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추사 김정희 걸작 ‘세한도’
유배 중 절박함 소나무에 비유
의리 지킨 제자에 고마움 담아
굳건한 절개·단순 미학 절정
소나무는 장수·지조·길조 상징
일월오봉도·책가도에도 등장
<그림1>
2021년 국보 제180호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세한도가 민간 소장에서 국립 중앙박물관으로 기증이 되어 이제 모든 국민의 자산이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기념전시가 열리고 있다. 여건이 허락되면 꼭 실물로 보고 싶은 그림이기도 하다.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되던 때에 그린 것으로 추사가 겪고 있던 고달픔, 메마름을 건조한 먹과 거친 필 선을 통해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인간으로서 힘든 시간을 견디는 추사 자신을 소나무로 표현하고 그림 속의 잣나무를 통해 선비정신과 기개를 잃지 않고 버텨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소나무는 예로부터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을 받은 나무이다. 몇 년 전 산림청이 한국갤럽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나무를 물어본 결과 절반에 가까운 46퍼센트가 소나무라고 답했다. 우리나라는 어디에서나 고개를 들어 산과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나무가 소나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태어나면서부터 소나무와의 인연은 시작될 수밖에 없다. 옛날에는 소나무로 지어진 집에서 아이가 태어났고, 소나무 장작으로 데워진 온돌에서 산모는 몸조리를 했다.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금줄에는 소나무 가지가 끼워졌다. 아이가 자라면서 뒷동산의 솔숲은 놀이터가 되고 땔감을 해오는 일터가 되기도 한다. 가구를 비롯한 여러 생활필수품에도 소나무는 빠지지 않았다. 선비로 행세를 하려면 송연묵으로 간 먹물을 붓에 묻혀 일필휘지를 할 수 있어야 하고, 험한 세상살이가 끝나면 소나무로 만든 관 속에 들어가 땅속에 묻힌다. 그러고도 소나무와 인연은 끝나지 않는다. 도래솔로 주위를 둘러치고는 다시 영겁의 시간을 소나무와 함께 한다.
소나무는 百木之長, 장수, 절개·지조, 탈속, 길조, 번성, 민족의 기상을 상징하는데 서원과 같은 유교 공간에 심은 뜻은 절개와 지조, 민족기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거대하게 자란 소나무는 장엄한 모습을 보이고 눈보라 치는 역경 속에서도 변함없이 늘 푸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소나무는 한 번 베어버리면 다시 움이 나지 않는 것도 그 특성이라 하겠다. 구차하게 살려고 하지 않는 나무다.
이런 점에서 소나무는 곧은 절개와 굳은 의지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어왔다. 소나무를 ‘초목의 군자’ ‘군자의 절개’ ‘송국 같은 절개’ ‘송백의 절개’ 등으로 일컫는 표현은 한결같이 절개를 강조하고 있다. 옛 선비들은 소나무를 군자에 비유하고 집안이나 정자 주위에 심어 그 자태를 바라보며 소나무의 품성을 배우고자 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그림에는 소나무가 늘 등장한다.
<그림2>
강세황의 소나무를 보자. 김정희의 소나무가 여기서 시작된 듯하다. 마른 느낌의 굴곡이 심한 가지 끝에는 반차륜(半車輪)의 솔잎이 꼼꼼히 그려져 있고, 속이 깊게 표현된 옹이는 윤곽선을 나무껍질과 성질이 다르게 구분되도록 줄기에 돌출을 시켰다. 강세황의 소나무는 그의 전 생애에 거쳐 두루 보이는데 이 그림은 노년의 고상하고 기백 있는 정신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림3>
소나무는 장수와 변하지 않는 지조 등의 상징이었던 만큼 민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일월오봉도는 물론이고, 책가도 등에도 소나무 분재나 화병 속 소나무 가지 등이 그려지곤 하였다.
이는 선비의 고고한 절개 등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경사스럽고 축하할 일이 많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다시 세한도로 돌아가 보자.
세한도라는 제목 옆에 우선 우선시상(藕船是賞) 이라고 쓰고 있다.
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이상적(李尙迪)이기 때문이다. 김정희는 지위와 권력을 잃어버렸는데도 사제 간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물심양면 지극정성으로 자신을 도와주고 지켜주는 제자이며 역관인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이 그림을 그려 줬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 가도 정승이 죽으면 문상 가지 않는다는 세태를 비웃듯이 이상적은 단 한 번도 스승 김정희에게 소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지극히 대했다. 유배지에서 외로울 스승에게 수많은 책과 용품들을 꾸준히 보냈다. 역관인 그가 마음만 먹었으면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치부(致富)보다 스승이 원하는 것을 구하는 데 그 돈을 다 썼다. 여간한 일이 아니다. 김정희는 그런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해 그려 준 것이다.
그림의 끝 제문에는 시련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는 무엇인가가 반드시 있다는 의미로 歲寒然後知松柏知後凋 !! (한겨울을 겪고 난 뒤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라고 되어있다. 인간의 절박한 문제를 그림의 주제로 선택해서 그 문제의 답을 제시한 추사 김정희의 강인한 마음이 지금 어려운 시대를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