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매운맛’ 제6味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한국의 ‘매운맛’ 제6味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 김종현
  • 승인 2021.02.1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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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음식 세계로 - (3) 인간답게 먹고 밥값해라 - 2
제 5味의 등장
음식맛은 단 4가지 ‘단·신·짠·쓴’
기원전 400년 데모크리토스 정의
1908년 日 “제5味 감칠맛 존재”
주장 100년만에 국제적 공인받아
 
제5미
음식을 느끼는 다섯번째 맛인 제5미는 2천500여년 만에 출현했다.

◇제5미는 2천500여년 만에 출현하다

지구상 생명체는 자신의 생명유지현상을 위하여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는다. 그러나 인간은 맛을 통해서 독성이 있어 못 먹을 것 등을 가려내는 지혜를 가졌다.

원시인에서 현생인류까지 음식맛에는 단 4가지로 단맛(sweet), 신맛(sour), 짠맛(salty)과 쓴맛(bitter)이다. 이는 기원전 400년경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BC 460~370)는 혀끝에 닿은 원자를 맛으로 느낀다고 생각했다. 크게 4대원소론에 따라서 4가지 맛(四原味說)을 주장했다. 과거 초등학교 자연교과서에서 혀끝은 단맛, 중간부분에 짠맛과 신맛, 혀뿌리에선 쓴맛을 느낀다고 ‘단(sweet)- 짠(salty)-신(sour)-쓴(bitter)’이라고 암기했던 경험이 있다.

아직도 독일 100년 이전의 모 학자의 주장을 일본이 교과서에 실었고, 우리나라는 일본 자연교과서를 그대로 받아쓴 결과로 아직도 그대로 외우고 있다. 2006년 8월24일 ‘네이처(Nature)’ 과학전문지에서는 미각수용체(taste receptor)가 혀 전체에 분포되어 있다는 학설을 내놓았다.

2008년 3월 24일에야 비로소 제5미(The 5thtaste)으로 ‘감칠맛(umami,うま味, pleasant savory taste)’이 공인되었다. 1908년 동경제대 이케다 기쿠나네(池田菊苗, Kikunae Ikeda,1864~1936) 교수가 L-글루탐산나트륨을 발견해 ‘감칠맛(旨味,うま味)’을 주장하고 100년 만에 국제적인 공인을 받았다. 사실 이 맛은 1910년 조선총독부의 정책으로 일본사람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지나모도(味元, MSG, monosodium glutamate, C5H8NO4Na)로 인해 맛 들어졌다. 우리나라는 미원(味元)이라는 MSG제품을 만들어 세계인을 대상으로 지구촌 인류에게 맛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인을 실험용 대상으로 하고 세계화 첨단홍보맨으로 활약한 셈이다.

우리 동이족(東夷族)은 갓나물(芥菜)과 갓나물씨앗 황개자(黃芥子)의 매운맛을 기원전 1만년부터 선호해 먹었다. 중국에선 동이족(東夷族)의 특유한 매운맛(辛味, spicy taste)으로 기록하고 있다. 우리민족의 음식 맛에 제5미 매운맛(Korea 5th spicy taste)을 더하여 풍요한 음식 맛을 더하였다. 뿐만 아니라 오미(五味)를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오미자(五味子, Schisandra fruit)와 오미채(五味菜, radish)까지 식품으로 먹었다. 오미자는 한반도 어디서나 자생했으며, 오미채는 불교전승과 삼국시대부터 재배해 총각무김치, 깍두기김치, 무말랭이, 단무지 등 다양한 식품으로도, 때로는 소화제(diastase) 혹은 진해제거담제(antitussive and expectorant)로도 식치(食治)에 애용했다.

옛날 시골에선 겨울철 의사(冬醫)로 무동치미가 상빈(上賓)처럼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16세기에 남미(南美) 고추가 우리나라에 도입되었고, 유럽 남부지역의 겨자 무(horseradish)까지 도입되면서 우리나라는 지구촌에선 ‘매운맛의 성지(holy place of spicy taste)’가 되었다.
 

매운맛은 단순 통증?
한국은 예부터 매운맛의 성지
음식 풍미 살리는 역할 ‘톡톡’
외국인에겐 아직 통증으로 인지
日처럼 100년 후 공인받을 수도

다른 한편,‘제6미(the 6th taste)’로 ‘칼슘 맛’을 주장하고 있으나 아직은 공인되지 않았다. 한국의 매운맛(Korea spicy taste)은 한국, 중국, 일본, 남미 등에는 음식 맛으로 인정되어가고 있으나, 아직은 일반적으로 혀의 미뢰(taste bud)나 미수용체(taste receptor)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미뢰가 형성되지 않은 외국인들에겐 뜨거움(hot) 혹은 통증(pain)으로만 인지되고 있는 단계다. 따라서 제6미(the 6th taste) 혹은 제7미(the 7th taste)로 인정받기 위해선, 일본 우마미(旨味) 인정사례를 감안하면 적어도 100년 이후엔 가능하다.

◇인간의 품위를 살려서 먹자!

고려 충렬왕(忠烈王, 재위 1274~1308) 때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추적(秋適, 1246∼1317)이 쓴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선 “하늘은 못 먹고 살 인간을 태어나지 않게 하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자라지 않게 한다(天不生無祿之人,地不長無名之草).”고 말했다. 당시 동양에서는 “사람은 자기의 먹을 복을 타고난다.”고 믿었다. 물론 서양에서도 AD 80~100년경에 작성된 마태복음에서도 “뭘 먹고, 뭘 마시고, 뭘 입을까를 걱정하지 말라.”라는 생각을 가졌다.

이렇게 인간에게 먹을 걱정을 없앤 대신에 인간으로서 먹음에 품위를 지키고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원전 1,500년부터 i) 예기제의편(禮記祭儀篇)이나 구약성서 레위기(Leviticus) 등에선 먹거리를 주심에 감사(祭典), ii) 정성과 올바른 음식 만들기(食治, 藥治), iii) 먹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행동거지(table manners, eating ethic, 鄕飮酒禮), 그리고 최근에 와서 서양에서부터 iv) 먹거리빈곤(food poverty)과 식량전쟁 방지와 같은 먹거리복지(global welfare)를 도모하고, 개인에게 있어도 건강과 참살이(wellbeing)를 동시에 챙기는 음식철학 캠페인(campaign of food philosophy)을 전개하고 있다.

오늘날 선진국에서 개인적 ‘음식철학(food philosophy)’으로 실천하고 있는 걸 8가지로 간추려보면, i) 신체적 여건, 지병(持病) 및 생리특성을 고려해야 하고(individuality), ii) 국가별, 지역별, 사회적 특성 등을 고려한 현실적 삶(real life), iii) 송(宋)나라의 무명인의 저서 경행록(景行錄)에선 “음식이 담백하면 정신이 상쾌해지고, 마음이 맑아져서 꿈자리도 편안하다(食淡精神爽,心淸夢寐安).”라고 했듯이 음식을 통해 지덕체(智德體)를 함양한 전인적 인간(whole person)으로 도야, iv)“음식 3대 유전 사실을 인식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후손을 위해 유기농산물(organic), 공정무역(fair trade), 착한 음식소비 혹은 음식정의(food justice) 등을 고려, v)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1945년생)의 2002년 저서 ‘육식의 종말(Beyond Beef)’의 경고를 실천해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한 채식중심(plant-based), vi) 공자의 “제철 음식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不時不食).”에 기인한 “지역에서 나는 제철 음식(seasonal and local)”을, vii) 음식이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노고하신 모든 분에게 감사와 사랑(love)을 표시하고, viii) 같은 음식이라도 의미와 삶의 변혁을 초래하는 여행(journey), 자선, 봉사 등을 곁들인다.

◇마지막으로 사람이면 밥값해라!

2012년 네이트(nate)사이트 유머 게시판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는데, 젖먹이 아이 옷에다가 걸레조작을 달아서 아이가 움직이면 방이 닦이도록 만들었다. 제목이 ‘태어났으면 밥값해라!’ 기어가도 뒹굴어도 방이 닦인다는 아이디어였다. 이에 반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에도 밥값 이야기가 나온다. 계란의 위생문제가 계속 대두되자 2002년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원산지증명을 위해 생산지역별 코드화를 실시한다고 밝표했다. 프랑스 등에서는 생산지, 양계업자(닭장), 사육방법 등을 알 수 있게 코드화했다. 프랑스의 계란껍데기를 본 누리꾼들은 “공무원들 밥값해라!”라고 글을 올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밥값해라(pay for the meal).” 요구를 받고 있는 집단은 국회의원들이다. 선출하고 지켜보는 지역주민들이 안타까움마저 갖고 자신들의 바람을 표현한 말이다. 지난 언론기사를 살펴보면 “~당 밥값하라.” 혹은 “~당 의원들도 밥값 좀 해라.” 혹은 “밥값 못한 채 피켓 든 국회의원들..”이라는 언론의 기사가 빈번히 게재되고 있다.

심지어 밥값을 소재로 대선광고를 한 사례로는 지난 2007년 11월 29일 텔레비전 광고로 ‘낙원동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편에서 대구표현으로 ‘구수걸직한(구수하고 걸직한)’ 할머니의 욕 “쓰잘데기 없는 싸움박질만하고 지랄이여. 우리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어. 밥 처먹으니까 경제는 꼭 살려라 이놈아.”라고. 이 카피는 국민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었고 이 대선광고를 한 이가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글·그림=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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