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정치 돌아보기
젠더정치 돌아보기
  • 승인 2021.01.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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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젠더와 자치분권 연구소장
아직도 여성이 사회적 약자인가?

그렇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소수자이다.

지난 몇 년 사이 성희롱 범죄에 맞서는 미투운동에 이어 디지털성폭력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올라 온라인상의 성착취근절 여론이 형성되었다. 최근엔 형법상 낙태죄도 폐지되었다.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에 대한 차별금지 운동이 활발한만큼 새로운 영역에서의 인권침해도 만만치 않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온라인 성폭력과 일상에서의 서비스 제공을 위해 마련된 인공지능 ‘이루다’에 대한 논란을 쉽게 들 수 있다.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이루다는 20대 여성으로 설정된 인공지능으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출시 3주 만에 80만 명의 사용자가 몰리는 인기를 끌었다.

인공지능 이루다를 성희롱하는 이용자가 있다는 사실은 이루다의 페르소나(타인에게 인지되는 성격)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인지 감수성과 연관된다. 성인지 감수성은 일상 속에서 젠더에 따른 차별과 배제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그 배경과 구조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차별과 배제를 당하는 쪽은 성인지감수성이 발달하기에 좋은 여건을 갖췄으나, 차별과 배제를 행하는 행위자는 성인지력이 없이도 살아가기 어렵지 않기에 인식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다시 태어나면 다른 성으로 태어나고 싶은가? 여자로 태어나고 싶은 남자는 거의 없지만, 남자로 태어나고 싶은 여자는 있다. 왜일까? 이 질문은 일상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가장 쉽게 증명하는 사례가 아닐까.

실제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여성, 청년, 비정규직의 삶이 더 빨리 힘들어지는 것을 경험하였다. 육아와 가사 부담은 남성과 여성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킨다. 남성에 비해 가사와 돌봄의 부담을 떠안는 여성이 증가했으며 실제 고용 충격은 청년층, 그중에서도 여성에게 직격탄이 되고 있다.

OECD 국가 중 12년간 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에서 2030 여성의 자살률은 계속 높아지는 추세이다. 그런 점에서도 소수자인 여성을 위한 다양한 정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젠더정치는 여성운동계가 추동해 왔다.

여성계도 관료화되어 있어 경직되고 업무 분절화는 물론 남성조직 못지않은 권력다툼이 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 상대는 안 된다는 선거운동 과정은 치열하고도 비열하기까지 하다.

마침 서양 페미스스트의 자기 고백적인 책이 있어 현재의 여성계, 선후배 페미니스트들이 젠더정치를 돌아보는데 도움이 된다. 미국 페미니즘의 역사지만 한국 또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A Politically Incorrect Feminist)’는 2세대 페미니즘의 중심에 있던 작가가 자신이 살아낸 페미니즘의 역사를 회고록 형식으로 쓴 책이다.

2세대 페미니스트들은 경제적으로 차별받는 여성을 위해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성폭력과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피신처를 만들었으며, 낙태권과 평등권 쟁취를 위한 투쟁에 나섰고, 남자들만의 영역에 진출하는 등 사회변화를 주도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거나 질투의 대상이 되는 여자를 헐뜯거나 따돌렸다.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들 대부분은 지독하고 노골적인 싸움에 심리적으로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다. 여자들은 모든 갈등을 정치적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겪어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때로 사람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기도 했다. 이제야 우리는 모든 여성, 즉 백인 여성이든 다른 인종의 여성이든, 인종차별을 내면화해 왔음을 이해한다. 또한 여성 역시 성차별주의자들이며 호모포비아라는 사실도.”

작가는 힘들었던 과거를 드러내며 당부한다.

“나이를 먹게 되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여자들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잔인함과 질투심을 가졌음과 동시에 관대함과 연민을 지녔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쟁할 수도, 협력할 수도 있는 인간이었다.”

우리가 젠더정치를 돌아보며, 더 많은 훈련을 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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