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착하고 강렬하게
침착하고 강렬하게
  • 승인 2020.12.1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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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청 부국장
춥다. 너무 춥다. 몸보다 마음이 더 추워 추위는 한층 깊숙하다. 수은주가 올겨울 최저치를 찍었다. 손가락과 허벅지로 찔러드는 한기가 뒷덜미로 치솟아 재채기를 연발시킨다. 마스크! 내 마스크. 함부로 헝클어대는 찬바람에 동동거리는 사람들이 냉기를 더 실어 나르는 것 같다. 추우면 안된다. 아니, 아무리 추워도 감기가 들면 절대로 안된다. 안된다. 코로나 확진자가 매일매일 사상 최고치를 찍고 있는 이 와중에 ‘감기를 절대 앓으면 안된다’는 자기최면이 꽁꽁 옷깃을 더 여미게 한다. 하루 천 명이라니... 대통령이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했는데, 우리는 터널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점점 더 빨려 들어가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자영업자들과 많은 경제 주체들이 죽을 지경이라고 눈물을 흘리는데, 대통령은 어제 또 우리 경제가 더욱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한 말을 며칠 사이 바꿔 ‘최고 위기상황’이라고 했다. 말을 자꾸 바꾸다 보니 이제 말을 바꾸는 게 버릇이 됐나보다. K방역을 홍보하느라 전념이 없더니, (그러느라)백신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했다는데서 멘탈이 붕괴된다. 제대로 구하지 못한 백신을 충분히 구했다고 소리쳤으니 이런 상황을 ‘아멘’(Amen;그대로 믿습니다)이라며 받아들일 수 있을까. K방역은 허물어졌고, 말 바꾸기는 국회에서도 매일같이 종횡무진 진행형이다. 대통령과 쏙 빼닮은 여당은 ‘입법 폭주’를 벌이다 못해 ‘입법 테러’를 위해 매일 말 바꾸기를 진행한다. 얼마든지 필리버스터를 진행하자고 했다가 코로나가 엄중하니 필리버스터 종결표결을 하겠다고 하고... 그러면서 공수처법, 국정원법까지 모든 법을 거칠게 통과시켰다. 심지어 남북관계발전법(대북전단살포금지법)까지 그렇게 통과시켰다. 국제인권단체가 ‘이 법이 한국민주주의 오점이 될 것’이라고 하든, 미국의 의원이 이 법안 통과에 객관적인 크나큰 우려를 보이든 말든 의석의 힘으로 밀어부쳐 통과시켰다. 중국을 통해 북한 주민에게 초코파이를 전해 주다가도 범법자가 될 법이 통과된 것이다. 국제적인 시각도, 야당도, 국민도 안중에 없다. 아니, 심지어는 민주당도 없었다. 야당의 비토권이 빠진 공수처법 표결을 거부한 자당 조응천 의원에게 “너는 어쩔수 없는 인간 쓰레기”라느니, “당을 떠나라”, “금태섭과 손잡고 서울시장 출마하라”라는 악플 폭탄을 당 지지자들은 마구잡이로 날렸다. 소신 있는 의원이 되지 말고, 당리당략을 따르라는 그들의 준엄한 꾸짖음이 오히려 오싹하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지지층 결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현실과 상식은 도외시해도 된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 ‘어떻게 북한에 핵을 가지지 말라고 강요할 수 있나’라고 말한데서 게임은 오버(over)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법보다 더 위에서, 이 세상 누구의 간섭도 없이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결기가 또 섬뜩하다. 공수처법이 불과 1년 뒤 지금의 대통령 목에 칼을 겨눌 것이라는 한 전(前)의원의 단언도 들리지 않는다. 올 연말을 강타한 여당의 입법 테러로 국민들과 기업, 자영업자들은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든 듯하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던 소가 도살 직전 자포자기의 무기력에 빠진 것처럼…. 오죽하면 임대료멈춤법이 발의됐겠는가. 세금멈춤법, 이자멈춤법까지 동시다발적으로 거론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청와대는 경제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는데, 중소기업인들은 올해 경영환경을 진단하는 사자성어로 ‘노심초사(勞心焦思)’를 꼽았다. 혼비백산(魂飛魄散)이 아닌게 다행이다. 1인당 100만원씩 표값을 주고 180석을 샀다면, 최소한 180석을 찍은 국민들에겐 고통을 주지 말아야 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오늘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말미에 “민생과 경제에 대한 한층 진지한 고민을 하고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잘못은 곧 집권당의 잘못이기도 합니다...지지자들의 열망에도 ...오히려 야합했고...국민을 하늘처럼 두려워하며 공구수성의 자세로 자숙해야 마땅했으나 반성과 성찰의 마음가짐 또한 부족했습니다...”라는 그의 사과문. ‘반드시 과거 정권에서만, 과거 여당만 그랬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국민을 하늘처럼 두려워해야 할 여당의 한 의원이 코로나 상황에서 주인공도 없는 생일파티를 하하호호 벌였다고 공공연히 자랑하는 작금의 이 상황은 그때보다 정상일까.

‘침착하고 강렬하게’ 윤석열 검찰총장이 자신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이 말로 바꿨다고 한다. 비 캄 앤 스트롱(Be calm and strong). 헤밍웨이가 쓴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청새치와 며칠 간 사투를 벌이면서 정신이 오락가락 할 때마다 마음에 새긴 말이다. 침착하고 강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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