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가장 큰 상이요
선물인 그
천사들이 털갈이하는 겨울
깃털들이 얼어 하얗게 나부끼며 내려올 때
단풍잎이 시나브로 지며
시간의 잔해들을 수북이 쌓을 때
이른 봄 청매화 그림자에 밟혀 심연이 흔들리는
그 순간마다 창 아래서 숨죽인 휘파람으로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한다
많은 이들을 자살로 이끌었다는 선율로
자두나무 애간장까지 끓이다가, 창을 넘어 들어와
서로의 체온으로 시린 몸을 녹이기도 했으니
숙명이란 탯줄로 꽁꽁 묶인 사이
은밀한 색 밝히려면 귀한 접시를 깨뜨리고
지엄한 닻줄 다 끊어버려야 한다
찬란한 그늘이면서 고질병인
내 색의 골짜기에 숨겨둔 내연남, 그는
담쟁이가 미루나무 등걸에 살며시 발을 걸치는 때
느티나무가 달빛으로 옷 갈아입는 시간
또는 초승달이 서해로 안기는 그 순간에도
시시로 찾아와 달콤하거나 쓰리거나
뭔가 속삭여주길 나는 애태운다
그 품엔 늘 투창이 이를 갈고 있지만
◇정인숙= 경산 자인 출생. 경북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주 월성 중학교 전직 국어교사. 1993년 계간지<시와시학>으로 신인상 수상. 시와시학시인회 회장역임. 현대불교문인협회 대구지회 회장 역임. 포엠토피아. 시마을, 서부도서관, 청도도서관, 북부도서관 시 강의. 지금 본리도서관, 대구문학아카데미 현대시 창작반 강의. 범물 시니어 복지회관에서 내 인생의 꽃에 대한 강의. 2019년 대구칼라풀축제에서 대구문인협회 주최로 정 숙 극본 ‘봄날은 간다1’ 시극공연. 만해 ‘님’ 시인 작품상 수상 시집<바람다비제>(10)· 대구시인 협회상 수상(15). 경맥문학상(20). 시집: 연인, 있어요(20)외 다수.
<해설> 연인의 관계란 참으로 오묘해서 따뜻한 햇살인가 했는데 어느새 차가운 한겨울의 한기를 내뿜기도 한다. 서로를 갈망하고, 서로의 체온을 높이고, 언제나 서로의 햇살이길 바라지만 그것은 바람일 뿐 간섭과 구속의 틀을 만들려고 한다. 자유로움 속에서 서로를 지켜주며 기도해야 하는데 말이다. “연인, 있어요” 참 알쏭달쏭한 관계다. -정광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