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밖에 버릴 게 없소”…긴 세월 인간-자연 이어왔소
“하품밖에 버릴 게 없소”…긴 세월 인간-자연 이어왔소
  • 박승온
  • 승인 2020.12.30 21:4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소의 우직함으로
농경사회 필수동물이었던 소
노동력·금고 등 다양한 역할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매김’
조선 중기 선비화가 퇴촌 김식
포동포동한 몸·특유의 생동감
中·日 작품과 달리 서정성 강조
2020년도 이제 하루 남았다. 새로 맞이하는 2021년 신축년(辛丑年) 흰 소띠의 해란다. 간지(干支)를 구성하는 열두 동물 중 소만큼 친근하고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동물도 없을 것이다. 그 옛날 농경사회에서는 필수적인 노동력을 제공하는 일꾼이자 재산이었다.

오늘날도 소는 코로나 시대에도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2020년 한 해 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코로나 사태를 종식 시킬 유일한 방안으로 백신(vaccine)이 드디어 개발되었다. 이 백신이라는 단어는 암소를 뜻하는 암소(vacc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스토리가 있다.

1790년대, 영국의 어느 시골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라는 젊은 의사가 있었다. 그는 소젖을 짜는 여자들의 안색이 매우 좋을 뿐만 아니라, 천연두에 면역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이유는 그들이 젖을 짜내는 소에게서 천연두와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가볍고 약한 질병인 ‘우두’에 걸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 추측했기 때문이다. 에더워드 제너는 자기 집 정원사의 어린 아들 제임스 핍스(James Phipps)에게 우두를 앓고 있는 어느 소젖 짜는 여인의 물집에서 얻어낸 물질을 투여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뒤 에드워드 제너는 그 어린 아들 제임스에게 일부러 천연두 균을 옮겼다. 다행히 제임스는 면역을 갖춘 것으로 판명되었고, 그의 면역력은 평생 유지됐다. 이처럼 우두를 앓고 있는 여인에게서부터 천연두의 항체를 발견한 에드워드 제너가 소를 뜻하는 ‘vacca’라는 단어를 차용하여 쓰기 시작했다. 이후 세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백신(vaccine)이라는 이름을 붙여 영어와 프랑스어에선 이 명칭으로 쓰고 있다.

이처럼 백신이라는 단어는 소에서부터 온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 어쩜 이리도 딱 맞을까 싶다. 소의 해에 소의 의미를 가진 백신으로 이제 우리가 희망을 기대하고 있지 않은가!

자 이제 백신 이야기에서 소의 그림으로 들어가 보자. 동서고금의 화가들은 소 그림을 통해서 인간사와 자연의 연결하고, 자신의 정체성 표출하며, 해학적 카타르시스를 표출하였다.

소는 농경사회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우리 조상들은 소를 단순한 가축의 의미를 넘어 농사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소중히 여겼다. 소는 논이나 밭을 쟁기질하는 등 힘든 농사일을 하는 데 필수적인 노동력이자 일상생활에서는 운송 수단이었고,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목돈을 장만할 비상 금고의 역할까지 했다. 농경의 중요성을 반영하는 경직도에는 쟁기질하거나 짐을 나르는 소의 모습이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또 소는 뿔, 가죽, 기름, 고기 등 모든 것을 인간에게 제공해 ‘소는 하품밖에 버릴 게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농경사회에서의 소의 중요성은 제의나 의례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고대사회에서는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소를 신성한 제물로 사용했으며, 정월 대보름에 즈음해 마을에서는 그해 풍년을 기원하는 소 놀음굿을 펼치기도 했다.
 

우경-양기훈
밭갈이(牛耕) 양기훈(1843~ ?) 작 지본 수묵 27.3cm X 39.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위의 우경(牛耕)이라는 단어는 소를 이용한 밭갈이라는 뜻이다. 쟁기를 단 소가 막 다음 발걸음을 옮기려는 중이다. 등과 다리 근육이 울퉁불퉁 솟아 있어서 한껏 힘을 쏟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땅의 흙이 높이 솟아오른 것으로 봐서 쟁기를 꽤 깊이 박은 듯하다. 빨리 앞으로 가라고 보채는 농부의 목소리와 엉덩이를 따갑게 때리는 채찍에 다시 용을 쓰며 한 걸음 내 딛는다.

농부는 일 말고는 다른 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는지 맨 상투 차림이다. 수염도 다듬지 않아 거칠게 뻗쳐 있다. 일하기 편하도록 상의와 하의 모두 걷어 올린 모습이다. 한 손에 쟁기를, 다른 손에는 회초리를 들고 일을 서두른다. 몸의 무게중심을 뒤쪽에 두고 있어서 쟁기가 최대한 깊이 박힌 상태를 유지시키고 있음이 느껴진다. 한 손으로 큼직한 쟁기를 단단히 잡고 버티느라 온몸에 힘이 들어가서인지 얼굴을 잔뜩 찌푸린다. 오랜 세월 해온 농사일에 이골이 났을 법한데도 힘겹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이러한 경직도는 조선 후기 풍속화가나 국가가 운영하는 회화 전문기관인 화원 화가들 사이에서 자주 그려진 소재 중의 하나였으며, <행려풍속도>나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 등에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논갈이-김홍도
논갈이(耕畓)김홍도(1843~ ?) 작 지본 수묵 27.8cm X 23.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문화적인 상징으로 소는 우직하고 온순하며, 힘이 세지만 사납지 않은 동물이었다. 이러한 소의 기질은 우리 문화 곳곳에서 상징화돼 자리 잡고 있다. 한가로이 풀을 듣는 소의 모습이나. 목동이 소를 타고 유유히 가는 그림 속 소의 모습은 착하고 여유로운 본성과 맞물려 있다.
 

고목우도-김식
고목우도(古木牛圖) 김식(金埴) 지본담채 90.3cm X 51.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중기 선비화가 퇴촌 김식(金埴, 1579~1662)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작품으로, 종이에 먹으로 그려졌다. 김식은 조선 중기의 선비 화가로 조선시대 웬만한 소 그림은 그의 작품이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김식의 소 그림은 할아버지 김시(金

)의 절파화풍(浙派畵風)과 영모화풍(翎毛畵風)을 토대로 간결한 산수를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소는 선종화(禪宗畵)의 십우도(十牛圖)와도 밀접한 관련을 지닌 것으로 중국 강남지방의 물소를 소재로 삼았지만, 그 표현방식은 한국적인 해석으로 표현했다. 실제로 조선 초기 활을 제작하기 위해 조선 정부에서는 중국의 물소를 수입하여 길렀고, 이후에는 농사에도 그 소를 활용했다고 전해지니, 생뚱맞은 소의 모습은 아닐 듯하다.

선염(渲染)의 음영으로만 간결하게 묘사된 포동포동하고 매끈한 몸매라든지, 하얀 테두리를 남긴 눈매, 그리고 뿔과 콧등과 꼬리 털, 발굽 등 신체 각 부분의 끝을 짙은 먹으로 액센트를 주어 소의 특징과 생동감을 살려낸 묘사법 등이 그러하다. 이 그림의 어미 소와 송아지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특유의 서정적 정취를 한층 더 짙게 풍겨주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소 그림들은 중국이나 일본의 소 그림들과는 현저하게 다른 특색들을 지니고 있어 전형적인 한국적 소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기우도-최북
기우귀가도(騎牛歸家圖) 최북(崔北) 지본담채 24.2cm X 32.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문화의 르네상스 시기인 17세기 영, 정조시대의 화가인 호생관 최북(崔北 1712~1760)의 기우도(소를 타는 그림)이다. 불세출의 화가인 최북은 미천한 출신으로 그림을 그려 생계를 유지하는 화가였는데, 그 자신은 신분의 한계를 뜻을 펴지 못하는 울분을 자신의 호인 호생관(그림을 그려 먹고 사는 사람)으로 표출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단계중 하나를 그린 <기우귀가도>는 이미 길들인 소를 탄 목동이 노래 부르며 안온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감정의 정신작용과 망상의 굴레를 탈피하여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심우(心牛)를 타고 정신적 고향으로 돌아감을 비유한 그림이다.

십우(十牛) 혹은 심우(尋牛)는 불가에서 수행 단계를 소 찾는 과정에 비유한 것이다.

소(자기의 본성)를 찾아 나서는 심우,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견적, 소를 발견하는 견우, 소를 얻는 득우, 소를 길들이는 목우, 길들인 소를 타고 깨달음의 세계인 집으로 돌아오는 기우귀가, 소를 잊고 안심하는 망우존인, 소도 사람도 공임을 깨닫는 인우구망, 있는 그대로의 전체 세계를 깨닫는 반본환원, 세속으로 들어가 중생들을 계도하는 입전수수(入廛垂手)가 바로 그 열 단계다.

결국 길들인 소를 타고 깨달음의 세계인 안온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최북의 진솔한 심정이었던 것이다.

매년 연말이 되면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새로 맞이하는 해의 트렌드를 발표한다. 2021년 트렌드 코리아의 키워드는 “COWBOY HERO”라고 제시했다.

카우보이. 아시다시피 옛날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야생의 들소를 길들이는 목동을 말한다.

야생의 소를 길들여 목장을 만들 듯 인간의 삶에 미쳐 날뛰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길들여 잡아내면 좋겠다는 뜻과 그래도 “덕분에” 많은 헌신과 노력을 하는 지금의 영웅들에게 다가오는 2021년 흰 소띠의 해에는 김식의 목우도처럼 평화롭고 따뜻한 일상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박승온·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