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떨군 말들이 한없이 부끄러워
나에게서 나를 지우고 싶은 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그대 덮어 줄 이불 한 조각 없어
별이 된 그대를 사랑하면서도
별의 눈물을 빤히 보면서도
그대에게 가까이 갈 수가 없다
얼마나 더 많이
넘어지고 깨어지고 불면의 밤을 보내야
그대의 슬픔에 닿을 수 있을까
세상에 대해
그대의 가난에 대해
그대의 수치와 분노에 대해
우주의 죽음에 대해
고작 내가 아는 건 티끌만큼
영영 나를 지우고 싶다
내가 새처럼 지껄였던 가벼운 말들
그대의 몸에 붉게 새겨놓은 말
내가 뿌려놓은 글
내가 만든 기억 모두
붉은 장미가 꽃잎을 떨구듯 그렇게
다 떨구고 싶다
◇유혜경= 1958년 서울生. 강원도 원주에서 詩作활동중. 서울동덕여고 졸업. 원예학, 국어국문학, 힌디어 힌디문학사 공부. 저서: 자전적 에세이 <그림자이야기>,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노마드로 살아가는 자유로운 영혼 등.
<해설> 세상은 내가 아는게 전부가 아니다 언제나 안개에 가려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분별하기가 어렵다. 사람의 언어가 그중 하나다, 좋은 말로 시름에 잠긴 상대를 살리기도 무심코 내뱉은 말에 상대가 상처를 입기도 한다. 우리 옛말에는 “남아일언 중천금”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말을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내 말로 상대가 상처를 입었다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
-정광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