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있는 과실과 미필적고의
인식있는 과실과 미필적고의
  • 승인 2021.01.1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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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진 대구 형사·부동산 전문 변호사
검사가 16개월 된 입양아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모에 대하여 그 동안 '아동학대치사죄'로 기소하였다가 주된 죄명은 살인죄, 예비적 죄명은 아동학대치사로 공소장을 변경하였다. 이를 두고 경찰이나 검찰이 엄정 수사하고 정확한 증거수집을 통하여 살인죄로 기소하면 될 것을 처음부터 대충 부실 수사하였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여론은 일반 국민들의 평범한 법 감정의 발로이므로 수사기관 내지 기소권을 가진 검사의 입장에서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건에 대하여 어떤 죄명으로 기소할지는 어려운 문제다.

살인죄는 처음부터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폭행을 시작하여 사망의 결과가 발생한 것이고, '과실치사'는 살인의 고의 없이 폭행을 시작하였으나 예상과 달리 사망한 경우를 말한다.

고의와 과실의 한계선상에 있는 것이 미필적고의와 인식있는 과실이다. 고의와 과실은 내심의 요소여서 이를 구별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형법학자들은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발생할 결과를 진지하고 고려하였음에도 결과 발생을 감수하면서 행위로 나갔을 때'를 미필적고의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옥상에서 눈을 감고 아래로 돌은 던지는 사람이 '내 행동이 위험하지만 이 시간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누가 다칠 가능성이 없다'라고 생각하면서 돌을 아래로 던졌다면 결과 발생을 감수한 것이 아니므로 '인식 있는 과실'이라고 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으므로 사고 발생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맞아도 할 수 없지'라는 생각으로 돌을 던졌다면 사고 발생가능성을 용인한 것이므로 미필적 고의 또는 고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유사한 아동사망 사건에서 '아동의 신체에 약 15개 이상의 갈비뼈가 부러진 흔적이 있는 점, 매우 어린 아동에게 성인이 팔다리로 폭행을 가하는 것은 흉기를 가지고 폭행하는 정도에 유사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점에서 피고인이 해당 폭행으로 인하여 아동에게 사망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음에도 이를 용인하고 폭행을 가한 것이므로 아동 사망에 대한 명백한 고의는 없었더라도 미필적 고의는 있어 살인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하였다.

현재 문제되는 사건의 경우 감정 결과 피해 아동의 등 쪽에 가해진 강한 충격에 따른 복부 손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 되었고, 사망 당일 등 쪽을 강하게 밟고 수차례 때린 것이 확인되었다면 살인죄가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위 폭행 내용을 피고인이 인정하지 않았다면 검사는 이에 대하여 아무런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상태이고, 오히려 '피고인의 등 폭행'이라는 점에 대한 입증이 없어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여 살인죄에 대하여는 무죄가 선고되고 아동학대치사죄만 유죄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인 사건에서 검사는 살인죄인지 아니면 과실치사죄인지 여부가 불명확한 경우 2개의 죄명으로 기소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기소권 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 살인죄에 해당하지 않는 사건을 검사가 살인죄로 기소하였을 경우 기소 당한 피고인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살인죄유죄가 선고될 것'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과 두려움 및 이를 방어하기 위한 노력으로 엄청난 불이익이 발생하고, 재판부 입장에서도 검사 스스로 살인죄로 확신하지 못하는 사건에 대한 필요 없는 재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은 재판에서 뿐만 아니라 수사 및 기소 단계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내용이므로 검사 스스로 살인죄 성립 여부가 애매할 경우 그 공을 법원으로 넘기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열사람의 범인을 놓쳐도 한 사람의 죄없는 사람을 처벌하여서는 안 된다'는 논리와 축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이러한 원칙은 단순히 유무죄 뿐만 아니라 해당 범죄행위에 대한 적절한 죄명 선택에도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따라서 입양아의 사망이 양모의 살인 고의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점에 대한 검사의 확신이 없다면 아무리 여론이 살인죄 기소를 원하여도 검사는 법조인의 양심을 걸고 살인죄로 기소하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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