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를 마구 불어대고 연주하다(濫竽充數)
피리를 마구 불어대고 연주하다(濫竽充數)
  • 승인 2021.01.1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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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교 교장
요즘 트로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트로트는 정형화된 리듬에다가 구성지고 애잔한 느낌이 드는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하나이다. 모든 국민이 즐겨 듣고 신나게 부르기를 좋아하는 유행가이다. 어떤 트로트는 너무 구성지고 애잔하여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까지 글썽이게 한다. 어떻든 함께하니 신명이 나고 즐겁다.

맹자가 제나라 선왕(宣王)을 만났다. 맹자는 "왕께서는 음악을 아주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하고 물었다. 선왕은 안색이 변하면서 "과인은 순임금의 아름다운 음악이나, 주나라 무왕의 대무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세속에서 유행하는 음악을 좋아할 뿐입니다."고 했다.

맹자는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신다면 제나라는 잘 다스려질 것입니다. 고전음악이나 현재의 음악이나 관계없습니다. 혼자 즐기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즐기는 것보다 못하고, 몇몇의 사람들과 즐기는 것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것보다 못합니다. 반드시 여민동락(與民同樂)하십시오. 그러면 정말 참다운 왕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여민동락(與民同樂)'은 백성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하는 것이다. 선왕(宣王)은 제나라 37대군주이며 왕의 칭호로서는 2대였다.

제나라의 수도 임치에는 13개의 성문이 있었다. 서쪽에 있는 성문이 직문(稷門)이다. 그 문 아래에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전국의 선비들을 모아서 학문을 닦도록 하였다. 그곳의 선비들을 직하학사(稷下學士)라고 하였다. 벼슬을 하지 않고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대부벼슬의 융숭한 대접을 하였다. 맹자와 순자도 직하학사 출신이었다. 맹자는 나중에 제나라에서 객경이라는 높은 지위의 대접을 받았다. 그래서 '맹자'에는 제나라 선왕과의 대화가 많다.

제나라 선왕은 피리(생황)합주를 좋아했다. 피리합주는 반드시 300명이 불도록 했다. 이때 실력도 없는 남곽처사가 왕을 위하여 피리를 불겠다고 간곡한 청원을 하였다. 제나라 선왕은 이것을 매우 기뻐했다. 제나라 선왕은 피리합주단에게 수백명분의 음식을 대접하고 또 곡식을 하사했다.

제나라 선왕이 죽고 아들 민왕이 즉위했다. 민왕(湣王)도 음악을 좋아하였다. 그런데 합주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씩 부는 독주 듣기를 좋아했다. 이때 남곽처사는 실력이 들통날까봐 민왕 몰래 도망을 하였다.

사람들은 이것을 '남우충수(濫竽充數)'라 하였다. 남곽처사로 300명의 인원을 채운 것은 충수(充數)이고, 피리를 마구 불어 댄 것은 남우(濫竽)이다. 남우충수라는 말은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재능이 있는 체하거나 실력이 없는 사람이 외람되이 높은 벼슬을 차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비자는 남우충수의 대비책으로 일곱 가지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일의 발단을 밝히고, 잘못은 처벌하고, 잘한 일은 상을 주고, 남의 말을 매일 경청하고, 결과는 검증하고, 아는 체 하지 말고, 결론은 반성하고 신중하게 하라는 내용이다. 당시에 이 말은 군주의 경각심을 일깨운 말이었다. 한 번 보거나 들어서는 다른 사람의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을 분별하기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무능력과 무책임이 개인보다는 위계조직의 작동원리나 구조 등에 의한다.'는 이론은 '피터의 원리(The Peter Principle)'이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무능력해진다. 피터는 조직에서는 20%만 일하고, 80%는 일하는 척 한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오직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하게 된다. 하지만 그 자리에 오르면 수행업무 능력이 부족해 결국 좌절한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다. '하는 일의 변화가 한계에 이르면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얼굴 찡그리고 짜증부리고 남 탓하는 고위직들의 모습이 그렇다. 그런 자리에 충수가 꼭 필요할까?

맹자는 "윗대의 경공은 '임금의 욕심을 간하여 막는 것은 허물이 아니다. 임금의 욕심을 간하고 막는 것은 임금을 좋아하는 것이다.'라는 노래를 지어 부르도록 했습니다."는 말로 선왕에게 에둘러 휼간(譎諫)하였다.

잔인한 코로나19로 모두 힘들다. 며칠 전 진해에 있는 장복산길을 오르는데 '내힘들다'라는 팻말이 보였다. 밑 부분에 조그마한 글씨로 '거꾸로 읽어 보세요.'라고 씌어 있었다. 그래, 실력이 없으면서 아는 체하는 고위급들이 피리를 마구 불어대고 연주하더라도 모두 '다들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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