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학교
자연 학교
  • 승인 2020.12.1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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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학교를 통해 교육을 받는다. 그곳에서 역사에 대해서 교육받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예절을 배우고, 기본적인 글자와 숫자들을 배운다. 본인 역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오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런 정규과정이 아닌 학교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자연이라는 학교다.

자연 속에서 내 심성이 자랐고, 나의 지혜가 한 뼘 더 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학교보다 자연이라는 학교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를 가르친 많은 학교의 스승 중에서 “당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신 스승이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자연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자연에는 세상살이 진리가 숨어 있다. 잘 찾아보면 모든 만물 속에 진리가 보물처럼 숨어 있다.

며칠 전 친구 S와 칡뿌리를 캐러 깊은 산엘 다녀왔다. 그날 우리가 캔 양은 대략 20kg 정도 되었다. 제법 양이 많았다. 그날의 칡뿌리는 그날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날 친구와 함께 칡뿌리만 캔 것이 아니라 인생 공부를 하고 왔다. 시원한 공기와 흙냄새를 맡으며 자연을 통해 배운 삶의 이야기. 여러분에게 나눠볼까 한다.

함께 간 친구 S는 칡뿌리를 오래 캔 나름 전문가였다. 그래서 자기 나름의 칡 캐는 노하우가 있었다. 나는 시골에 자랐지만 사실 어릴 때 형들 따라 가본 것 외에는 칡을 캐본 적이 없는 초짜였다. 친구의 말을 잘 들어야 오늘 칡 냄새라도 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친구가 하자는 대로 열심히 했다. 먼저 산을 둘러보며 지상에 나와 있는 칡넝쿨을 찾아 나섰다. 이곳저곳 산을 누비다 보니 칡넝쿨이 보였다. 그중 넝쿨의 굵기가 큰 녀석을 골라 친구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친구가 땅을 파면 나는 흙을 옆으로 퍼 나르는 일을 했다. 그런데 가만히 친구가 땅을 파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분명 칡뿌리가 보이는 부분을 놔두고 그 옆에 칡뿌리가 없는 부분까지 땅을 파고 있었다. 본인이 생각할 때는 굳이 안 파도 될 것 같아 보였다. 친구에게 물었다. “그냥 뿌리만 캘 텐데 뿌리 따라 들어가면서 그 주변만 땅을 파면 안 되나?” 친구의 대답은 “칡뿌리만 보고 파고 들어가면 안 된데이, 주변으로 조금 널찍하게 파고 들어가야 나중에 편하데이.” 처음에는 그 말이 사실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의 말을 잘 들어야 조금이라도 칡을 캘 것 같아 친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친구의 말이 무슨 말이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칡뿌리의 성질상 곧게 뻗어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뻗어갔다. 오른쪽으로 가다가 갑자기 90도 꺾어서 아래로 뻗어가기도 했다. 어디로 뿌리를 뻗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가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역시 경험은 무시할 수 없다.

그날 자연이란 스승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세상사 어떻게 될지 모르니 넓게 넓게 경험하며 살아라.’라는 가르침이었다. 한 우물 판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이 것, 저 것 다양하게 경험해보라는 가르침이었다. 사실 진정한 전문가는 자기 분야만 잘 알고 다른 부분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분야의 깊이와 함께 주변의 분야도 두루두루 잘 아는 V자형 인재가 진정한 전문가인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 “쉽게 포기하지마. 포기라는 것은 김장철에만 사용해야 해.”라는 가르침이었다. 처음에는 뿌리의 굵기가 가늘어 더 이상 팔 것 없다 생각했는데 혹시나 싶어 조금 더 파고 들어가니 굵기가 상당한 뿌리가 나왔다. 포기라는 말은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자연은 참 좋은 학교다. 수업료도 내지 않고, 지루하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쟁을 부추기지도 않는다. 그런 학교에서 키가 자라고 마음이 자라며, 지혜가 자라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행복하나 일인가.

학교 중에서 ‘자연(自然)’만큼 좋은 학교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훌륭한 스승도 참으로 많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또한 인생을 배우도록 하자. 지각하지도 말고, 결석하지도 말고 자연학교를 잘 다녀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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