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자유롭게 해라
기업을 자유롭게 해라
  • 승인 2021.03.0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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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경소비자연맹 정책실장 경제학 박사
IMF 외환위기 직후 벤처 창업 가이드북인 <벤처 창사 A to Z 실리콘밸리가 보인다>의 저자 존 네이샴이 직접 대구를 방문해 특강한 적이 있다. 그 당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IMF 외환위기로 정부는 금융시장의 불안을 해소하고 금융산업의 대외신인도를 회복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고,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기관들은 부실 거래기업들을 압박하면서 지역에 기반을 둔 대동은행, 대구종금, 영남종금, 경일종금, 조선생명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있던 청구, 우방, 보성 등 건설기업 3인방 그리고 섬유기업으로부터 시작해 그룹으로 성장한 동국그룹, 갑을그룹도 부도가 났던 시기였다.

이처럼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새로운 돌파구 중의 하나가 벤처창업이었다. 벤처창업은 가정의 식탁에서 나눈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논의된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이어지고 자금조달을 위한 사업계획서 작성, 자금조달 과정을 거치면서 상장(IPO)에 이르기까지 창업자가 부딪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구체적으로 잘 설명해줬다. 지금은 창업에 관한 지원기관이나 정책이 잘 갖추어져 있어 효과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창업 관련 노하우어가 부족한 시기라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들었다. “100만개의 아이디어가 사업화되어 상장까지 가는 기업은 6개 미만이고, 상장된 모든 기업이 큰 수익을 얻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은 벤처 창업이 어렵다는 것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대구 지역에서 벤처기업의 효시는 근대 기업의 등장이 아닐까 한다. 대구는 조선말기 이래 전국적인 상업 중심지이며, 또한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영남의 넓은 농촌지역을 배후지로 하여 제사공업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전형적인 내륙상공업도시이다. 1910년대 조선인과 일본인 자본에 의한 제사공장 설립에서 근대 기업이 시작되었으며, 해방 후 일본인 기업은 귀속재산으로 편입되고 이를 불하받은 한국 기업인이 지역의 섬유산업을 주도했다. 해방과 6.25동란의 격랑 중에서도 서문시장에서 포목상으로 재산을 모은 다수 기업인들이 섬유업에 뛰어들면서 대구가 섬유도시가 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이처런 서문시장에서 축적한 상업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전환한 기업인들이 그 당시 벤처창업가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시작된 우리나라 경제의 고도성장과정에서 대구의 산업도 양적으로는 상당한 발전을 이룩하였으나, 성장수준면에서 보면 전국 평균수준에 미치지 못하였는데, 우리나라 경제성장정책이 수도권과 부산권, 임해지역을 중심으로 추진됨으로써 내륙도시인 대구는 입지면에서 취약점으로 인해 성장·발전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혜택을 본 지역의 기업과 금융기관들도 있었을 것이다. IMF 외환위기를 격어면서 지역에 기반을 둔 많은 기업들이 부도가 났지만 자생력을 가진 기업들은 회생하였고, 또한 남선알루미늄, 우방, 동국무역 등은 SM그룹에 인수합병되어 새롭게 태어났으며, IMF외환위기 전에 분사한 기업들 중 구조조정을 잘 견뎌낸 기업들도 있다.

기업과 국가를 종종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성공적으로 기업을 경영한 인사가 국가도 잘 경영할 것이라는 말도 자주 들었다. 어떻게 보면 기업을 경업하는 것이 국가를 경영하는 것 보다 어려울 수도 있다. 왜냐하면 기업은 한 개인이 신용, 자금, 사람을 모두 조직화해야 되기 때문이다. 기업가정신을 높게 평가하는 것도 아마 이것 때문이 아닐까 한다. 반면 기업은 목표가 한 방향이고 필요한 사람을 뽑아 조직화하고, 조직에 적합하지 않는 인물은 퇴출시키면 된다. 국가의 목표는 한 방향일수 없고 설령 필요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해도 퇴출시킬 수도 없으며 설득해 함께 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기업 경영과 국가 경영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국가를 효율적으로 경영하기 위해서는 기업가적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가지만 기업을 공공기관처럼 경영하라는 말은 이해되지 않는다. 사실 기업도 사람처럼 생로병사 과정을 거친다. 사람은 그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는 없기 때문에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기업은 구조조정을 하면 그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기업이 호황일 때 구조 조정하는 것이 기업이나 종업원에게 유리하지, 불황일 때 반강제적으로 하는 구조조정은 그 희생이 매우 크다. 기업의 성공과 실패는 그 기업과 기업가가 책임지는 것이지 국가가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IMF 외환위기 직전에 업종 전문화했던 기업도, 사업다각화했던 기업도 부도났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이론적으로 하는 것이 아닐라 생존본능에서 이루어지므로 그 기업이 판단해야 되는 것이지, 국가가 법으로 간섭하게 되면 오히려 득보다 실이 더 크다. 기업은 기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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