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인 삶에 성큼 들어온 천진한 동심
정적인 삶에 성큼 들어온 천진한 동심
  • 황인옥
  • 승인 2021.02.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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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아트피아 ‘힐링&필링’展
참여작가 배윤정, 드로잉 첫선
주로 해오던 영상 작업도 출품
새 보고 웃고 일몰 보고 웃고…
시골집에 온 조카와의 일상 표현
배윤정-작품이미지-03
배윤정 전시작품 이미지.

천진난만한 소녀가 꿈에 부풀어 초등학생이 되었지만 학교에 갈 수도,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다. 코로나 19에 일상을 빼앗겨 집콕 신세가 됐다. 소녀의 부모는 낙담하는 아이를 이모의 시골 작업실에 보내려는 결심을 한다. 비대면 영상으로 학업은 이어가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고, 코로나 19 전염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 더없이 좋은 피난처로 생각한 것이다.

비록 코로나 19라는 재앙적인 상황이지만 아이에게 최선의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작용했지만 정작 소녀는 부모의 깊은 고심을 이해할 수 없다. 코로나 19가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른다. 그저 콘크리트 도심에서 벗어나 새롭게 접하는 자연에 마냥 신이나 있을 뿐이다. 자연 속 작업실에서의 소녀의 하루하루는 꿈결이었다.

느닷없이 어린 조카와 동거인으로 살게 된 작가이자 이모인 배윤정의 마음에도 미세한 균열이 찾아왔다. 주말이면 잠깐 보던 사이였던 조카가 일상의 일부로 들어오면서 잊고 있던 동심을 떠올리게 됐다. 무심하게 지나치던 전기 줄 위의 새들과 산 너머 넘어가던 붉은 태양마저 깔깔거리며 재미있게 바라보는 어린 조카의 천진난만한 시선이 그녀에게로 이입됐다. 정적이던 작가의 하루가 소녀의 풋풋한 감성으로 물들어갔다.

수성아트피아 올해 첫 기획인 ‘힐링 & 필링’전에 출품한 배윤정의 작품은 2D 애니매이션인 ‘The new normal(새로운 일상)’이다.

‘힐링 & 필링’전은 위기의 현재를 예술로 승화시켜 삶의 방향을 긍정적으로 풀어나가자 취지로 기획됐다. 이에 따라 작품 ‘새로운 일상’은 고요하던 일상에 선물처럼 찾아온 작가의 조카가 자연 속에서 새롭게 눈뜨는 행복한 일상을 드로잉 한 2D 애니매이션 작품으로 구성했다. 영상에는 개구리처럼 톡톡 튀는 어린 소녀의 모습부터 아이가 바라본 자연 풍경들이 스쳐 지나가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녀는 “바쁘다는 핑계로 지나쳤던 일상 속 세계를 코로나 19로 피난 온 조카의 존재로 새롭게 마주하게 되었고, 그것들이 평안함으로 이끌었다”며 “이번 기획전의 의도와 잘 맞아 작품으로 제작하게 됐다”고 작품 탄생 배경을 밝혔다.

배 작가는 영상 작업을 주로 해왔다. 영상 작업 초기에는 3D 작업에 집중했다. 3D 영상 작업은 독학으로 깨우친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로 제작됐다. 대학원 재학 시기 몸담았던 연구실 책임 교수가 미디어아트 전공이어서 영상의 묘미에 눈 뜨게 되면서 영상 작업이 그녀의 작업 매체가 되었다.

2D 애니메이션은 2017년부터 모색되었다. 회화의 손맛에 대한 향수가 밀려오면서 드로잉을 기반으로 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주로 블랙 & 화이트의 무채색 계열로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이번 수성아트피아 기획전에서 칼라풀 한 색채의 사용을 시도하게 됐다.

이번 2D 애니매이션나 3D 영상 작업의 주제는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했다. 사회적인 이슈나 문제시 되는 주제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의 결과였다.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적극적으로 발언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없지는 않았다. 바로 그녀의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누군가와 마주앉아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들을 대놓고 이야기 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부담이었다. 그렇다고 입을 닫고, 존재감 없이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는 작가이기 때문에 작업을 통해 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특히 3D 작업의 대주제는 ‘나로 하여금’이다. “각자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길지않은 시간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인간의 생은 확신 없는 존재의 연속임”을 자화상의 모습을 여러 가상의 상황들 속에 등장시키며 나타냈다. 그녀의 작품 속 자화상은 내성적이어서 제한적일 수 있는 외부와의 소통과 인식하는 체계를 확장하는 매개체로 활용했다. 그녀가 작업에서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확장성’이었다.

“2D, 특히 3D라는 가상의 세계는 평면이 가지는 제약으로부터 무한한 자유를 선사하죠.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표현이 가능해요. 표현에 대한 제 욕망을 실현하는데도 좋은 매체지만 관람객을 설득하는 데도 더없이 좋은 매체인 것 같아요.”

작품 속 서사의 주인공이 작가 자신이지만 드러나는 주제들은 보편성 위에 있다. 기괴한 우유곽을 형상화한 설치 작품에서는 어린시절 부모들이 자신의 가치관으로 자식들에게 우유 마실 것을 강요했던 기억들을 풀어내며 세대차이를 건드리는 한편, ‘잉여지왕‘전에서 선보였던 3D 영상 작품에서는 성실하지 못한 사람들로 치부하는 예술가를 향한 사회적인 인식에 일침을 가한다.

이번 전시에 새롭게 선보인 2D 애니매이션으로 회화성을 다시금 추구했듯이 그녀의 작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이 지점이 그녀가 작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가치가 있다. 그것이 작가로 살아가며 느끼는 ‘행복감’이다.

“저는 세계 이전의 세계, 그 너머의 세계를 의식하고 그것을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며 행복감을 느낍니다. 저의 행복감이 관람객에게 공감을 얻으면 작가로서 큰 행복이겠지요.” 김문숙, 나동석, 박지훈 작가와 함께하는 수성아트피아 ’힐링 & 필링‘전은 24일까지. 053-668-156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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