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권익 위해 앞장선 영웅들…그들도 평범한 노동자였다
노동 권익 위해 앞장선 영웅들…그들도 평범한 노동자였다
  • 김종현
  • 승인 2020.12.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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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노벨상을 품자 - (43)지구촌 노사갈등에 평화의 피벗기어 설치
 
노벨상-노사갈등
노사갈등을 비롯한 현안 노동문제, 권익과 복지를 챙겨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이들이 있다.
그림 이대영

프레데리크 파시(Frederic Passy, 1822~1912)는 프랑스 파리에서 워털루전쟁의 퇴역군인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법률학과 회계학의 속성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주의회 회계업무담당자로 1846년부터 1849년까지 근무했다. 삼촌의 영향을 받아서 3년 뒤에 경제학으로 돌아와서 학업에 열중했다.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 이후 정치활동에서 물러나 1857년 몽펠리에대학에서 ‘경제 믹스’라는 저술로 일약에 당대 유명한 경제학자 반열에까지 뛰어올랐다. 1860년에 파리와 지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가르쳤다. 자유무역옹호자로 1877년 프랑스학술원(Institut de France) 회원,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 명예군단((Legion of Honor) 지휘관을 맡았다.

한편 1867년 국제영구평화동맹을 설립해 서기장을 맡아 운영했으며, 1867년 룩셈부르크 위기(Luxembourg Crisis of 1867)에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방지에 사무총장을 맡았다. 1874년에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열렬한 평화주의자로 영국 윌리엄 랜들 크리머(William Randal Cremer) 함께 국제평화동맹(Ligue internationale et permanente de la paix)과 국제의회연합을 조직하는데 기여했다. 1881년 산업재해에 관한 법률제정, 교육과 노동개혁을 주장, 1888년 영국 국회의원과 프랑스 대표와의 중재활동을 전개, 스위스 베른의 국제평화국 회원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1867년 ‘전쟁과 정의(La Guerre et la Paix)’, 1909년 ‘평화를 위하여(Pour la paix)’등을 출판했다. 논문으론 1896년에 미국 사회학저널(American Journal of Sociology)에 “유럽 평화운동(The Peace Movement in Europe)”을 게재했다.

◇ 무식쟁이 근로자가 노사갈등에 평화의 씨앗을 뿌리다

영국 평화운동가 ‘윌리엄 랜달’
시골학교 나온 후 목수견습공
1860년 목공건구직원조합 창립
1871년 노동자평화협의회 창설
英-美 중재 기여로 노벨평화상
영국 하원의원 두 차례 역임도

1903년 영국 노동조합지도자이며 평화운동가 윌리엄 랜달 크레머(1838~1908)에게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그는 영국 잉글랜드 햄프셔 페어햄에서 태어나서 시골감리교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목수견습공으로 들어가 1860년에 목공건구직원공동조합을 창립하였으며, 1865년에 제1인터내셔널(International Workingmen‘s Association)의 영국지부 서기장을 맡았다.

다른 지도자와의 의견충돌로 불과 2년 만에 사임했으며, 1871년 노동자평화협의회를 창설해 간사를 맡았다. 1885년부터 1895년까지 영국의회의 헤거스톤 지역구 의원으로 활동, 1897년 영미중재조약체계에 국가간 조정(international arbitration)에 기여한 공으로 노벨수상자로 추천되었다. 1900년부터 1908년까지 영국 하원의원을 두 차례나 역임했다. 1903년에 단독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8천 파운드의 상금 가운데 7천 파운드를 국제평화기금으로 내놓았다. 1907년에 영국 왕가로부터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다. 사망 후에 출신지역 해거스톤(Haggerston)에서는 그의 이름을 따서 랜달 크레머 초등학교(Randal Cremer Primary School)라는 교명을 붙였다.

◇무식쟁이 주물공장견습공이 지구촌 군축문제 의장으로

1934년 영국의 정치가 아세 핸더슨(Arthur Henderson, 1863~1935)에게 1932년 제네바 군축회의 의장으로 활약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그는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태어나 12살에 주물공장 견습공(iron moulder)으로 출발했으며, 18세에 주물공노동조합(trades unions)에 가입해 1892년 주물업자친목협회(Friendly Society of Iron Founders)를 결성했고, ‘남서조정협의회(North East Conciliation Board)’ 대표를 맡는 등 두각을 나타냈었다. 친지(親知)들은 그를 “아서 아저씨(Uncle Arthur)”라고 했다. 1903년 달링턴 시장 및 하원 의장을 역임했으며, 1908년에 노동당 집행위원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참전을 지지했다.

1924년 제1차 노동당 내각의 내무상(Home Secretary)을 맡았으며 1932년 제네바 국제평화와 군사력 감축을 위한 군축회의의 의장으로 활약을 했다.

◇퇴학과 해고의 상처를 기반으로 국제노동자의 평온을 만듦

프랑스 노동운동지도자 ‘레옹 주오’
어린 나이인 12살에 노동 시작
성냥공장 파업 지도하다 해고
프랑스 초기 노동운동 주도
1936년 마티농 협정 체결 기여
1951년 노벨평화상 수상 영예

1951년 프랑스의 노동운동지도자 레옹 주오(Leon Jouhaux, 1879~1954)에게 국제노동사무국(ILO) 창설자의 한 사람으로 국제노동조합연맹 부회장, 프랑스 노동총동맹 서기장, 세계노동조합 연합회(WFTU) 부회장, 국제자유노련(ICFTU)의 지도자 등으로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학교에서 공부를 할 나이인 12살 때에 노동을 시작했으나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임금을 못 받았으며, 또한 이로 인해 학교에서도 퇴학당했다. 1900년 아버지 사망이 계기가 된 백린(白燐) 사용을 항의했다. 당시 21세 성낭공장의 근로자로 파업을 지도했다고 해고당했다.

1906년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의 잠정적인 회계서기를 맡았으며, 1909년부터 1947년까지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1일 8시간노동,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보장, 휴일임금 지급 등의 초기노동운동을 주도했다. 1936년 마티농 협정(Accord de Matignon) 체결시 인민전선 활동으로 노동환경 향상에 기여했다. 무정부주의 혁명적 노동조합주의인 아나르코 생디칼리슴(Anarcho syndicalisme)의 신봉자였다. 계급협조주의자로 국제노동사무국(ILO) 창설 임원, 국제노동조합연맹 부회장을 역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군에 체포되어 종전까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전후 프랑스 노동총동맹의 서기장, 세계노동조합연합회(WFTU) 부회장, 국제자유노련(ICFTU)의 지도자로 프랑스 노동운동(CGT-FO) 우파의 장로로 활약했다.

저서로는 1918년 ‘평화앞에 있는 노동자들( Les Travailleurs devant la paix)’ 등이 있다.

◇현안 노동문제, 권익과 복지를 챙겨 세계평화에 기여

국제연합의 산하기관으로 1919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설립된 국제노동기구가 196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인간다운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노동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i) 노동기본권 보장, ii) 고용기회 확대, iii) 사회보장제도 확충, iv) 국제간의 사회적 협력을 강화하여 v) 지구촌 노동자의 평화를 보장하고자했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적 노동자 보호를 위해, 무역경쟁의 형평성 유지,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평화차원의 사회정의구현을 주장했다. 초기 참가국은 43개이었으나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가입과 동시에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ILO에 가입했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필라델피아 선언(Philadelphia Declaration)을 채택했고, 1946년에 유엔 전문기관으로 유엔안전보장 이사회에 편입되었다. 1977년 미국은 사회주의국가에 대한 비판과 이스라엘 지원을 목적으로 탈퇴했다가 1980년 미국 재가입했다. 2018년 7월 현재 189개의 조약(conventions.)과 201개의 권고안(recommendations)을 내놓았다. 1998년 제86차 국제노동회의에서 기본원칙과 노동권 선언(Declaration on Fundamental Principles and Rights at Work)을 채택했다. 남녀고용균등(Equal Employment for Men and Women), 동일노동 동일임금(Same wage for same labor), 강제노동 및 아동노동의 종식(end of forced, compulsory labour & child labour), 이주노동자의 권리증진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유엔가입국가 193개 가운데 186개국이 국제노동기구에 가입되었으며, 비회원국은 안도라, 부탄, 리히텐슈타인, 미크로네시아. 모나코, 나우루와 북한이 있다. 국제노동조약은 비준국가만이 효력을 얻게 되며, 스페인 133개, 프랑스 123개, 노르웨이 107개, 네덜란드 106개, 스웨덴 92개, 영국 86개, 독일 83개 및 핀란드가 9개의 조약에 비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관심사항인 최저임금제는 최저임금조정을 통한 노동권보호를 위해 1928년 최저임금고정기구협약(Minimum Wage-Fixing Machinery Convention), 1951년 최저임금고정기구농업협약(Minimum Wage Fixing Machinery Agriculture Convention)과 1970년 최저임금고정협약(Minimum Wage Fixing Convention)을 반영해 국내법을 제정했다.

2019년 국제노동기구 창설 100주년을 맞아 노동의 미래변혁에 대비하고, 새로운 미래 도전을 위해서 ‘노동 미래의 원천(Future of Work Initiative)’을 설치해 2016년 각국대표, 노동자, 학계 110개국에서 국가 및 지역레벨에서 ‘새로운 100년 4대 대담 : i) 노동과 사회, ii) 사양직업, iii) 노동조직과 생산 그리고 iv) 노동협업’에 대해 대화를 시작했다. 2017년도 ‘노동미래지구촌회의(Global Commission on the Future of Work)’를 설립했다. 2019년에는 ‘100년 국제노동회의’라는 보고서를 발행한다.

글·그림=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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