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토끼는 어쩌다 떡방아를 찧게 됐을까
보름달 토끼는 어쩌다 떡방아를 찧게 됐을까
  • 채영택
  • 승인 2021.02.2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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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온의 민화 이야기] 안녕 달 토끼
 
약방아찧는토끼
약방아 찧는 토끼. 지본채색 19세기 33.8X57.8cm 개인소장.
 
토끼설화부조
토끼 설화 부조. 3-4세기 인도 첸나이주립박물관 소장.

이제 설도 지났고, 다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절 중에 하나인 정월 대보름이 다가온다.

정월 대보름은 한 해 중에 ‘가장 큰 보름’이라는 뜻으로 음력 정월 보름인 음력 1월 15일을 말하며,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날이라고 한다.

우리 조상님들은 정월대보름에 무사태평과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로 나물 반찬에 오곡밥을 지어먹고, 둥근 보름달 아래에서 쥐불놀이를 하며 세상의 모든 액운을 태워버리는 세시풍속을 즐겼다.

오늘은 그 보름달 속에 살고 있다는 토끼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어린 시절 곧잘 불렀던 동요 <반달>의 가사 중에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그 가사 속의 토끼 말이다. 그런데 토끼는 어쩌다 달나라까지 갔을까?
 

中 유향이 쓴 오경통에는
인간이 손댈 수 없는 달에서
불사의 약을 찧는 것

달과 토끼의 관계는 그 역사가 깊다. 달나라에 약방아 찧는 토끼의 유래는 2,000여 년 전 중국 전한시대 학자 유향(劉向)이 쓴 오경통의(五經通義)에 나온다.

“달 가운데 한 마리 토끼가 있으니, 이를 ‘옥토끼’라 한다. 밤이 되어 달빛이 넓은 천공을 비치면, 토끼는 공이를 들고 부지런히 약을 찧는다. 세상 사람에게 행복이 내리는 것은 이 토끼가 애써 약을 찧기 때문이다. 옥토끼는 밤새껏 애써 약을 찧고 낮이면 피곤해 까닥까닥 졸고 있다. 그러다가 해가 질 때면 다시 일어나 또 약을 찧기 시작한다.”

옥토끼는 사람처럼 두발을 사용하여 직립하며 절구 공이로 무언가를 찧고 있다. 약초를 짓이겨 선단(仙丹, 무병장수를 누릴 수 있는 약)으로 만들기 위한 약방 아이다. 인간들이 감히 손댈 수 없는 영역, 즉 달에서 불사(不死)의 약을 만들어야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신선들이 상상의 옥토끼가 약 방아로 선단을 찧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의 달 토끼를 우리는 보름달을 보며 동경해 왔고, 어린 시절을 밤하늘에 달을 올려다보며 다양한 상상을 해봤다.

한편, 달 토끼와 더불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계수나무이다. 중국의 오강(吳剛)이라는 사람이 월궁으로 귀양을 가 계수나무를 도끼로 찍어 넘기는 일을 계속해야 했는데, 그가 계수나무를 찍을 때마다 상처 난 나무 부위에서는 새 살이 돋아 오강의 도끼질은 계속 되었다고 한다. 이후 월궁의 계수나무는 베어도 넘어지지 않고 영원히 남아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영생불멸의 나무로 인식되어 왔는지 모른다.

우리나라 역시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보면 김수로왕이 신하들에게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저어 바다에 나가 왕비 허황옥(許黃玉)을 궁전으로 모셔왔다는 내용이 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로 이어지는 동요 가사나 ‘달 속에 박혀 있는 계수나무를 옥도끼로 찍어 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지어 부모님과 함께 천년만년 함께 살고 싶다’라는 충남 청양지방 민요처럼 우리 역시 둥근 달과 함께 계수나무를 동경해 왔던 것이다.

달 토끼 이야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수궁가>, <별주부전> 등의 근원설화가 된 구토설화(龜兎說話)도 풍자와 교훈을 내포한 대표적 설화로 전해오고 있다.

곤자쿠 이야기집 설화
배고픈 노인에 줄 게 없는 토끼
“나를 먹으라”하며 불 속으로
알고보니 하느님이었던 노인
행실에 감동받아 달로 보내

12세기 전반에 불교설화와 세속설화를 집대성한 ‘곤쟈쿠 이야기집(今昔物語集)’은 인도·중국·일본 3편으로 나누어서 1100여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 인도에 토끼와 원숭이와 여우가 살았는데, 어느 날 배가 고파서 쓰러질 것 같은 노인이 나타났다. 원숭이는 나무 열매를, 여우는 물고기를 잡아서 노인에게 가져왔다. 그런데 토끼는 아무것도 구하지 못했다. “나는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이 몸이라도 드십시오”라면서 모닥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사실 이 노인은 제석천(하느님)이었다. 토끼의 자비심에 감동한 나머지 이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달나라로 올려 보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지금도 달에는 토끼가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불교경전과 관련서적에도 실려 있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는 ‘이것은 석가여래가 수행을 할 때 몸을 태운 것이다’는 구절이 있고, <경률이상(經律異相)>에는 ‘부처가 이르기를, 그때의 토끼가 바로 나다’는 구절이 더해져 있다.

 

문자도
문자도 치(恥) 지본채색. 19세기 35X54cm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문자도 ‘恥’에서 읽는 세계
굶어 죽을지언정
부끄러운 짓은 말라는 ‘치’
무거울 수 있는 유교 덕목에
어린 옥토끼 그려 무게 완화

토끼가 방아 찧는 달의 세계는 유교문자도 가운데 맨 끝 자인 치恥 자에서도 단골처럼 볼 수 있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된다는 교훈의 문자인 치자에 맑고 깨끗한 청절의 상징인 백이숙제의 행적과 청절을 대표하는 자연인 매화와 달을 조합시켜 나타내었다. 대개 그 문자 위아래에 “천추청절 수양매월千秋淸節首陽梅月”이라는 제시를 적어 놓는다. 그 의미는 “오랜 세월 청절은 수양산의 매화와 달이라”라는 뜻이다. 은유법을 썼지만, 주나라 무왕에 의해서 은나라가 망하자 은나라 고주국의 왕자로써 의리를 지키기 위해 수양산에서 고사리만 먹다가 굶어 죽은 백이숙제의 청절을 가리키는 것이다. 굶어죽을지언정 부끄러운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 담긴 문자도이다. 그림 속에서는 백이숙제의 청절비가 있고 그 위에 달이 떠있는데, 그 달 속에는 옥토끼가 약방아를 찧고 있는 것이다. 청절이란 덕목과 장수를 상징하는 옥토끼는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민화작가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청절이란 유교 덕목에 장수를 상징하고 동심을 나타내는 옥토끼를 살짝 넣어서 그 의미를 증폭시켰다.

이젠 보름달을 바라보며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을 것이라 상상하는 시대는 지났다. 미국의 항공우주사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첫 발을 내딛자 ‘반달’을 작사, 작곡한 윤극영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달은 이제 죽었어!” 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누구보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가 살고 있는 달이라고 믿었던 그에게 과학문명이 서정적인 상상력을 앗아갈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여전히 보름달 속 토끼가 살아있다. 올해 신축년 음력 1월 15일 정월 대보름을 맞아 보름달 속 토끼가 어떻게 떡방아를 찧게 됐는지 그 유래를 재조명해 보면서 밤하늘 둥근달 속의 달 토끼에게 안부 인사를 하려고 한다. 안녕 달 토끼!!!

<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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