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대구사람은 모르는 대구음식 “익숙함에서 벗어나라”
정작 대구사람은 모르는 대구음식 “익숙함에서 벗어나라”
  • 김종현
  • 승인 2021.02.2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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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음식 세계로 - (4)달구벌 음식문화의 특성
옛사람들 “대구 먹을 것 없어”
외국인들은 “맛집 많아 좋아”
관광객들 불편·불만 들어보고
남에게 비춰지는 참모습 찾아야
한반도 대륙성 기후 가진 분지
삼한각축의 중립적 요충지 등
문화·사회적 특성 스며들어
대구특유의 음식 맛 구현
식사도구비교
동서양 식사도구 비교. 그림 이대영

◇달구벌에 살았던 선비들이 남긴 음식철학

2003년 9월 19일 신이 틀어준 둥지, 축복받은 땅(神皐福地)이라는 달구벌 대구에도 매미호 태풍이 휩쓸고 갔다. 가로수는 모두 넘어졌고, 전신주, 교회첨탑, 간판이 길바닥을 다 덮었다. 온통 대구시는 쓰레기더미 속에 있었다. 그런데 달성공원의 나무들 가운데 까치집이 있는 나무만은 그대로 꼿꼿하게 서있었다. 옛 어른들은 “슬기로운 날짐승은 보금자리를 틀 나무를 선택한다(良禽相木棲).”고 했다. 날짐승들이 보금자리 틀 나무를 선별하는 데는 적어도 : i) 평소 먹이가 많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장소의 위치(生理), ii) 독수리 등의 맹금류 기습을 탐지하고 위기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위치의 나무(要塞), iii) 태풍 혹은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에도 전혀 피해를 받지 않을 곳(遯地)의 기준이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은 날짐승보다 더 많은 자연적 요소와 사회적 여건을 고려해서 삶터를 결정한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먹거리를 중요시했다. 백성들의 하늘은 먹거리다(食爲民天)라는 위정철학이 있다. 유태인들의 상술에서도 “가장 많은 이득을 얻고자 한다면 입을 노려라.”는 제1원칙이 나온다.

불교의 만다라 그림 혹은 과거 아날로그시계의 맞물린 톱니바퀴(cog-wheel)처럼 세상만사는 서로 물고 물리는 인과관계, 상관관계, 대립관계 혹은 함수관계로 꼬여진 실타래(twisted thread)를 형성하고 있다. 음식문화는 : i) 자연·생태적 여건, ii) 사회·문화적 여건, iii) 경제·기술적 여건, iv) 신분·심리적 여건, 그리고 v) 군사·외교적 여건까지 서로 얽혀져 땔 수 없을 정도로 피 묻은 실타래로 융합된 상태다. 음식문화의 여타문화와 다른 점은 공유성(share), 통합성(consolidate) 및 변동성(change)이다.

공유성은 같이 나눠먹기를 통해 부족 혹은 민족전통음식, 인류공유음식 등으로, 통합성은 같이 먹음을 통해서 의식, 전통, 민족성, 문화를 통합해나간다. 같은 밥을 먹는다는‘한 솥밥’ 의식(同鼎意識), ‘가신(家臣)’ 다짐(同家決意) 혹은 군사훈련소의 짠 밥 질서 등의 통합성이 형성된다. 과거 1970년대 시월유신 홍보와 1980년대 정의사회구현 차원에서 밥상머리 교육이 있었다. 서울대학교 학부모정책연구센터는 2012년 밥상머리교육 매뉴얼을 발간하고, 2016년에 교육부 국가정책으로 채택했다. 그 매뉴얼을 간략히 요약하면, (1단계) 입장 바꿔 편견과 선입감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칭찬하라. (2단계) 자녀를 초점으로 평가하지 말고 감정에 공감하라. (3단계) 부담을 주지 않고 개방적인 질문을 하라. (4단계) 보다 구체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칭찬하라. 변동성을 보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BC 535~475)가 “같은 강물을 누구도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No man ever steps in the same river twice).”고 했듯이 만사는 늘 변천하고 있다. 과거에 먹혀들었다고 오늘날도 먹혀든다는 보장은 없다. 옛날에 토끼를 잡았다고 그 나무그루터기에서 기다린다면 변통성이 없는 수주대토(守株待兎)가 되고 만다. 음식문화는 가장 먼저 변천하고 있다.

◇런천 테크닉(luncheon technique)이라는 외교적 설득기법

생명체는 먹이를 얻기 위해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한다. 이런 경쟁엔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만 있다. 공짜로 보이는 미끼가 있어 덥석 물고 나면 하나뿐인 목숨을 요구한다. 미국속담에 “공짜 점심은 없다. 비싼 대가를 치른다(There is no free lunch. It pays a high price).” 혹은 러시아 속담에도 “공짜는 쥐덫 위에 있는 치즈뿐이다”고 했다. 물론 인간은 야생동물을 가축으로 기르기 위해서 먹이를 제공하고 길을 들였다. 전쟁포로에게 음식을 제공해 사상전향을 시키거나, 설득시킨다. 특히 국제외교섭외, 글로벌금융, 첨단군사거래에서는 만찬, 오찬, 댄스파티 등으로 ‘포도주에 혼미하듯이(like being confused with wine)’ 설득 당하곤 한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의 ‘설득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Persuasion)’에서 최고의 설득기법으로 ‘런천 테크닉(luncheon technique)’을 손꼽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제외교는 물론 일상적인 거래에서도 많이 이용하고 있는 기법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소금 먹은 놈이 물켠다.”, 영국속담에 “만찬은 사업에 윤활유를 바른다(A dinner lubricates business).” 미국속담엔 “삐걱거리는 마차에 기름을 바르면 조용하다(Squeaky wheel gets the grease).”등이 있다.

중국 역사에서 청나라 강희제(재위 1662~1722)와 건륭제(재위 1735~1796)는 주변국 제후들과 ‘온갖 음식을 먹으면서 평화를 만들자’라는 ‘만한전석(滿漢全席)’으로 평화체제를 구축했다. 이를 두고 당시 서양에선 전쟁을 대신한 식사(Meals for War)란 칭송을 했다. 주한미군부대에 군속으로 근무했던 친구 녀석은 양식 테이블에 놓인 포크, 칼 및 숟가락을 전투도구(fighting tool)이라고 했다. 칼 들고 싸우던 손에서 무기를 내려놓고 같이 악수를 하거나 식사를 한다는 건 종전이다.

때로는 과도하게 먹고 놀다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복잡하게 꼬이게 하는 사례도 많다. 대표적 사례로는 샤를 조제프(Charles-Joseph, 1735~1814) 공(公)이 “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진전은 없다(Der Kongress tanzt viel, aber er geht nicht weiter).”는 말을 남긴 빈회의(Congress of Wien)가 있었다. 1814년 나폴레옹이 엘바에 유배되었다고 주변공화국들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개최했던 회의다. 아무런 대책 없이 먹고 마시며 춤추기만 했다가 나폴레옹이 유배지를 탈출했다는 소식에 술판이 뒤집혔다. 1931년 1시간 34분의 영화 ‘회의는 춤춘다(Der Kongreß tanzt)’로 만들어 졌다. 중국 사마천의 사기에 주왕(紂王)은 주색에 빠져 국정은 내팽개쳤고 ‘술은 못물처럼 넘쳐났고, 안주로 잡은 고기를 달아매어놓은 게 나무숲을 이루었다(以酒爲池懸肉爲林)’라는 표현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1979년 10월 26일 새벽5시 궁정동 안가사건을 떠올릴 수 있다.

사실, 술이란 과일이 기온의 변화로 자연적으로 발효되고 숙성된 음식으로 수십만 년 전에 인간에게 발견되었다. 물론 날짐승이나 들짐승들이 인간보다 더 오래전부터 먹어왔으니 사람도 따라 먹었다. 신묘한 효과에 인간은 ‘신이 축복으로 준 음식(god-blessed food)’으로 생각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포도나무와 포도주의 신’, ‘풍요의 신’ 그리고 ‘황홀경의 신’으로 디오니소스(Dionysos)를 섬겼다. 그는 카드모스(Kadmos)와 하르모니아(Harmonia) 여신의 딸 세멜레(Semele)와 제우스(Zeus)의 아들이다. 로마에서는 바쿠스(Bacchus)라고 한다.

술 주(酒)자의 기원을 살펴보자. 후한(後漢) 허신(許愼, AD 58~148)이 저술한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갑골문자 물(水)와 금술단지(酉)를 상형한 글자로 설명했다. 최남선(崔南善,1890~1957)은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 “술 주(酒)자는 후한 때 두강(杜江)이란 사람이 닭날(酉日) 술을 빚었다고 해서 물수(水)자와 닭유(酉)자를 합성해서 사용했다.”고 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 녀석은 “요사이 대구치맥 축제가 최고인데, 그 이유는 술안주로는 닭고기가 최고란 말입니다. 따라서 옛 조상님들도 그것을 알았기에 술 주(酒)자에 닭유(酉)자를 합성해서 사용했을 것입니다.”라고 풀이했다. 1962년 상영된 영화 ‘개 같은 세상(Mondo Cane)’에서 마시고 토하는 엉망진창의 독일맥주축제가 나왔다. 독일 뮌헨에서 매년 9월말~10월초까지 개최하는 세계최대맥주축제(Oktoberfest)에선 맥주 700만 리터, 치킨 닭 50만 마리와 소시지 25만 개가 소비된다고 하니 동서양 현대적 논리로는 딱 들어맞는 말이다.

◇달구벌(대구) 음식문화의 특성

우리는 대구에 수십 년을 살아왔으나 정작 대구음식의 특징을 모른다. 마치 명산대천의 멋진 풍광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그저 그렇다는 정도로 알고 있는 것처럼. 크게 봐서는 지름이 12,742km나 되는 거대한 지구촌에 살고 있지만 누구도 지구를 두 눈으로 본 사람은 없다. 법구경의 한 구절인 “국속에 빠져 있는 국자는 정작 국 맛을 모른다.” 그 속에 빠져있기 때문이고, 대자연의 만끽이란 타성이 시야를 가렸기 때문이다.

익숙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머리를 돌려 보니 내가 그리도 찾아 헤매던 푸른 산이 거기에 있네!”라는 회두청산(回頭靑山)의 의미를 새삼 느낄 것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대구를 찾아온 관광객으로부터 불편과 불만을 들어보고, 비교하며, 남들에게 비춰지는 참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다. 과거 대구를 찾는 관광객에게 택시운전사들은 “대구요, 먹을 것도 볼 것도 별로 없어요.”라고 자신의 무식함을 드러내었다. 요사이는 “대구, 먹을 것도 볼 것도 많다.”고 외지 사람들이 먼저 알고 있다. 특히 대구 맛 집이 많다고 야단법석을 떤다.

대구음식에는 : i) 한반도의 대륙성 기후를 가진 유일한 분지(盆地), 삼한각축의 중립적 요충지, 신라 지증왕 때 국빈대접을 위해 석빙고를 왕실 다음 가장 먼저 설치했던 곳, 임진왜란과 식민지전쟁의 병참기지, 625전쟁의 최후보루라는 지리적 특성, ii) 부러질지라도 굽히지 않는(寧折不屈) 호국정신, 경상감영과 영남유림본거지로서 유교선비문화라는 문화적 특성과 iii) 동학운동, 국채보상운동 및 2.28운동의 민주성, 4명의 제왕을 배출한 정치적 도시로써 사회적 특성이 스며들어 있는 대구특유 음식 맛을 내고 있다.

글=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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