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 승인 2021.02.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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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경소비자연맹 정책실장
어떤 지역에서 사는 것이 행복할까? 공부하는 학생을 자녀로 둔 입장에서는 좋은 학교와 좋은 학원이 있는 곳이다. 직장을 구하는 청년 입장에서는 좋은 일자리가 있는 곳이다. 가정생활을 책임지는 주부들은 편리하게 쇼핑할 수 있는 곳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난 2015년 경신고에서 수능 만점자가 4명이나 배출되자 주변 아파트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는 뒷 이야기도 있다. 그 지역 아파트 가격이 상승한 이유는 더 좋은 교육환경에서 교육 받기를 원하는 부모들이 그 지역으로 몰려들면서 아파트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반면 자녀 교육을 마친 부모들 입장에서는 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하면서 까지 비싼 아파트에 살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이탈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지만 대부분 그 지역에 눌러 앉는다.
그런 결정이 비합리적이지 않다면 분명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이유는 사회적 공통 이슈가 되지 않기 때문에 수면 아래에 잠겨 있을 뿐이다. 대부분 자녀를 둔 가정의 공통된 고민은 교육이다. 교육은 인적자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을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이 수단화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래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낼 수 있는 도구라는 점을 일찍부터 터득한 우리 부모들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도 자녀에게 공부만은 시키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교육은 빈부격차와 상관없이 모든 가정에서 관심을 갖는 공통분모이기 때문에 입시철이 되면 항상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 섰던 이유이며, 소위 성공한 사람들의 사회적 기부활동 중에서 장학금 비중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원인과 결과 간에 존재하는 인관관계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정 지역에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분명 아파트 가격이 오른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 중 하나가 교육일 뿐인데도 강하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어 그 덫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 연유로 우리 사회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근원을 찾기 보다는 감성적인 이슈에 매몰되면서 해결방안을 찾다보니까 정책적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회경제적 환경이 변하고,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경험을 토대로 우리가 사는 사회를 보는 인식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성공에 대한 생각, 교육에 대한 생각, 직장에 대한 생각, 소유에 대한 생각도 변하고 있다. 개인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부족할 때는 성적을 객관적인 지표로 사용했고, 직업군이 다양하지 못할 때는 고위공직자가 되고 또한 축적된 부가 성공의 지표로 생각했던 적도 있다. 물론 지금도 유효하지만 과거와 같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대기업 CEO에 오른 인사들의 대담을 들어보면 가장 후회되는 것은 가족들과 함께 주말을 보내지 못한 것이라고 소회한 분들이 많다. 역으로 생각하면 주말을 항상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면 그 위치까지 올랐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어떤 지역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할까? 라는 질문을 해본다. 물론 답은 비슷할 것이다.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개인도 중요하지만 이웃의 소중함일 것이다. 흔히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다. 농경사회에서는 이웃과 상호부조를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가 어렵다는 것이 오랜 노하우이다. 그럼에도 그 소중한 가치를 잊고 산 것은 산업화 사회가 되면서 개인화된 삶은 이웃의 도움이 없이도 큰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달리 생각한다면 상호이익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도움을 주고 받는 지역 주민들을 친숙한 이웃으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잠시나마 공동체의 선을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삶에서는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을 하면 기회비용이 발생한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런 기회비용은 염두에 두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은 다 하고 싶기 때문에 항상 불만이 가득하다. 시장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것도 저것도 하다보니까 결국 치킨 게임이 된 영역이 의외로 많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하나의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공유(共有)의 개념이다. 공유는 가진 사람으로부터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준다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든 것은 정치권이다. 공유는 욕망의 상호 충족을 메워 주는 것이지 결코 자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소유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공유이고, 공유의 이면에는 무소유가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철학자나 종교인의 영역인 것 같다. 오히려 무소유는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 이웃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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