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나무가 될까
가을마다 실한 열매 서너 섬씩 걷는
대추나무를 보면
어깨부터 등뼈가 으스러진다
무슨 배짱으로 날 닮은 생명을 다시 품으랴
목련 후박 백일홍 눈부신 꽃나무처럼
죽을힘 다해 피를 모아서 꽃피자, 꽃피자고
다짐하기 싫다
무슨 나무가 될까, 나는
반드시 되어야 한다면
열매도 꽃도 물론, 아무 효험을 묻지 않는
두 팔을 들어 뿌리 뻗는 그냥 나무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수수한 그냥 나무
잎 필 때 피고 잎 질 때 지는
오다가다 새들 만나 갈 때 되면 가는
날아가도 섭섭하다 울지 않는 그냥 나무
밤이슬 새벽 기운 움츠릴 때 움츠리고
해 나면 물기 걷고 바람 불면 흔들리는
게으른 듯 미련한 듯 나이테 불리면서
흙바탕에 발을 묻고 초록을 꿈꾸는
그냥 나무,
굴참나무든지
떡갈나무든지
◇이향아= 『현대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오른 후, 『별들은 강으로 갔다』 등 시집 23권, 『불씨』 등 16권의 수필집, 『창작의 아름다움』 등 8권의 문학이론서를 펴냄. 시문학상, 윤동주문학상, 한국문학상, 아시아기독교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등을 수상함. 현재 국제P.E.N한국본부 고문, 한국문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자문위원. <문학의 집· 서울> 이사. 호남대학교 명예교수.
<해설> 궁금증이란? 이게 뭘까? 저게 뭘까?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의 병이다. 이래서겠지 저래서겠지 추측성 발언을 유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이것이다. 저것이다. 짚어낼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말한다. ‘내가 무엇이 될까?’ 하는 자체의 병증을 만드느니 ‘그냥 나무’가 되고 싶다고. 그렇다. 세상 뭐 별다를 것 있던가 말이다. “그냥 나무”이면 되는 것인데….
-정광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