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액땜
[문화칼럼] 액땜
  • 승인 2021.01.0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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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상서로운 기운만이 가득해야할 새해 벽두에 액땜이란 말을 입에 올려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한 즈음에 지난일과 앞날을 짚다보니 절로 이 단어가 생각납니다. 작년 저에게는 좋은 일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일도 있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들이 생겼을 땐 속상하기도 했으나 원래 지난 일에는 별로 연연치 않는 편이라 이것도 액땜 이었나보다 라고 생각하니 한결 받아들이기가 수월했습니다.

속담에 좋은 치아는 오복 중의 하나라고 하지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치아복은 타고났다고 생각했답니다. 치과에 가면 참 좋은 치아다. 튼튼하고 모양도 예쁘다는 말을 늘 들었습니다. 지난해 늦봄, 이전 직장 직원들과 함께 족발집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식사도중 족발을 잘 못 씹어 그만 앞니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딱 하는 소리가 제법 크게 난지라 다들 그 소리를 듣고 말았습니다. 동료들의 걱정스런 눈길에도 불구하고, 분위기 깰까봐 괜찮다며 식사를 계속 했지만 등에는 식은땀이 나더군요. 다음 날 치과에 가보니 뿌리 쪽이 부러져 살릴 수 없다기에 바로 발치를 하고 임플란트 치료를 시작 했습니다. 치료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도 원래 치아의 상태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합니다. 액땜했다 생각 하고 지내지만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 없더군요.

그리고 지난 가을에는 조금 더 큰 사고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멀쩡한 유리문에 코를 들이박아 골절사고를 당했지요. 평소 매사에 조심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날은 코피를 엄청나게 흘릴 일이 생기고야 말았답니다. 아픈 것보다 창피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가까운 병원 응급실에 가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붓기가 가라않은 다음 수술을 받았습니다. 전신마취 수술 후 한 달 가까이는 잘 때 보호대를 착용한 채로 지내야 하는 불편을 겪었답니다. 코를 만지지 말고 조심하라는데 그때따라 코는 어찌나 자주, 많이 나오는지--- 작은 사고에도 일상은 너무나 불편하더군요. 이제는 많이 안정 되었지만 아직도 안경을 쓰면 코가 아픕니다. 무엇보다 예전과는 모양이 조금 달라진 것이 속상합니다. 보기에 큰 차이는 없지만 이전과 이후가 다른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코를 박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발가락을 다쳤습니다. 거실의 작은 탁자 다리를 발로 차고야 말았습니다. 그 순간 "이것은 평균 이상의 아픔이야, 성치는 않겠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병원에서 확인한 결과 발가락에 금이 갔더군요. 다행히 걷기에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고, 의사 선생님의 배려로 반 기브스는 하지 않은 채 압박 붕대로 처치하고 일상생활을 했습니다. 노후에 열심히 걸어 다니는 것을 버킷리스트에 올려놓은 나는 발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발가락 골절, 발등 쪽 부상에도 병원치료를 받지 않고 미련을 떨어 그 부위가 살짝 좋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다행히 현재는 별 문제가 없지만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불과 반년 정도의 시간에 부러지고, 금가는 일이 생겼으니 말입니다.

제가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가끔 찾아뵙는 스님께서 일전에 막걸리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공주에 계시는 분이 논산까지 가서 막걸리를 사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시라고 준 것이 아니라 "새로 옮기는 직장 건물 네 귀퉁이 마다 막걸리를 부어라. 지신(地神)이 가장 좋아 하는 것이 막걸리다." 그런데 스님의 당부와는 달리 그것을 제가 마셔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말을 평소 별로 귀담아 듣지 않는 편이기도 하거니와, 막걸리 통을 들고 건물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모양새가 좀 우스운 꼴인 것 같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꾸 다치니 막걸리를 내가 중간에 마셔버려 그런 일이 생겼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더군요. 게다가 집을 새로 리모델링을 해서 옮겼는데 그럴 때 이런 액막이 일들이 생긴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저의 부주의로 인해 생긴 일들이겠죠. 다만 이런 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다 액땜이었다. 이로 인해 더 큰 불행을 막았다, 또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니 안도감과 함께 묘한 자신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해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의 상황은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 그래도 백신, 치료제 소식에 희망을 가질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하지만 언제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 아득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 인류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액땜으로 생각하며 극복해나가는 게 그나마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초부터 실없는 소리를 해 미안합니다. 새해 무엇보다 건강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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