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일들이 당연한 사회
당연한 일들이 당연한 사회
  • 승인 2021.02.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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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우 대구시의사회 기획이사 든든한병원 원장

요즘 뉴스를 보면 지난 학창시절에 있었던 학폭 사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유명한 배구선수를 비롯하여 유명 연예인에 대한 폭로도 나오고 있다. 또 하나의 미투 사태가 생긴 것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일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체육 시간에 복도 계단을 급하게 내려가다 누군가와 부딪혔는데 그게 하필 학교 일진이었다. 화장실에 끌려가서 몇 대 맞았었다. 다행히 주변 친구들이 말려주어 큰 사태로 번지지는 않았으나 당시에는 동급생에게 구타를 당하는데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한 게 아직도 부끄럽기도 하고 한동안 그 아이와 복도에서라도 맞닥뜨리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학교를 다녔던 기억이 있다. 일회성의 일인데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몇 년을 같은 사람에게서 신체적으로나 언어적으로 폭력을 당해 왔다면 그 트라우마는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왜 그때는 아무런 저항이나 주변에 알리거나 부모님께 얘기를 하지 못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마 많을 것이다.
우리도 모두 가해자 입장에서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나?
그때는 그런 게 당연한 일들이었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위계질서가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 것도 못 견디고 어떻게 운동을 하나? 이제와서 왜 난리지? 우리나라의 배구 국가대표이니 그 정도쯤은 그냥 넘어가면 안되나? 그 사람들이 몇 년이나 지난 일들을 어떻게 저렇게 자세히 기억을 하나? 꾸며내지는 않았나?
이렇게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폭력을 당한 사람은 절대로 그 일을 잊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폭력에 대하여 너무 관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성적 우선주의의 스포츠계의 만연한 관례들로 인해 특정 선수가 실력이 좋으면 그 외의 모든 것들은 다 포장되어 좋게 보인다. 지금도 스포츠계에서는 폭력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코치로부터 주장으로부터 같은 선수로부터. 팀의 성적이 우선이니 못하면 맞아야하고 성적이 좋아야 진학도 하고 프로에 입단하기도 좋고 하니 일단은 맞으면서도 참고 지내는 선수들이 많을 것이다. 단체 스포츠일수록 그런 일들은 더 많을 것이다.

얼마 전 한 기사에서 박지성 선수가 한 말이 다시 재조명되고 있는 걸 보았다.
박지성 선수도 예전에 유명해지기 전 선배로부터 구타를 많이 당했다고 했다. 축구팀에서는 당연히 있는 일이었고 그 누구도 구타에 대하여 문제 삼지 않은 그 시기에 박지성 선수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본인은 누구에게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훌륭한 선배는 실력으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훌륭한 선수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인성 또한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스포츠계 뿐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공부에서도 운동에서도 성적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고 그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과정보다는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게 아닐까한다.
그걸 바꿔보겠다고 대학입시에서 고등학교 때 학생종합기록부를 더 중요하게 보면서 학생을 선발하는 수시입학이라는 제도를 만들었지만 그것조차 소위 말하는 스펙을 만들기 위해 하지도 않은 실습을 한 것으로, 가지도 않은 인턴쉽을 한 것으로, 만들어낸 표창장들과 수상기록들, 부모의 권력을 이용하여 서로 돌려가며 만들어준 가짜 서류들로 대학을 들어가고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일들도 다 당연히 하는 것들로 인식되어지고 그렇게 대학을 가고도 세상에 부끄러움 없이 뻔뻔하게 지내고 있는 현실을 보니 참 암담하기 그지없다.

이번 학폭 미투사태에서도 가장 분노한 세대가 바로 2030 세대라고 한다. 열심히 공부해봐야 이미 출발점부터 다른 소수의 금수저들에게 밀려나고 취업도 잘 되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는 그들에게 과거에 저지른 잘못 따위는 지금 현재 결과가 좋으니 별 거 아니라는 이런 사회 인식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개울에 가재, 붕어로도 잘 살 수 있는 사회라고 해놓고는 자기 자식은 의대를 보내는 현실, 제적당할 학점을 받고도 장학금까지 받아가며 의대를 다니는 현실, 자사고 특목고 폐지를 주장하고는 자기 자식은 자사고에 보낸 장관이 뻔뻔히 일을 하고 있는 현실, 동급생을 때리고 괴롭히고도 실력만 좋다고 유명 선수가 되는 현실.

오늘도 이런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많은 청춘들에게 기성세대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럽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반성을 하게된다.
당연한 일들이 당연해지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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