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도 혼자였던 보호종료 아동의 쓸쓸한 죽음
마지막까지도 혼자였던 보호종료 아동의 쓸쓸한 죽음
  • 승인 2020.12.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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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아
이학박사·전 대구시의원
코로나로 몸도 마음도 그리고 경제도 꽁꽁 얼어버린 이 시기에 기분 좋은 뉴스라고는 하나도 없다. 연일 계속되는 정부의 변명과 자화자찬으로 우리 같은 소시민은 지쳐가고 180석의 휘두름에 정치권은 시끄럽고 사법부의 집안싸움은 보고 있자니 넌더리가 난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해가 바뀔 무렵이 되었고 우리는 한 살을 더 먹는다. 시간의 길이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나 그 시간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 한 살이, 이 시간의 무게가 가장 무겁고 두려운 사람이 누구일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28일 오후 광주 남구에서 보육원에서 생활하다가 곧 보호 종료 시기가 다가오는 17세 고등학생이 공공건물 7층 옥상에서 뛰어내려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투신 직후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끝내 숨을 거두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구급대가 낙하 방지물을 설치하던 도중 추락하였는데 글만 읽어도 그 소년이 얼마나 외로웠고 두려웠을지가 느껴졌다. 또 얼마 전에 본, 맥락은 다르지만 보호 종료 청소년을 다룬 영화 『거인』도 생각났다. 아동복지법상 보육원 청소년들은 만 18세가 되면 보호 기간이 종료된다. 가끔 상황에 따라 학업을 마칠 때까지 시설 보호를 받기도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이며 보통은 500여만 원의 정착금을 받고 아무 준비 없이 사회로 나오게 된다. 그 흔한 마트 한번 가본 적이 없어 마트 카트에 동전을 넣고 빼는 것조차 낯설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필자는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한동안 멍했다.

대학까지 졸업한 정규직의 나이 서른도 독립이 버거운 요즘임을 생각하면 보호 종료 아동에 관한 규정과 정책들은 반드시 개선될 필요가 있다. 한 달에 5명 정도의 보호 종료 청소년들이 자살한다고 한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결국 거리를 떠돌며 굶고 지내거나, 드물지만 자신을 버린 가족을 찾아 돌아갔다가 부모에게 정착자립금을 뺏기는 경우도 있다. 해마다 2,500여 명의 보호 종료된 청소년들이 사회로 나오지만, 4명 중 1명은 6개월도 안 돼 경제적 어려움으로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계층이 된다. 수급자로 지원받는 생활비는 60만원 안팎이나 이마저도 아르바이트 등으로 수입이 생기면 자격이 박탈된다. 사회의 보살핌이 아직은 너무나 절실한 때에 이렇다 할 제도가 아직 마련되지 않아 그저 보호기간 종료와 함께 바로 맨몸으로 사회에 나오게 되는 청소년을 위해 조금 더 적극적이고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운 좋게 아동복지시설에서 퇴소한 만18세 청소년이 아동자립지원시설로 옮겨서 일정 기간 동안 생활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해당 시설이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된 것도 아니고 또 그 숫자도 굉장히 소수다.

보호 종료 아동의 자립을 돕는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가 이런 내용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거나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호 종료 아동이 구청에 LH전세 주택 지원 자금을 신청하면 거의 확정적으로 승인받을 수 있지만 지난 2018년 임대주택에 정착한 보호 종료 아동은 10명 중 4명에 그치는 식이다. 올해부터는 임대주택을 보호 종료 청소년에게 먼저 공급하고, 시설에서 나오기 6개월 전부터 신청을 받는 등 주택 지원안이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매년 수 천명 씩 발생하는 아동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국가에서는 『디딤씨앗통장』 이라는 것을 통해 개인 후원을 장려하고 있는데 이는 후원자가 후원하는 금액만큼 한 달에 5만원 한도에서 국가가 1대1로 적립해주는 사업이다. 취약계층 아동이 사회에 진출할 때 필요한 초기비용 마련을 지원하고자, 정부에서 운영하는 유일한 아동자산형성지원 시스템으로 이 통장은 국가에서 관리하고 만 18세 이후에 타당한 사유에 의해서만 돈을 쓸 수 있게끔 되어있다. 만 18세 이후에 이 지원금은 주로 학자금, 기술자격 및 취업훈련비용, 창업지원금, 주거비, 의료비, 결혼자금 등 자립을 위한 용도로 사용되고 만 24세 도달 시 용도 제한 없이 인출 및 사용이 가능하다. 후원 아동 매칭은 평소 봉사하던 기관에 문의해서 연결하거나 각 시청, 구청에 문의하면 추천받을 수 있고 정기후원이 아니고 단기성도 가능하다.

보육원이나 시설 출신의 보호 종료 아동에 대해 색안경을 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전에 따듯한 온정을 제대로 베푼 적 있는지를 돌아보면 좋겠다. 오랜 시설 생활로 주체적으로 사는 경험이나 자기표현의 기회가 적었던 그들도 양육자나 보호자가 있었다면 바람직한 선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오롯이 혼자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그들에게 사회가, 우리가 조금 더 관대하고 너그러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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