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띠해
소띠해
  • 승인 2021.01.1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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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2021년 신축년 소띠해가 시작된지 10일이 지났다. 올해 태어나는 아이들은 소띠다. 같은 해에 태어난 아이들이 모두 띠의 동물의 성격을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갖고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띠의 성격은 인내심이 강하고 정직하고, 성실하며, 목표한 바를 달성하기 위해 끈기있게 노력하여 성취한다고한다. 다소 보수적이고 겁이 많다고도 한다.

요즘은 소를 농촌에서도 보기가 쉽지 않다. 특별히 소를 사육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닌 일반 농가에서는 소가 거의 없다. 2000년이 되기 전에는 홍희네 고향 집에도 소가 있었다. 아버지가 농사짓는데 필요한 것 중 가장 중요하고 비쌌다. 인간의 힘으로 하기 어려운 일을 소가 대신 해 주었다. 논농사를 짓기 위해 논을 갈아엎어 부드러운 흙으로 만들기 위해 소는 쟁기를 끌었다. 소가 지나가면 흙이 옆으로 뒤집혀지고, 길이 생겼다. 아버지는 뒤에서 쟁기가 기울어지지 않도록 잘 잡고, 소가 방향을 잡고 잘 갈 수 있도록 뒤에서 줄을 당겼다 놓았다.

농사 수확물을 거둬 집으로 돌아올 때는 리어카에 가득 담아 소가 끈다. 걷기 싫으면 리어카에 타기도 한다. 흔들흔들 리어카가 덜컹거리듯이 소 엉덩이와 꼬리도 흔들 흔들거린다. 딱지가 눌러붙어 거무죽죽한 털이 냄새라도 날 것 같지만 재미가 있기도 하다.

부모님이 저녁 해가 지고 어둑해져야 집에 오기 때문에 소죽 담당은 홍희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오빠가 고등학생이 되어 대구로 나간 뒤로 소죽 담당이 되었다. 커다란 솥에 물을 두 양동이 붓는다. 힘 약한 홍희는 낑낑거리며 물을 나른다. 가끔은 물이 넘쳐 발을 적신다. 미리 썰어둔 여물을 솥에 넣고 쌀겨라고 불리우는 '등개'를 넣는다. 영양제 같은 거다.

불을 때는 것은 또 얼마나 고단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홍희에게는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불을 땔 때, 솥에서 김이 넘쳐 솥투껑아래로 흘러 나올 때까지 보고 또 본다. 물이 흘러 나와야 불 때는 것이 끝나는 것이다. 불을 때기 쉬운 나무는 그래도 나았다. 타는 불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는 것도 좋았다. 텔레비전을 방문 앞에 옮겨 놓고 만화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벼를 찧어 쌀로 만들고 난 벼껍질로 불을 땔 때는 손이 바빴다. 오른 손으로는 풍로를 돌리고, 왼 손으로는 벼껍데기를 한 웅큼씩 넣어야 했다. 풍로를 돌리는 세기를 너무 세게 해도, 너무 작게 해도 불이 타지 않았다. 세기를 조절해가며 풍로를 돌리는 것이 신경도 쓰였고 팔도 아팠다. 심심할 사이가 없었다. 시간은 더디게 갔다.

김이 나오고 나서 주걱같은 것으로 섞어 놓으면 홍희 할 일이 끝났다. 소죽이 식기 전에 소가 음무하고 울음소리를 내며 집으로 왔다. 그 뒤를 아버지가 따라오고, 그 뒤를 엄마가 왔다. 집이 비로소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었다.

소가 새끼를 놓을 때는 아버지와 엄마는 기쁜 기색이 있었다. 밤에 낳은 송아지를 아침에 보면 큰 눈망울이 순하고 친근했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벌떡 일어나 엄마 소 주위를 맴맴 돌았다. 엄마 젖을 빨아먹기도 했다. 계속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젖을 뗄 때쯤 아버지는 안계시장에 송아지를 데리고 가셨다. 돌아올 때는 혼자 오셨다. 그 날 밤 엄마소는 밤새도록 울었다.

아버지가 70쯤 되셨을 때 소를 팔았다. 더 이상 농사를 짓기도 힘이 부치고, 소를 먹이는 일도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뭔가 아쉬움이 남았지만 홍희가 관여할 수는 없었다. 소가 있던 질척한 외양간은 빈 창고가 되었다.

소가 있던 우리집이 가장 활기찬 집이었다. 사람보다 더 큰 동물인 소는 코뚜레와 줄만으로도 사람을 떠나지 않고 사람을 위해 일했다. 소띠해, 소가 있던 우리집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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