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처럼 촉수를 하나 더 달고 태어나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두 눈을 비비다가
젖은 눈으로 잠이 든다
바보처럼 심장 하나를 더 달고 태어나서
여린 맘으로 상처 난 시를 만지작거리며
담 모퉁이에 기대어 운다
'얼음꽃 방'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나무토막처럼 무심히 앉아있던 늙은 뼈들
침대 위에 하나씩 쓰러진다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노인은 누운 채 허공만 바라보다 잠이 들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자꾸 벽시계만 바라본다
시간은 째깍째깍 앞으로 가고
마음은 뒤돌아서서 문을 붙잡고 운다
등 떠밀지 않아도 들어가야 하는 문
삶도 세월도 박제가 되어버린 곳
밤새 뒤척이다
거친 숨소리만 남기고 떠나버린 빈자리엔
가지런히 개켜진 옷가지들….
무거운 이승의 옷들을 개켜놓고 떠나면
저승의 옷들은 솜털처럼 가벼울까
요양원에서 돌아오는 길은 늘 축축했다.
◇유혜경= 1958년 서울生. 강원도 원주에서 詩作활동중. 서울동덕여고 졸업. 원예학, 국어국문학, 힌디어 힌디문학사 공부. 저서: 자전적 에세이 <그림자이야기>,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노마드로 살아가는 자유로운 영혼 등.
<해설> 바람조차도 촉촉하던 봄여름이 끝나면 습기 머금은 모두가 바짝 마른 장작개비가 된다. 인생의 사계절도 이와 같다 하지만 다른 점은 자연의 계절은 돌고 돌아오지만, 인생에서의 계절은 돌이킬 수 없다. 가을 지나 겨울에 들어선다면 더 서글픈 것이 인생이다. 그들을 지켜보는 가슴은 왔으니 떠나야 하는 섭리를 외면할 수 없어 슬프다 -정광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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