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가정이 그 고리를 끊을 때다
학폭, 가정이 그 고리를 끊을 때다
  • 승인 2021.02.2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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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아 이학박사 전 대구시의원
세상이 시끌시끌하다. 유명 배구선수의 학폭이 수면 위로 오르면서 그간 곪을 대로 곪았던 것이 터졌다는 말에 더해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 압도적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하루가 멀게 매일같이 언론에는 유명인의 학폭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필자는 학부형으로 이런 학폭관련 뉴스를 접할 때마다 깊은 좌절감과 동시에 '만약 내 아이에게...' 라는 감정이입도 하면서 큰 분노를 느낀다. 어디서부터 문제일까.

학폭과 함께 비교되는 범죄가 사실 성범죄다. 가해자들이 늘 합리화를 한다는 점,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라는 논리와 함께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집중해서 피해자가 완전무결한 존재인지를 추궁한다는 점, 피해자의 영혼이 반복적으로 죽어가며 형언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기는 점, 끊임 없이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얼마 전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성폭력 미투가 권력에 의한 과시형 폭력이 주로 이성 간에 일어난 일이었다면 학폭이 더 끔찍한 것은 동성 간에도 수치심을 주며 벌어지는 일이기에 어찌 보면 더욱 심각한 것이다.

예전에는 어릴 때에는 누구나 다투면서 그렇게 크는 거라는 말도 하며 학폭을 사소한 친구들끼리의 다툼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요즘의 학폭은 그렇지 않다. 갈취로 시작되어 폭력이 난무하고 어느 한 명이 병원에 실려 가고 견디다 못해 자살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많다. 이뿐만 아니라 '은따(은근히 따돌리는)' 형식의 학교폭력은 갈수록 교묘하고 악랄해지고 있다. 생각해보라, 성인인 우리도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행동에 20~30명의 사람들이 매일같이 비웃는다면 제대로 생활할 수 있을까? 이 같은 경우는 증거가 명확하지 않고 가해 학생들이 똘똘 뭉치는 탓에 처벌은 더욱 어렵고 그렇기에 졸업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 사실 너무 발달한 SNS 덕분에 졸업조차도 학폭의 끝을 약속할 수 없다.

2011년 대구 중학생의 자살은 정말 많은 이의 공분을 샀고 모두가 미안해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필자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쪼그려 앉아 옷소매로 눈물을 닦는 그 사진만 봐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대구의 모 중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한 학생이 같은 학교 학생으로부터 상습적인 물고문, 구타와 금품갈취 등의 괴롭힘을 당하였다는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마지막까지 남겨지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 그리고 두려움이 절절했던 4장의 유서는 대한민국을 울렸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게임 캐릭터 레벨을 올리라고 폭행했고 용돈을 받으면 게임에 필요한 아이템 구입을 강요했고 글러브 등으로 피해자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심지어 전깃줄을 목에 감은 뒤에 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먹도록 강요하는 등의 사람에게 할 수 없을 정도의 학대와 고문을 일삼았다. 악랄한 폭력으로 인한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서 그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던 것이 없던 피해자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어 사회에서 제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바꾸라며 남겨진 가족들을 걱정한 그 착한 소년, 그러나 그 소년은 지금 어디에도 없다.

학폭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들은 해당 교사와 학교에서는 뭐했냐는 반응이 대다수이다. 과연 학폭이 학교와 교사들의 방관으로 일어난 것이라 귀결하는 의견이 맞을까. 필자는 학폭의 고리를 끊고 학생이 행복하려면 가정에서의 양육과 훈육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피해학생 부모의 양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학생 부모의 양육과 훈육을 말한다. 교사는 근무시간 10시간 남짓한 근무시간 동안 수업 뿐 아니라 여러 행정업무를 하는 동시에 수십 명의 학생을 돌보는 역할을 한다. 반면 가정에서는 하교부터 다음 등교 때까지의 열몇시간 동안 오직 자신의 아이만 돌보면 된다. 학폭이 일어나 학폭위(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소집되면 화살은 학교와 해당 교사로 돌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그렇기에 학폭이 일어나면 해당 학교는 사실 미온적인 태도가 되기 쉽다. 그 누구도 가해학생의 부모에게 부모로서의 소임과 가정교육의 부재를 탓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자녀의 인성을 돌봐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이를 소홀히 한 부모에 대한 책임 또한 엄중히 묻는다면 학폭은 분명 줄어들 수 있다. 또 학폭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그 수위를 높이고 십수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학폭가해자였음이 밝혀지면 법적으로 엄중히 처벌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제 개학이다. 교사에게 자신의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보다 가정에서 최선을 다해 양육하고 훈육하겠으니 부족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달라는 학부모가 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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