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정치력 복원
잃어버린 정치력 복원
  • 승인 2021.01.0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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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칼럼
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경제학 박사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악명 높은 강도가 있다. 그는 아테네 교외의 언덕에 집을 짓고 살면서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철로 만든 침대에 눕힌 뒤 침대의 길이에 맞을 때까지 행인의 사지를 늘리거나 자르는 잔혹한 짓을 일삼다가 아티카의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테세우스는 프로크루스테스를 붙잡아 같은 방법으로 그를 침대에 눕힌후 침대를 넘어가는 프로크루스테스의 머리와 다리를 잘라내어 죽였다고 한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불리는 이것은 기준을 정해 놓고는 융통성 없이 모든 것을 그 기준에 맞추려는 것을 의미하며, 편견과 아집의 위험성을 표현할 때 종종 인용된다.

신축년 새해부터 편견과 아집으로 비쳐지는 정치권에 큰 파문이 일어났다. 지난 1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과 관련해 "코로나 위기라는 국난을 극복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면서 경제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해결하는 데에 국민의 모인 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청래 의원은 "탄핵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이 용서할 마음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했고, 안민석 의원은 "촛불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판했으며, 더불어민주당 온라인 당원 게시판에는 "이낙연 지지를 철회한다"는 비판 글이 쏟아졌다. 이 대표는 당내외 반발이 거세지자 국민의 공감대와 당사자들의 반성이 중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제시했다.

일부에서는 지난 연말과 연초에 실시된 차기 대선 선호도 조사에서 이재명 경기지사 혹은 윤석열 검찰 총장이 1위를 차지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이 대표가 중도층 외연 확장을 위해 사면을 통한 국민통합형 리더십을 부각하려 했지만 오히려 역풍을 받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낙연 대표는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국민 통합의 방법이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정책위원장은 "이낙연 대표의 사면 발언은 선거용이 아니라"고 하면서 "단순히 사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기에 있었던 분열과 갈등, 그 다음에 피해자의 구제와 명예 회복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면서 논의돼야 한다. 사면 문제만 다루는 것은 국민통합이라는 말에 부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도 지난 4일 "전직 대통령의 구속은 법적인 문제 이전에 정치의 문제"라며,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과 관련한 논쟁에 대해 안타까워 하면서 "우리나라 여당의 정치 풍토상, 이낙연 대표의 정치적 경향상 대통령의 뜻과 어그러지는 행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손 전대표는 사면을 언급한 배경엔 청와대와 모종의 교감이 있었다면서 "사면은 반대파 국민까지 끌어안고 포용하는 통합의 길이라고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은 통합의 정치를 펼치기 위한 첫 번째 단추"라며, 우리나라에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은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두 전직 대통령 사면에 대해 여당 대표의 언급에 대해 "사면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헌법상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판단해서 사면해야겠다고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김종인 위원장은 사전 교감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야당내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 15일 국회에서 "대통령의 잘못은 곧 집권당의 잘못이다. 역사와 국민 앞에 큰 죄를 저질렀다"고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와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결행한바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역사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부터 망명, 시해, 구속, 자살 등으로 점철된 아픈 기억들로 채워져 있다. 이낙연 대표와 조율을 거친후 문재인 대통령이 사면에 응했다면 그건 아마도 자기의 모습을 뒤돌아보면서 일종의 보험에 드는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아직도 두 전직 대통령의 공과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고, 벌써부터 현 대통령의 퇴임후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정치 영역은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사면을 여야 모두 정치적인 셈이 아니라 국민통합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나마 문재인 대통령이 힘이 있을 때 팬덤 지지층의 반대를 설득해 풀어나가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이 퇴임후 대통령을 걱정해야 하는 모순을 정치권이 깊이 반성하고, 잃어버린 정치력을 복원해 슬기롭게 풀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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