버거워졌고 그럴 때마다 힘에 부쳤다. 때때로 현실과 예술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고, 때때로 타협해야만 했다.

이제 그의 나이도 마흔 줄에 접어든 중년. 인간 우재오와 작가 우재오 둘 모두에게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한 시기다. 발들 딛고 있던 땅에서 잠시 벗어나 낯선 곳으로 자신을 던져보는 용기를 실행할 바로 그 타이밍에 그는 유럽으로 떠났다. 그가 “마흔 번 이상의 겨울을 보냈지만 유럽에서 지낸 지난 겨울은 내 인생 첫겨울”이었다고 할 만큼 3개월에 가까운 유럽 여행은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여는 전환기적 사건이었다.

작가 우재오 사진전 ‘5 days out of 9’전이 DCU갤러리 (대구 중구 서성로 20 매일신문사 1층)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에는 지난해 12월부터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강타하기 시작할 무렵까지 80일간에 걸쳐 유럽을 돌며 마주한 선명하고 강렬했던 순간들의 사진 50여점을 모았다.

사실 그는 내면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찾기 위해 유럽행을 결행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사진으로 시작해 설치까지 확장해오면서 일관되게 붙잡은 화두였다. 지난 10년간 발표한 작품들은 그 질문에 대한 시기마다의 단편적인 답에 해당됐다.

비단 작가가 아닌 범인들도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들이 불쑥불쑥 올라오기 마련인데 작가인 그에게 이 질문은 좀 더 절박할 수밖에 없었다. 예술이 예술가가 세상을 향해 던진 의문의 코드들이라고 정의할 때, 우재오에게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그가 추구하는 예술의 핵심 과제에 해당됐다.

유독 그가 이 질문에 남다르게 꽂힌 결정적인 이유는 있었다. 사람들에게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들이 너무 쉽게 자신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을 보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고, 과연 한 인간을 “하나의 단어나 이미지로 규정지을 수 있느냐”를 따졌을 때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가 이전에 발표했던 나무 사진이나 와이어로 만든 설치작업 등은 그가 던진 의문에 대한 단편적인 답들이었다. 하나의 줄기로 여러 가지로 뻗어나간 나무나 하나의 기둥으로 시작해 다양한 얼굴로 복제되어 공간에 서로 얽히고 엮여 하나의 덩어리로 구축된 와이어 작업은 장르만 다를 뿐 내용은 동일했다. 인간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비춰질 수밖에 없는데 그 모든 모습들이 모두 그 사람을 규정하는 정체성에 속한다는 내용이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나는 다양한 사람이 될 수 있는데 우리는 너무 획일적으로만 보려고 하고, 거기에 더 나아가 사회 시스템 속으로 우리를 끼워 맞추려고까지 한다. 나는 ‘그것이 다가 아닐 수 있다’고 외치고 싶었다.”

그의 삶은 획일성에 대한 거부의 여정이었다. 그는 경북대 공법학과를 졸업하고 포스코 건설에 취직했지만 전혀 다른 예술의 길로 접어들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미끈한 길을 두고 험지를 선택한 케이스다. 하지만 인간의 최종 목적을 ‘행복 추구’에 맞췄을 때, 그의 선택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나는 물질적인 풍요 대신 영혼의 자유를 택했다”는 그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는 무가치의 가치를 만드는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며 영적인 행복을 즐기고 있다. “지금까지 작품을 통해 내가 계속 했던 이야기들이 ‘당신은 행복한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이번 전시는 추상같은 물결 이미지와 유럽의 풍경 사진 등 두 가지의 주제로 구성된다. 물결 이미지는 유럽에서 만난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다. 물결 이미지는 작가의 삶을 시작하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질문들과 마주하기 위해 낯선 유럽 곳곳을 걷기를 반복하던 중 만난 이미지였다.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보거나 이름없는 시골에서 소박한 사람들의 순박한 삶을 마주하던 어느 날, 바다와 맞닿은 네덜란드 북쪽 하천에서 만난 것이 일렁이는 물결이었다. 물결을 보는 순간 심장이 멎을 만큼 강렬하게 다가왔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결의 모습을 보고 ‘저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구나’ 싶었다.”

물결 이미지는 다양한 색상으로 포착됐다. 색은 작가의 순간적인 감성으로 촬영 직전 카메라 조작으로 선택한 결과다. 논리보다 직관에 의한 선택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번 전시의 주제가 물결이지만 이 주제가 유럽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 이전 작업에서 이미 물에 반영된 회화적인 추상 형태의 사진들을 담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은 어딘가에 고정되거나 얽매이는 것을 힘겨워하는 작가의 성향에 대한 은유의 대상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땅의 모양에 따라 끊임없이 형태를 변화한다. 그런 속성이 나와 닮아 있는 것 같다.”

회화적인 감성이 물씬 풍기는 유럽의 풍경을 촬영한 사진들에서도 장노출에 의한 움직임들이 포착된다. 그 또한 흐름의 연장이다. 흐름에 대한 주제는 각성에 대해 유난히 욕심이 많은 작가 자신의 성향에 대한 반영이기도 하다. “나는 유독 깨어있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많은 것 같다. 그 성향이 내 작업 전반에 흐르고 있다.” 전시는 22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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