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현대미술가협회원 44인, 옴니버스 영화 ‘당신은 누구죠?’ 제작
대구현대미술가협회원 44인, 옴니버스 영화 ‘당신은 누구죠?’ 제작
  • 황인옥
  • 승인 2021.01.05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배우·작가로 변신한 미술가…“현대미술 정신 실현”
술자리에서 나눈 담소 현실화
작가들 직접 스토리 짜고 연기
얼굴의 지문화 등 넘치는 은유
미술-영화의 결합 자부심 ‘쑥’
“영화 상영되면 파장 클 것
현미협, 새 도전 지속 시도”
단편영화제 출품까지 계획
2월 2일 현대百 CGV 시사회
왼쪽부터 순서대로 조미향 작가·신수원 작가·이인석 작가·정태경 작가·김재경 작가 촬영 현장.

누군가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당신은 누구죠?(Who are You?)”라고 물었을 때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개의 경우 자신이 누구인지를 한 두 개의 단어로 정의 내리는데 주저할 것이다. 스스로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어왔지만 막상 하나의 특질로 규정하는 데는 주저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미술작가들이라면 사정은 좀 달라진다. 작품에 스스로를 투영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작가들의 경우 작업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탐색하여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막상 카메라가 돌아가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카메라 앞에서 대본 없는 연기와 행위로 자신의 예술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은 그들에게도 생소했다. 과연 그들의 영상에는 어떤 스토리들이 담겨졌을까?

현대미술작가 44명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당신은 누구죠?’가 제작되어 화제다. 대구현대미술가협회 회원 44명의 삶과 예술을 촬영해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로 제작됐다. 지난해 12월 초에 크랭크인 해 3주간의 촬영을 마치고 현재 영상 편집과 음악 등의 후반 작업이 진행 중이다. 시사회 일정은 2월 2일 현대백화점대구점 CGV에서 잡혀있다.

영화 ‘당신은 누구죠?’는 미술작가 44인이 각자 자신의 작품을 모티브로 대본없는 스토리를 구성해 연기를 펼치고 그것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작품이다. 배역은 참여 작가 44인이 직접 소화하고, 감독은 남기웅 영화감독, 총제작은 이우석 현대미술가협회 회장이 각각 맡았다.

미술작가들이 직접 주인공으로 참여해 자신의 작품을 영화 형식으로 녹여낸 시도는 ‘당신은 누구죠?’가 세계 최초다. 이 전대미문의 콘셉트가 실현되기까지 7년이 걸렸다. 7년 전 남기웅 감독과 이우석 대구현대미술가협회(이하 현미협) 회장이 처음 만났던 시기 어느 날의 술자리에서 “언젠가 미술작가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찍자”며 의기투합했고, 이우석 당시 사무국장이 현미협 회장이 되고 3년 만에 현실화됐다.

이 회장은 이번 작업을 “장르를 파괴하며 실험적인 작업을 추구하는 현대미술의 정신을 영화라는 장르와 콜라보를 통해 실현하는 과정”으로 평가했다.

영화는 보통 제작자나 감독의 시각에서 대본이 만들어지고 촬영이 진행된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철저하게 작가들 시선에서 진행됐다. 작가들이 직접 스토리와 콘티를 짜고 연기까지 담당했다. 이러한 작가 중심의 전개방식은 이번 영화가 시도한 실험성이자 현대미술의 장르 확장으로 평가된다. 이는 촬영 과정에서의 수많은 어려움 중에도 참여작가들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참여 작가들은 미술이 아닌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흥분했다. 영상에 담겨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전혀 다른 자신을 보았다고 한다. 힘들다고 다시 안한다고 하던 작가들도 촬영이 끝난 후 또 해보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영화 제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제작비다. 워낙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장르라 제작자가 나서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현미협도 초기에는 제작자를 찾아 나섰지만 지역에서 수천만원의 제작비를 감당할 제작자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제작비 때문에 계획을 무산시키기에 그들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너무 컸다. 회원들과의 논의 끝에 촬영에 참여하는 작가들 스스로 제작자가 되기로 의기투합했고, 제작비는 순식간에 모아졌다.

이번 영화에 쏟아지는 회원들의 관심은 후반 제작비용 마련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전반부 작업에서 애당초 예상한 예산이 모두 소진되자 급히 후반부 제작을 위한 예산을 마련해야 했지만 사정을 알게 된 선후배 작가들이 선뜻 기부의사를 밝혀 단 10분 만에 천 만원이라는 금액을 모을 수 있었다.

이 회장은 “SNS에 예산 후원 의사를 묻고 10분 만에 목표액이 모아져서 놀랐다. 대단히 실험적인 이번 도전에 모두가 공감해 준 결과였다”며 막바지 제작비 모금 순간을 떠올렸다.

현미협 회원들의 영화 제작에 대한 관심은 계획단계보다 영화 촬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더욱 높아졌다. 애당초 영화에 참여할 회원들을 모집할 초기에만 해도 44명이 참여의사를 밝혔지만 촬영이 진행되고 입소문을 타면서 거부의사를 밝혔던 일부 회원들에게서 참여 의사가 타진됐다. 이들의 참여 의사는 상영시간 문제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 회장은 “영화 촬영이 진행되면서 참여한 작가들의 만족도가 높았다”며 회원들의 반응을 전했다.

작가들이 가장 어려워 한 점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시나리오를 작가 스스로 짜는 것이었다. 대본없이 공간과 몸 행위로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해야 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특히나 영화라는 장르를 처음 접하는 미술작가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 회장은 “어떤 작가의 경우 한 번 촬영하고도 백지로 돌리고 제작업을 할 정도로 스토리 짜는 과정이 어려웠다”고 언급했다. 이 문제는 남 감독과 이 회장 그리고 작가들 간의 소통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1분~4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그렇다고 그림을 그리는 영상으로만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달하려는 작품의 주제가 핵심이지 작업 행위 자체가 주제가 될 수는 없었다. 남 감독이나 이 회장이 참여 작가들에게 주문한 요구사항도 작품 세계를 중심으로 한 시나리오에 맞춰졌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영상은 대단히 은유적이다. 얼굴을 지문으로 형상화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이 회장은 동료작가들이 찍어준 지문들을 차례대로 영상에 담는 형식으로 촬영했다. 지문을 통해 개별성과 전체, 인간과 우주 등의 개념들이 동료작가들의 지문 퍼레이드를 통해 온전히 드러낼 수 있었다.

또 도경득 작가는 작업용 칼을 부러트리는 반복적인 행위를 영상에 담았다. 그가 칼을 부러트릴 때마다 담겨진 탕탕하는 효과음은 주제를 더욱 강화했고, 그는 흡사 칼을 다루는 장인처럼 묘사됐다.

예산을 줄이기 위해 촬영은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감독까지 포함해서 4~5명의 스테프가 밤낮없이 촬영에 임했다. 대구에서 영화 전문 스텝을 찾을 수 없어 모두 서울 인력으로 충당해 예산의 어려움은 가중되었다. 참여 작가들 또한 새로운 장르에 적응하는데 당혹감과 흥분감이라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이 회장은 이번 작업이 “전혀 다른 장르와 현대미술이 만나 또 다른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현대미술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작가들이 영화 제작 과정에 참여하면서 굉장한 에너지를 받았다. 영화가 상영되면 더 큰 파장을 불러 올 것이다. 이러한 실험적인 시도야말로 현대미술의 정신에 부합한다. 우리 현미협은 그런 정신에 입각해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것이다.”

현미협 회원들의 영화 ‘당신은 누구죠?’에 대한 기대감은 높다. 미술장르를 미술작가들의 시각으로 영화예술로 녹여내며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은 높아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시도를 어느 시기의 하나의 사건으로 만족하지 않고 단편영화제 출품까지 계획하며 더 큰 도전으로 확장하려는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