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성 담낭염은 말 그대로 담낭에 만성염증이 발생한 상태인데, '만성염증? 염증은 다 같은 거 아냐? 만성 다르고 급성 다른가?'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무조건 하나 이상의 만성 염증을 이미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흉터'가 가장 대표적인 만성 염증 병변이기 때문이지요. 우리 몸에 부종이나 상처, 혹은 세균감염과 같은 염증 반응을 겪고 나면 그 자리에는 치유의 흔적인 흉터가 남습니다. 그리고 이미 생긴 흉터부위에 지속적으로 상처가 다시 생기고, 다시 아물기를 반복하면 흉터가 점점 더 두꺼워지는데, 만성 담낭염은 이런 반복적인 흉터현상이 담낭의 벽에 발생한 결과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담낭의 경우 그 위치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합니다. 담낭은 간 밑에 부착되어 있고, 총담관에 연결되어 있으며, 아래쪽으로는 위장, 십이지장, 심지어 대장의 일부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런 위치에서 만성 염증, 쉽게 말해 흉터현상이 반복되면 인접한 구조물도 흉터현상을 함께 겪으면서 서로 간에 '유착'이 발생합니다. 말 그대로 주변의 장기들과 엉겨붙게 되지요. 이런 유착이 심해진 상태에서 수술을 받게 되면 다른 장기들과 담낭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배 안에 더 많은 상처가 남을 수 밖에 없고 수술과정에서 변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똑같이 담낭을 제거하는 것이지만 똑같지 않게 됩니다. 물론 외과의사 입장에서도 수술 난이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진작 수술을 받았어야 하는 환자분들을 진료할 때면 집도의로서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이런 전후 사정을 예전에 누구에게도 설명들은 적이 없어서 늦게 오신 분들에게는 의사로서 송구스러울 때가 많아 더 열심히 진료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설명 드려도 '일단 당장 안 아픈데, 내 몸의 일부를 잘라내기 싫은 마음'에 또다시 수술을 미루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럴 땐 맥이 풀리고 걱정도 많이 됩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술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다른 질환의 경우에도 식이요법이나 운동, 혹은 약물 등으로 먼저 치료해보고 정 안되면 마지막으로 수술을 한다고 생각하지요. 심지어 '암'에 걸려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도 있고 이런 불안감과 두려움을 이용해서 검증된 현대의학 대신 민간요법이나 대체의학을 권하고 또 그를 통해 이익을 얻는 정말 나쁜 사람들도 있습니다. 담낭의 경우에는 '담석'을 녹여서 치료해준다는 광고도 버젓이 많이 보입니다.
현대의학이 온갖 치료행위를 다하고 손을 놔야할 지경일 때,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을 때, 공기 좋은 곳에서 식이요법도 하고 명상도 하면서 심신을 추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한편으로는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아니면 제발 현대의학을 믿고 따라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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