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소복소복한 2021 되기를
행복이 소복소복한 2021 되기를
  • 승인 2021.01.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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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장 대구시의사회 정책이사

냇가에서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얼어붙은 '소의 해'가 되었다. 강원도 어느 마을 축사 내 소의 수염에 얼음이 맺혀 있는 영상이 추위를 실감 나게 한다. '행복이 소복소복(福) 2021' 반가운 이의 연하장 인사처럼, 행복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어떤 추위가 닥쳐도 작은 것에서 재미를 느끼고 소소한 행복을 찾아 놀아볼 수 있는 공간이 있음은 참으로 다행이지 않은가. 재잘거리는 소리, 웃는 얼굴들이 떠올라 빙그레 미소를 지어본다.

새해 들어서는 삶이 조금 더 수월해지기를 기대한다. 아무리 추위가 닥쳐와도 그 속에서 꽁꽁 동여매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아이들처럼, 겨우내 죽은 듯이 있던 히아신스 싹이 때가 되니 다시 돋아나는 것처럼, 희망을 품고 꽃 피울 날을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숨 심해! 숨 심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아프리카에서 온 아이 엄마다. 거의 일 년 만에 찾아온 그녀 품에는 다시 갓난아이가 안겨있다. 코로나 19가 무서웠지만, 그 사이에 넷째 애까지 낳았다고 하였다. 아기가 숨 쉬는 것이 힘들어하여 찾아왔다고 한다. 진찰해보니 세 기관지염 증세였다. 하얀 천으로 머리를 감싼 까만 눈동자가 나의 표정을 살피고 있다. 어찌 되었든 치료해 달라는 눈빛이다. 어쩌면 좋으랴. 코로나 전담 병원이 되어 입원시킬 수는 없고,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작은 공화국 기니에서 온 그녀는 내 팔을 잡고 흔들며 "나 돈 없어요. 다른 병원 못 가요! 내 아기 치료해줘요"라고 반복해 읊고 있다. 한국에 가면 먹을 것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는 아직 이십 대의 앳된 여인, 선한 얼굴에 까만 눈으로 자꾸만 애원한다. 우선 치료를 시작해보자고 하자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아무쪼록 아이와 아이 엄마의 노력과 정성을 보태 아무 탈 없이 잘 회복할 수 있기만을 기도하는 심정이 되어 치료를 시작하였다. 수액 치료를 마치고 약을 처방하면서 주의해야 하는 대목을 설명하였다. 만약 급한 상황이 오면 코로나 19 검사도 하고 입원할 수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갈 것을 일러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왕방울만 해진 눈으로 와락 내 품으로 달려들어 흐느낀다. 쿵쿵거리는 그녀의 심장 박동을 느끼며 나도 그녀를 힘껏 안아 토닥여주었다.

더운 나라 기니에서 온 그녀, 아무리 춥고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이 순간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고 사는 것 같다. 그녀의 선한 웃음을 보면 잠시 악몽을 꾸다가 깨듯 눈 한번 깜빡 감고 참으면 좋은 장면이 펼쳐지리라 기대하면서 사는 것만 같다. 위의 세 아이도 그런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며 잘 성장하고 있으니 아무쪼록 다시 그녀의 환한 웃음을 볼 수 있기를.

코로나 19 전담 병원이 되어 병실을 모두 비우자 평소에 입원 치료하던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며 늘 불평불만이다. "우리는 환자도 아니냐? 코로나 환자만 환자이고 일반 환자는 이렇게 홀대해도 되느냐?" 수시로 항의한다. 오래도록 다니던 환자일수록 상대적 박탈감은 더한가 보다. 섭섭함을 토로할 때는 아무리 어쩔 수 없이 된 상황을 설명하여도 쉽사리 그 마음을 풀어줄 수가 없다. 코로나 19라는 긴급한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환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내내 남아있을 것 같다.

신규 확진자가 1,000명대를 넘나들다가 600명대로 내려오니 3차 대유행의 정점을 통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조심스러운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자영업자뿐 아니라 환자들도 지쳐간다. 장기간 이어지니 이래저래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 누구나 만족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정책을 입안할 때에는 여러 입장을 미리 의논하고 고려하여 지침을 잘 만들어서 그것을 원칙대로 지키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핀셋방역이라고 하며 대처하다 보니 이래저래 빈구석이 생겨 불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폭발하기 직전인 것 같다. 거리 두기 2.5 단계 상향 조정할 때 외래에 온 어린이까지 "조금 있으면 '2.5+ 알파, 2.5 + 프리미엄' 할지도 몰라요"하였다. 정책이라면 따르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수긍을 하면서 잘 따를 수 있는 원칙을 정해서 만드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백신이 준비되어 맞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 마음의 위안이라도 될 터이니 그동안 어렵지만, 거리 두기, 마스크 쓰기, 손 씻기 잘하면서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도 땅속 저 밑에는 이미 따스한 기운이 자리를 잡고 있을 터이니 소의 해, 묵묵히 걸어가는 소처럼 희망을 품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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