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회사 이름(社名) 바꾸기
[박명호 경영칼럼] 회사 이름(社名) 바꾸기
  • 승인 2021.01.1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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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올해는 코로나19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는 해다. 그래서일까. 새롭게 창업한다는 다짐으로 회사 이름을 바꾸는 기업들이 많다. 새해 첫날 대림그룹이 창사 82주년을 맞아 지주회사 사명을 ‘DL’로 정했다. 연이어 기아자동차가 이달 15일부터 ‘기아’로 사명을 변경한다. SK텔레콤도 인공지능(AI) 빅테크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새 사명을 검토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엔씨’로 회사명을 바꿀 예정이다. 이처럼 새해 벽두부터 기업들의 새 이름 짓기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단체도 새 이름을 짓는다. 우리나라의 정당은 이름 바꾸기 선수다. 하도 여러 번 바꾸어서 이젠 새 이름을 지을 때 ‘○○당’이라는 빈칸을 채우기가 어려울 정도다. 개인도 부모가 지어주신 이름을 귀하게 여겨서 평생 그대로 사용하던 시절은 지났다. 자신의 이미지와 맞지 않다거나, 의미나 발음이 부자연하다고 생각하면 서슴없이 새 이름으로 바꾼다. 마을 이름을 새로 짓는 경우도 많다. 대구에서는 어감이 나쁘다며 수성구 황천동과 달서구 파산동을 각각 황금동과 호산동으로 바꾸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창업 시 예외 없이 한자식 사명을 사용했다. ‘삼성’ ‘현대’ ‘선경’ ‘두산’ ‘효성’ ‘한진’ 등이 모두 한자식 한글 사명이다. 20세기 말 글로벌 경제에 진입하면서 기업들이 사명을 영문 약자로 바꾸기 시작했다. 시초는 1995년 그룹시무식에서 구자경 회장이 36년간 사용해오던 ‘럭키금성(Lucky-Goldstar)’을 ‘LG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한 것이다. 이후 LG에서 계열 분리된 GS그룹, LS그룹, 그리고 LIG그룹이 모두 영문 약자를 쓰고 있다. 한국담배인삼공사는 KT&G로, 선경그룹은 SK로 사명을 바꾸었다. 이처럼 한글 사명을 아예 없애고, 영문 사명만을 쓰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KEPCO, KAMCO, KOBACO는 무슨 회사일까. 또 KT, KTX, KT&G, KGC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많은 회사들이 이같이 암호처럼 보이는 영문 약자를 사명으로 쓰고 있다. 소비자들이 이들을 제대로 해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떻게 읽어야 할지, 무엇을 뜻하는지도 잘 모른다. 당연히 기억하기란 더 더욱 어렵다. 영문 약자로 사명을 지은 기업들은 세계화에 걸맞게 외국인들도 쉽게 알아보도록 바꾸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영문 이름이 사업의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는 매력적인 것인지는 잘 따져보아야 한다. ‘선경(SUNKYOUNG)’은 ‘Sunk Young(가라앉은 젊은이)’로 발음되어 고민 끝에 ‘SK’로 바꾸었다고 한다. 또 대영자전거는 수출용 자전거에 회사명을 ‘Dae Young’으로 표기하여 ‘die young(젊어서 죽는다)’로 읽혀졌고 그 결과 해외시장에서 철수했다는 웃지 못 할 스토리도 있다.

사명은 대개 브랜드명과 함께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 농심은 모든 라면 상품에 사명을 붙이고, LG전자도 모든 가전브랜드명에 LG를 겹쳐 쓴다. 그런데 호텔을 비롯한 대부분의 서비스업에서는 사명이 곧 브랜드명이다. 유통업에서는 자사 제품에 브랜드명 없이 제품 표시와 함께 사명만을 기재하기도 한다. 제조업에서는 브랜드명이 사명이 된 경우도 있다. ‘쿠쿠(CUCKOO)’는 브랜드명이 인기를 얻자 아예 브랜드명을 사명(원래의 사명은 ‘성광전자’)으로 바꾸었다. ‘코오롱(KOLON)’은 ‘한국나일론’이 만든 한국 최초의 나일론 원사 제품명이었는데, 1977년부터 이를 사명으로 사용했다.

이처럼 사명은 기업의 정체성과 그 기업만의 차별적 이미지를 나타낸다. 사명에는 기업의 문화와 기업 미션, 사업의 특성, 경영전략 등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 시대적 특성이나 환경의 트렌드와 조화를 이루어야하고, 부르기 좋고 기억하기 쉬워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사명은 기업의 호칭 이상의 역할을 한다. 잘 만들어진 사명은 고객인지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아가 브랜드 정체성(brand identity)을 정립하거나 브랜드 가치를 높여서 마케팅력과 기업경쟁력을 강화한다. 그래서 사명에는 그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의 특징이 잘 녹여져 있어야 한다. 또한 사명에 걸 맞는 로고(LOGO)나 상징(symbol) 마크 등을 디자인하는 CI(Corporate Identity) 작업은 당연히 필수적이다.

대구 신천 동로 칠성시장 부근을 지나다보면 한 건물 외벽의 대형 현수막에 적힌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란 광고를 보게 된다. 맞는 말이다. 이름은 이름값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지을 수는 없다. 그래서 개인이든 기업이든 모든 이름은 ‘유명무실하지 않고 명실상부하다’라는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새해에 새 사명으로 새롭게 출범하는 기업들이 새 이름에 걸 맞는 새 각오로 큰 성과를 이루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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