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찢고 안으로 들어오실래요?”
“한지 찢고 안으로 들어오실래요?”
  • 황인옥
  • 승인 2020.12.24 21: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봉산문화회관 ‘정해경’ 개인전
입구서 관객 참여 퍼포먼스 진행
불응 시 전시장 바깥서 관람 가능
색다른 설치작업 통해 소통 시도
정해경 작
정해경 작.

“열어 볼래?”

마음을 내어 전시장을 찾았는데 입구에서 누군가가 막아서며 질문을 던진다면 적잖이 당황스러울 것이다. 전시를 여는 것은 작가의 권한이지만 전시 관람은 관람객의 권한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 정해경의 봉산문화회관 개인전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막아놓은 한지를 찢어야 입장이 가능하다.

전시장 입구에서 작가가 질문으로 관람객을 막아섰지만 불편할 이유는 없다. 작가의 의도에 관람객의 권한에 더 많은 방점을 두고 있어 그렇다. 관람객이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어떠한 행위를 가하고 전시장 내부에 들어서도 작가와 관람자의 소통은 이어지고, 쌍방간의 소통 과정 마다 관람객은 순간순간 새로운 감정들에 휩싸이며 더 깊은 예술적 감성을 획득하게 된다.

작가 정해경은 이번 전시를 “관람객이 주체가 되는 전시로 기획했다”며 의도를 밝혔다. “작가인 제가 만든 상황에 관람객이 직접적인 참여를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는 시간과 공간이 되길 바라는 전시로 만들었어요.”

전시실 내부에는 선과 문자로 만든 단순한 소품으로 설치작업이 제작되어 있다. 작가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작품에 관람객 참여 장치를 설치해 놓았다. 관람자가 전시장을 찾는 이유는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는데, 작가는 이 의도를 십분 충족하고 싶어 관람자 참여 작품으로 소통을 시도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보여주는 새로움이 아니라 관람자가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갖도록 의도하여 설치작업을 했습니다.”

“전시장에 입장하겠느냐”는 작가의 질문에 거부를 택한 관람객에게도 관람권은 주어진다. 전시장 바깥벽에 ‘선’을 주제로 한 평면 작품 2점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런 화풍의 작업은 2008년부터 시작됐다. 한지를 찢어 겹쳐 붙이면서 선과 공간을 드러냈다. 봉산문화회관 전시에 걸린 작품은 한지 대신 캔버스를 사용하고, 한지를 붙여서 만들었던 선으로 구축해 확보한 공간감 대신에 선 하나로 표현하며 선을 더욱 강조한다. 선은 서예를 전공한 작가의 이력에 비춰보면 필연적인 주제로 읽힌다. 작가는 선이 그어질 때 호흡, 리듬 등을 즐기며 우리의 의식을 외부에서 내부로 이끈다.

“우리 관심의 방향이 바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자신의 내부로 방향을 바꾸어 애정을 갖고 살펴볼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다보면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서 내가 미처 알고 못했던 나의 모습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은 설치다. 설치작업은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효한 수단으로 작용해왔다. 2015년 대구현미협정기전에 평면작품과 아크릴 상자에 가창들판의 흙을 넣어 3개월 정도 들판에 방치 후 잡초가 자라 난 상태의 박스를 전시장에 들여 전시를 한 첫 설치작업이다.

2019년 현미협정기전에서는 털실을 늘어뜨려 육방면체 공간을 만들고 다리의 길이가 각각인 의자 4개(1개는 정상적인 의자, 3개는 한 쪽의 다리를 자르거나 앉는 부분에 구슬을 받아서 앉는 사람이 몸으로 직접적인 불편을 느껴볼 수 있도록)로 만든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변주했다. 2020년에는 온라인뉴스에 대구미술에 관련된 기사가 오르고 거기에 달린 댓글을 캡쳐하여 정리해서 전광판(120cm)에 자막으로 흘러가는 작품을 선보였다.

“설치작업은 우리가 타인의 상황이나 차이점 등을 미루어 헤아리면서 이해한다고 착각하는 부분을 몸으로 경험을 해 보는 것이 중요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전시는 27일까지 봉산문화회관 3전시실.

황인옥기자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