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깽이
부지깽이
  • 승인 2020.12.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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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란

아궁이에 몸을 넣어 불을 뒤집는다

아직 불붙지 않은 나무들과

이미 불붙은 나무들 한 몸이 되도록

멀리 있는 가지들 가까이 옮기고

바싹 가까운 가지들 틈을 벌린다

공기가 들어갈 틈이 불의 숨길이다

활활 불타오르기 위해서는 너무 멀어도

안되지만 너무 가까워도 안 된다

한 부분은 교차하듯 밀착되게

나머지 부분들은 엇갈리게 잡목과

장작에 다리와 각을 만들어 준다

불꽃의 절정이 각을 무너뜨리면

불이 옮겨붙은 나는 점점 짧아지고

더 이상 불을 뒤집을 수 없을 만큼

길이가 짧아지면 불 속으로 몸을 던진다

영원으로 날아오르는 불새 아니어도

인생의 질량만큼 불살랐으니 후회 없다

* 아파트에서 잃어버린 것이 아궁이다. 아궁이를 잃은 부엌에서 오래된 불의 몽상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을까 /

시집 <장미 키스>

◇최정란= 경북 상주 출생,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계명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여우장갑』 『입술거울』 『사슴목발애인』 『장미키스』,<요산창작기금> <부산문화재단창작기금> 2016년 제7회 <시산맥작품상> 2017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2019 최계락문학상 2020 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해설> 시골집 아궁이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부지깽이는 나무에 불이 잘 붙도록 유지하고 관리하는 부엌 아궁이의 필수품이다. 대부분이 나무를 사용하기에 어느 시기가 되면 다시 땔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엄마라는 역할이나, 사회 구성원의 역할도 부지깽이와 다를 바 무엇이랴.

온 힘을 다 쏟은 생의 정점에서 후회한들 뭐하겠는가? 그냥 ‘나’로 만족하면 되는 것을 . -정광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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